춘추전국시대 ‘도척(盜拓)’이라는 이름을 가진 악명을 떨치던 도둑이 있었다. 그는 도둑놈의 세계에서는 동양 역사에서 첫 번째로 손꼽는 인물이다.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며 인의(仁義)와 덕치(德治)를 주장하고 다닐 때, 그는 오히려 천하를 돌아다니며 도둑질로 악명을 떨쳤다.
그는 태산에 웅거하면서 무려 9천 명이 넘는 부하를 거느렸다. 무리를 이끌고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제후를 공격하여 약탈할 정도로 세력이 막강했다. 때로는 사람의 간을 썰어 먹었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저잣거리에서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가 도척을 찾아가 만났다. 그는 도척의 악행에 대한 소문을 지적하면서 “왜 도둑질을 그만두지 않느냐?”라고 물었다.
도척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세상의 모든 직업이 본질적으로 도둑질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정치인은 권력을 훔치고, 장사하는 사람은 이익을 좇고, 학자들은 지식을 이용해 권력을 얻는다. 그렇다면 그들 역시 자기와 다를 바가 없는 도적이 아니냐는 논리였다. 그는 자신이 단순히 물건을 훔치는 좀도둑이 아니라, 도둑질하는 자로서 오히려 나름의 철학과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강변했다. 이 이야기는 『장자(莊子)』 「도척편(盜跖篇)」에 실려있다.
그의 행위를 두고 사마천은 『사기』 「백이열전」에서 “사람의 고기(人肉)를 먹는 도척 같은 자는 잘살다가 집에서 편안하게 죽고, 오히려 백이와 숙제 같은 어진 이는 굶어 죽었다.”라며 한탄했다. 악한 사람은 천수를 누리고 선한 사람은 오히려 비참한 최후를 맞는 현실에 화두를 던진 것이다
‘도척지견(盜跖之犬)’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도척을 따라 도둑질을 일삼는 무리를 ‘개(犬)에 빗대어 하는 말이다. 즉,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먹을 것을 주는 주인을 무조건 따르는 자’를 조롱하는 말이다. 요즘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애완견일 뿐이다.
도척이 기르는 개는 그 주인이 어떤 자인지 알지 못한다. 알 생각도 없다. 항상 주인의 눈치만 살핀다. 그저 밥 한 덩어리를 얻어먹으려고 주인에게만 꼬리를 흔들고 다른 사람에게는 짖고 물어뜯기를 서슴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주인의 눈치를 살피며 쉬지 않고 꼬리를 흔드는 애완견들의 작태를 ‘도척의 개’라고 비아냥거렸다.
도둑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남의 집에 들어가 금품을 훔치는 도둑과 나라의 돈과 국민의 신뢰를 훔치는 도둑이 있다. 전자는 보통 좀도둑이요, 후자는 부패한 정치인과 권력자들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를 움직이는 권력자들이 국민의 신뢰를 도둑질하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과연 정의가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도척은 도둑질하면서도 기본적인 도(道)를 지키라고 했지만, 오늘날 큰 도둑이 되려는 자들은 그런 도리조차 없다. 마음 놓고 감언이설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법의 공평성과 공정한 사회, 윤리의 가치는 이미 땅에 떨어졌다. 형평성의 가치와 공정한 질서가 뒤바뀐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부패한 정치인, 권력형 비리, 책임을 지지 않는 지도자들은 모두 오늘날 우리 사회의 ‘도둑’이다. 감언이설과 거짓으로 국민을 속이고 나라를 도둑질하려는 정치인은 자기를 추종하는 무리를 방탄 삼아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거침없이 행동한다. 그 추악한 처신과 가증스러운 언행을 단죄해야 한다.
“한두 명을 죽이면 살인자이지만, 수백만 명을 죽이면 정복자가 되고, 모두를 죽이면 신(神)이 된다.”라고 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로스탕(Jean Rostand)이 한 말이다.
개인의 살인은 범죄로 간주하지만, 대규모의 살상은 정복자나 신적(神的) 행위로 미화되는 인간 사회의 모순을 풍자한 것이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은 이 말을 자신의 대량 학살을 합리화하는 데에 활용했다. 생각만 해도 두려운 일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신뢰로 세워진다. 천하를 훔치려 드는 도둑은 자신의 권력과 이익만을 탐하며 국민을 농락하려 든다. 작은 도둑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완견 몰이를 하면서 민주적 가치와 공정의 질서를 훔치려는 이런 자들을 심판하지 않으면 우리의 사회는 내일을 보장할 수 없다.
도척이 내세우는 도둑의 기본 도리는 도덕적 가치를 상실한 당시 사회에 대한 냉소적인 풍자였지만, 그 속에는 공정한 가치를 갈구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요구가 들어 있다.
우리는 그 간절한 바람을 위해, 그래서 공정한 가치가 우위에 있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기사댓글 0
BEST 뉴스
-
[풍경이 있는 산문 64] 황홀한 색채의 블랙홀에 빠지다
/ 2026 한국 근대 거장전 /2026. 5.19~10.25 : 서울시립미술관(관람 무료) /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 글·사진 / 김진문(시인) 서울시립미술관 1층에 마련된 유영국미술전 홍보물 “와, 색채 바다에 풍덩 빠진 것 같아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전시장. 한 관람객... -
[이달의 문향] 동쪽 끝 넓은 바다 산은 내 안에 있다
울진이 낳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선생 탄생 110주년을 맞아 그의 예술 세계를 다시 만나는 뜻깊은 기회를 가졌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2026 한국근대거장전 《유영국(1916~2002): 산은 내 안에 있다》가 열리고 있었다. 유영국은 생전에 “산에는 뭐든지 있다. 봉우리의 삼각형, 능선의 곡선, ... -
제6화 11회(마지막회) 경징이풀
논산 명재고택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다니!” 이시매는 장탄식하며 울고 있는 어린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마당에서 시립해 있는 장정들에게 저잣거리 시장통에 가서 소녀의 주인이 되는 자를 불러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잠시 후, 장정들이 중년인을 데리고 들어왔... -
[풍경이 있는 산문 63] 선열들의 항일투쟁, 그 길을 걷다(6)
하얼빈역 이도백하행 열차 이제 신흥무관학교로 가는 여정도 중반에 접어들고 있다. 제2일(10월 26일)은 하얼빈역에서 고속열차로 오후 3시 37분 출발, 4시간 걸리는 열차 여행으로 이도백하에 ... -
웅치(熊峙)싸움에서 공을 세운 정담(鄭湛)
울진정담장군숭모회 회장 임우규 임진왜란이 일자 온 강토는 적의 더러운 발에 유린당했으나 오직 일루의 명맥은 호남이었으니 때에 조정에서는 호남을 국가의 근본(根本)으로 보고 있었다. 당시 이치(梨峙 : 대둔산 옆의 금산으로 빠지는 고개) 전쟁에서는 적의 대부대를 섬멸한 큰 ... -
六月報勳(육월보훈)
如水 황정호 전)성균관 전인, 심리상담사 1급 六月蒼穹肅且淸(육월창궁숙차청) 山河有淚憶忠英(산하유루억충영) 丹心不朽存千古(단심불후존천고) 義氣長昭照太平(의기장소조태평) 血染旌旗光日月(혈염정기광일월) 魂歸松柏守王城(혼귀송백수왕성) 報國情神垂後世(보국정신수후세) 人間正道自分明(인간...
NEWS TOP 3
추천뉴스
정치/행정/의회
more +-
‘울진의 여름을 반값으로 누리다’
울진군이 다가오는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맞아 파격적인 혜택을 담은 ‘울진의 여름을 반값으... -
울진군 전역에 펼쳐지는 감염병 예방관리
울진군보건소는 여름철 증가하는 감염병 발생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감염병의 전파와 확산 방지를 위... -
장원섭 교수 초청 ‘제37회 목요특강’ 개최
울진군은 오는 23일 오후 5시 울진군청 대회의실에서 장원섭 교수를 초청해 “울진과 정담장군, 과거... -
울진군, 여름철 집중호우 대비
울진군은 여름철 기습적인 집중호우와 태풍 등 자연재난으로부터 군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침...
사회/경제/교육
more +-
국립울진해양과학관, 밀폐공간·온열질환 사고 대응 모의훈련 실시
국립울진해양과학관이 여름철 폭염과 고온다습한 작업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온열질환과 밀폐공간 ... -
울진교육지원청, 2026 찾아가는 독도 사랑 교육
경상북도울진교육지원청(교육장 이기협)은 2026년 7월 13일(월)과 7월 20일(월) 10:00~11:30, 13:00~... -
울진소방서, 여름 휴가철 맞아 다중이용시설 화재예방 강화
울진소방서(서장 조상국)는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맞아 관광객과 군민들이 많이 찾는 다중이용시설... -
후포고, 나만의 색으로 미래를 디자인하다 퍼스널컬러 진로체험 프로그램
후포고등학교(교장 박수호)은 지난 7월 14일(화), 1학년,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계절 컬러 진단...
원자력소식
more +-
한울4호기, 제18차 계획예방정비 마치고 100% 출력 도달
한국수력원자력(주) 한울원자력본부(본부장 이세용, 이하 한울본부)는 “지난 5월 18일 계획예방... -
한울본부, ‘제3회 한울 열광 문화제’ 성료
한국수력원자력(주) 한울원자력본부(본부장 이세용, 이하 한울본부)는 7월 17일(금) ~ 18일(토) 양일... -
한울2호기 방사능방재 전체훈련 실시
한울원자력본부는 7월 16일 한울2호기를 대상으로 방사능방재 전체훈련을 실시하며 원전 비상상황 대... -
한울본부, 7월 「한울다누림무비데이」 시행
한울원자력본부는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7월 21일, 22일 양일간 한울에너지팜 대강당(300석)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