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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기친람(萬機親覽)의 덫

  • 장원섭 교수
  • 입력 2026.08.25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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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기친람(萬機親覽). 임금이 모든 정사(政事)를 친히 살핀다는 뜻이다. 모든 일을 신하에게 맡기지 않고 군주가 직접 챙기는 것이니, 얼핏 보면 부지런하고 책임감 있는 지도자의 모습이라 할만하다. 실제로 전제군주 시대에는 성군(聖君)의 미덕으로 칭송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오래된 함정이 숨어 있다. 지도자가 모든 일을 직접 결정하면 신하는 입을 닫고, 관료는 눈치를 보며, 조직은 한 사람의 지시만 기다리게 된다. ‘꼼꼼한 지도자’가 ‘자신만이 옳다고 믿는 군주’로 변하는 순간이다. 부지런함이 독선으로, 책임감이 권한 독점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오늘날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국무위원은 승지(承旨)나 내관(內官)이 아니며, 공무원 또한 임금의 명령을 받아 적는 서리(署理)가 아니다. 헌법이 대통령 아래에 국무총리와 국무회의, 행정각부를 둔 까닭은 국정을 한 사람의 총명함에 맡기지 않기 위해서다. 대통령은 국정의 방향을 제시하고 결과에 책임지되, 각 부처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파국은 권력을 나누지 않는 대통령제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장관과 참모, 여당과 국회보다 대통령 개인의 판단이 앞서는 정치, 다른 의견을 국정의 자산(資産)이 아니라 충성심의 결여(缺如)로 여기는 정치는 마침내 비상계엄이라는 헌정질서 파괴로 이어졌다. 

 

권한을 독점한 지도자는 실패를 경고하는 조언을 듣지 않으려 하고, 조언을 듣지 않는 지도자는 자신의 확신을 국가의 운명으로 착각한다. 그 결과 ‘만기친람’의 종착지는 부지런한 통치가 아니라 ‘만사독단(萬事獨斷)’이 될 수밖에 없다.

 

새 정부 역시 이 오래된 유혹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와 부처 업무보고를 생중계하고, 장관과 기관장에게 세부 현안을 직접 물으며 답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국정운영을 국민에게 공개한 것은 행정의 투명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물론, 무책임한 보고와 관료적 타성을 질책하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나 공개와 공개 질책은 다르다. 점검과 즉석 심문도 다르다. 정책을 국민 앞에 펼쳐 보이는 것은 민주주의지만, 장관과 기관장을 대통령의 질문에 답하는 수험생으로 세우는 것은 책임행정과는 거리가 멀다. 대통령의 한마디가 곧바로 정책으로 결정되고 장관의 설명보다 대통령의 호통이 더 큰 뉴스가 되면, 모든 행정은 국민이 아니라 카메라와 권력자를 향하게 된다.

 

대통령이 세부 사안을 잘 아는 것은 장점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모든 문제의 정답까지 직접 제시하면 장관은 문제를 고민하여 판단할 이유가 없어지고, 공무원은 창의적으로 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장관은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기다리며 눈치 보기에 급급하고, 아래에서는 맞춤형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바빠질 뿐이다. 대통령은 더 바빠지지만, 역설적으로 정부는 더 무능해지는 함정에 빠지는 구조가 되고 만다.

 

정치지도자들은 야당으로 있을 때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하다가도, 권력을 잡으면 대통령의 강력한 결단을 다투어 찬양한다. 전임자의 지시는 독선이라 매도하고, 자신의 지시는 추진력이라고 아름답게 포장한다. 전임자의 측근 정치는 사유화의 전형이었다고 비난하면서, 자신의 측근에게 권한을 몰아주는 일은 국정철학의 공유라고 둘러댄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런 식으로 권력을 대하는 오만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참된 지도자는 모든 일을 자신이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해야 할 일과 맡겨야 할 일을 구별하는 사람이다. 인재를 발탁해 권한을 맡기고, 성공의 공(功)은 나누되 실패의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 

 

지도자의 지혜는 말을 많이 하고 지시를 세세하게 내리는 데 있지 않다. 자신과 다른 목소리가 권력 앞에서도 살아남게 하는 데 있다.

 

‘만기친람’을 자랑하는 지도자는 자신이 지금 모든 것을 보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모든 것을 혼자 보려는 사람은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는 ‘덫’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국민’이요, ‘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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