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일주일 전 3월 15일은 하희진주의 왕언니 ‘뽀대민주’의 생일이었다. 참고로 우리 반 친구들은 모여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민주의 생일이었던 15일은 우리가 재미있게 놀 수 없는 평일이었다. 그래서 민주는 17일 토요일에 같이 모여서 미뤘던 생일파티도 하고 재미있게 놀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시간은 금방 흘러 눈 깜짝 할 사이에 17일, 우리가 놀기로 약속한 날짜가 되었다. ‘뭐하지, 뭐먹지’하면서 민주네 집으로 가는 내내 우리는 계획을 짰다. 그렇게 우리는 민주 집에 도착해서 허기를 채우기 위해 우선 꽁꽁 숨어 있던 라면들을 와르르 꺼내서 대형 냄비에 끓여서 먹었다. 라면 먹고 한 시간이 좀 지났을 때 날 너무 좋아하시는 민주 어머님께서 피자와 치킨을 사오셨다. 라면 먹은지 얼마나 되었다고, 우리는 티끌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비워냈다.
시계가 나의 통금시간인 5시를 향해가고 있을 때 나는 집에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마을에 사는 하영이는 갈 생각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선호와 가람이 그리고 은혜는 자고 간다고까지 했다. 혜진이는 내가 자고가면 잔다고 하길래, 난 엄마 아빠가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며 혜진이의 애절한 눈빛과 손을 뿌리치고 가방을 챙겨 버스정류장을 향했다. 그런데 배웅을 해준다던 민주, 혜진, 가람, 선호는 버스정류장이 가까워질 즈음에 갑자기 돌변하여 길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하나 같이 “현희야, 자고가면 안되나? 자고가라~ 우리 얼마 만에 모였노~ 응? 니 그냥 이렇게 가면 우리 여기서 밤 샐꺼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친구들이 그렇게까지 하는데 한번 ‘나 죽었소’하고 자줄 수도 있었는데, 나는 왜 그때 끝까지 모질게 뿌리 치고 걸었는지 그게 아직도 의문이다. 아무튼 나는 친구들을 뿌리치고 다시 걸었다.
그렇게 다시 걷는데, 그때부터 상상도 못했던 난투극(?)이 시작되었다. 친구들은 나를 일방적으로 잡아끌기 시작했다. 나는 미친 사람 마냥 “놔라! 놔라! 야! 아빠한테 죽는다!” 이러면서 길 위에서 한바탕 난리를 쳤다. 그렇게 계속 난리를 피우다가 버스 한대가 지나갔다.
친구들은 일제히 “야! 현희 저거 막찬데??” 이러는 것이다. 내 눈앞에서 막차가 지나가는데, 순간 아찔했고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저 차를 못타면 집으로 못 간다는 생각에 잡으려고 애도 써봤지만 버스는 멀어진지 오래, 그래서 나는 길바닥에 벌러덩 누워서 악을 써대며 친구들에게 “너희 때매 나 집에 못 갔어” 하면서 계속 뭐라 뭐라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은 생각도 않은 채... 그렇게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민주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가는 내내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집으로 못 갔다는 죄책감? 날 집에 가지 못하게 한 친구들이 미워서? 부모님한테 혼날 것을 예상해서? 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냥 눈물만 나왔던 것 같다.
그래서 민주 집으로 와서 펑펑 울었다. 민주 어머님은 “현희야, 너무 귀엽다”라고 말해주시고, 친구들은 미안하다면서 ‘울지 마라’면서 달래줬다. 혜진이는 민주네 고장난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불러주기까지 하며 날 위로했다. 그런데 나는 요즘 공부도 제대로 안 해서 부모님께 너무 죄송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 같기도 하다.
민주 집에서의 하룻밤은 정말 즐거웠다. 저녁을 먹고, 잠옷과 츄리닝을 입고 민주네 집에서 약 30분정도 거리에 있는 바닷가도 갔다 오고, 옷도 그렇게 입고 나가서 7명 모두 집에 돌아와서는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코를 킁킁 거리고, 민주네 집에 돌아와서는 또 늦게까지 장난치고... 그렇게 재밌게 놀다보니 시계바늘은 12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얼마나 재밌게 놀았던지 우리 “오늘 밤새자!”라고 말해놓고도 선호랑 가람이는 꿈나라고, 혜진이, 민주, 은혜, 용이만 눈을 말똥말똥 뜨고 조잘 조잘댄다. 나는 그 틈에서 재잘대다가 잠이 들었는데, 친구들은 1시가 넘어서 잠이 들었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니 지난밤에 편 갈라서 무슨 전쟁이라도 났는지 친구들 머리는 폭탄을 맞은 듯 부스스하고, 머리가 뜯긴 듯 여기저기에는 머리카락 투성이고, 앞머리는 하나같이 하늘로 솟구쳐 있었다. 민주네 어머님이 차려주신 맛있는 아침을 먹고 잠깐 있다 보니, 12시가 훌쩍 넘어갔다. 잠시 장난을 치다가 민주 어머님 차에 7명이나 끼어 타고 우리의 마지막 놀이코스 노래방으로 갔다. 처음에는 좀 어색한 분위기여서 제대로 놀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잡힌 중반 즈음에는 너도나도 난리 부르스를 쳤다. 그래서 우리가 자주 애용하는 일명 “삐리삐용 노래방”아저씨는 우리만 가면 별로 좋아하는 눈치는 아닌 것 같다. 갈 때마다 1시간밖에 안하는데 “아저씨 보너스 많이 넣어주세요.”라고 하고, 거기에다 노래방 전체가 쩌렁쩌렁 울릴 만큼 정말 시끄러워서인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노래방에서의 마지막 놀이를 끝내고 해산했다.
그리고 나는 긴장하며 집으로 들어갔지만, 그리 많이 혼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설거지도 하고 온갖 애교와 아양을 다 떨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 집에서의 외박사건은 잊혀져 갔지만 재미 있었던 장면들을 건망증 심한 내가 이렇게 기억하는 걸 보니, 그것들이 내 머릿속 하드디스크에 추억이라는 파일로 남아있는 것 같다.
친구들이랑 같이 자고 부모님께 애걸복걸 애교 떨며 허락 맡고, 놀고 이런 것들은 어떤 사람들이 보면 꼴불견일지 몰라도 학생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고, 이때가 지나버리면 다시는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님께 좀 소홀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중에 더 성장해서 지난 학창시절을 떠올려보면서, 아예 공부했던 것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얼마나 더욱 슬픈 일인가.
그래서 나는 즐기고 싶을 때 즐길 수 없는 나이, 공부를 해야 할 나이에 조금 더 즐기면서 공부를 덜하는, 그런 청개구리 같은 학창시절을 보내고 싶다.
내 소중한 추억들을 위해서... 하루 동안 저희들 밥 차려주신다고 고생하신 민주 어머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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