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시댁 가까운 동네에 사시는 할머니 한분을 읍내 장터까지 태워드린 적이 있습니다.
여든이 넘으신 분이 혼자 사시는 모양이었습니다. 자식들은 모두 도시에서 그런대로 사는 형편이라고 하시며 당신께선 그저 고향이 좋아 이곳을 떠나지 못할 뿐이지 자식들이 모시지 않으려고 해서 혼자 남아있는 건 아니라고 여쭈지도 않은 말씀을 몇 번이나 되풀이 하시더군요. 장에는 왜 가시냐고 했더니 이번 추석에 자식새끼들 오면 줄 생선들을 사다 말릴 작정이라고, 어디 사는 누구는 뭘 좋아하고 또 어떤 자식은 뭘 좋아한다고 얘기가 끝도 없이 흘러나왔습니다. 말벗이 필요하셨던 게지요.
여름내 텃밭에 키웠던 푸성귀들 내다 팔아 만든 돈이 제법 된다고 비닐 종이에 몇 겹이나 똘똘 말아 간직한 돈주머니까지 흔들어 보여주실 땐 울컥 눈물이 날 뻔도 했습니다. 가자미도 사야하고, 새치고기도 사야하고, 가오리도 사야하고, 그것들을 말릴 땐 제 각각 방법이 다르니 조심을 해야 되고 그렇지 않으면 냄새가 나서 먹지 못한다고 나중엔 신이 나서 설명을 하시다보니, 금방 읍내 장거리엘 도착할 수 있었지요. 굽은 허리춤에 꽁꽁 매달린 비닐 주머니를 보물처럼 감싸 쥐고 내리시는 할머니 모습은 지금도 아릿하게 떠오르곤 합니다. 지금쯤 할머니네 바지랑대 끄트머리엔 부시도록 고운 가을볕을 함박꽃처럼 머리에 인 생선들이 할머니 애틋한 마음처럼 펄럭이고 있을까요?
그래요, 제 사는 이곳에선 명절 무렵이면 어느 집에서건 빨래 줄에 내걸린 생선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명절 음식으로 첫 번째 꼽히는 것이 바람과 볕에 꾸덕꾸덕 잘 말린 갖가지 생선들을 알맞게 쪄내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 맛은 촌 아낙들의 무명 앞치마에 배인 땀내만큼이나 순하고 담백하다는 것이 특징이지요. 처음 시집와선 비린 음식들을 잘 못 먹는 식습관 탓에 고생을 좀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그 순한 맛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이젠 굳이 명절이 아니더라도 평소 식단에 말린 생선들을 쪄서 상차림을 하곤 합니다. 담백한 나물국 한 가지를 곁들여서요.
제 시댁은 면소재지이니 행정상으로는 그리 적지 않는 동네입니다. 제가 시집오던 15년 전만 해도 제법 사람이 많은 동네였고 명절 저녁이면 노래자랑을 하거나 윷놀이 같은 걸 하면 골짝마다 사는 사람들이 몰려나와 그야말로 흥겨운 잔치판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하루 종일 이장님 댁 확성기를 통해 유행가들이 흘러나오고 거나하게 취하신 어르신들의 기분 좋은 발자국들이 동네 길을 메우셨지요.
하다못해 동네 강아지들의 짖음조차 들떴었다고 기억되는 오래 전의 명절 풍경들은 직장문제니 자식교육이니 이러저러한 명분으로 젊은 사람들이 동네를 떠나기 시작하면서, 골목골목 올망졸망 자리해있던 상점들도 그 꽁무니를 따라 떠나고 중학교도 없어진 지 꽤 여러 해일뿐만 아니라, 전교생 모두 합쳐 21명 남짓한 아이들이 있는 초등학교가 전부인 쓸쓸한 오지 아닌 오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니 명절이라고 해봐야 북적이지도, 북적일 까닭도 없는 그야말로 적막한 동네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요즘은 명절 연휴가 길어지면 고향에 오기보다는 어디 괜찮은 곳으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더군요. 가족끼리 모처럼 지친 일상을 털어내려 오붓하니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 꼭 나쁘다고 할 일은 아니겠지요. 누구에게나 삶의 휴식은 필요한 법이니까요. 그러하므로 그것을 비난할 까닭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필이면 명절에 모시고 살지도 않는 연로한 부모님을 제쳐두고 제 가족만을 챙겨 휴식처로 떠나는 것은 한번쯤 되짚어 생각해볼 일은 아닐 런지요?
언제부턴가 우리는 너무도 자기중심적으로만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 때가 많습니다. 요즘은 누구나 한결같이 늙어도 자식한테 절대로 기대 살지 않을 거라고 장담을 하지만 희한하게도 그렇던 젊은 시절의 마음은 오롯이 어디로 빠져 달아나고, 그리도 애타게 제 낳은 새끼들이 보고 싶어지는 걸까요?
더군다나 명절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마음은 구덩이에 빠진 듯 허해지기만 하신다니 세상 수많은 자식들이 그런 부모님의 마음을 행여 제 손톱 아래에 끼인 때만큼이나마 헤아리려나요?
제 차에 타고 가시던 할머니께선 연신 웃으며 자식 자랑, 손자 자랑에 명절을 기다리시는 표정이셨지만 어쩐지 쓸쓸하게만 보였습니다. 혼자 사시니 불편한 게 많으시지요? 하였더니 불편할 게 뭐 있느냐고 하시면서도 차에서 내리실 때 혼자 말처럼 새끼들이 자꾸 보고 싶어서 그렇지 하실 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물컹거렸습니다.
저 또한 종가의 맏며느리인데다가 아직 시부모님들이 젊고 건강하시다는 것과 아이들 교육상 멀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부모님을 모시지 못하는 처지이고 보니 할머니의 애틋한 푸념이 자꾸 가슴을 후볐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 우리 근처에 흔히 나도는 명절 증후군이니, 며느리 증후군이니 하는 이름도 괴상한 병명이 온갖 방송매체에서 떠들어댈 추석이 코앞에 닥치고 보니, 명절을 기다리는 세상의 수많은 부모님 얼굴이 여름 하늘의 구름처럼 떠오르면서 제 마음이 불편해지는 걸 숨길 수 없습니다. 저 역시 그 모든 것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인지라 더욱 그러합니다.
다만 결혼한 지도 벌써 15년이나 되는 사람이 기껏해야 하루 이틀 고생하는 걸로 그러한 이상증세에 시달린다는 사실은 어쩐지 조금 창피한 것도 같아서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할 뿐이지요.
그러니 일부러라도 좋은 생각을 하는 겁니다. 언젠가 제 아들딸이 물쑥처럼 자랄 것이고, 어른이 되어 일가를 이룰 것이며, 어느 날 문득 제 자신 가랑잎처럼 늙어있을 테니 그때를 위해 지금부터 스스로를 단련해놓을 일입니다.
당신이 힘들면 나도 힘들고 당신이 슬프면 나도 슬프지만, 당신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명절 며칠이 좀 힘들더라도 나로 인하여 여러 사람이 행복해진다면 이 또한 멋진 일이 아닌가라고 일부러라도 잘난 체를 해보는 것,
요즘처럼 팍팍한 세상에 참 괜찮은 풍경이 아닐 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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