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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해에서 돗토리까지 열두 사람의 이름을 다시 부르다.

  • 김세연 기자
  • 입력 2026.10.1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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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원섭 교수, 『한국사 비사 열전 4』 바다가 돌려보낸 사람들 출간
  • 1819년 안의기 선장의 귀환과 울진-돗토리 교류 그리고 은사와의 오래된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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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년 음력 정월, 당시 강원도 평해의 한 포구에서 안의기 선장과 열한 명의 일행이 배에 올랐다. 오늘날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일대에 해당하는 곳이다. 

 

배에는 멸치와 엽연초가 실려 있었다. 이들은 고기만 잡는 어부가 아니라 바다에서 얻은 물산을 싣고 연해의 장시와 포구를 오가던 생활인이었다. 그러나 출항 뒤 거센 겨울 풍랑을 만나 육지를 잃었고, 닷새 동안 동해를 떠돈 끝에 일본 돗토리번 해안에 표착했다.

 

낯선 조선인 열두 명을 발견한 일본 어민들은 이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물과 죽을 내주고 젖은 옷을 갈아입혔으며, 돗토리번 관리들은 신원을 조사한 뒤 숙식과 치료를 제공했다. 일행은 돗토리에서 나가사키로, 다시 쓰시마와 부산을 거쳐 그해 늦가을 조선으로 돌아왔다. 떠날 때도 열둘이었고 돌아올 때도 열둘이었다.

 

이들의 표류가 전설에 머물지 않는 까닭은 일본에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돗토리현립도서관이 소장한 「표류조선인지도」에는 안의기 선장과 선원들의 얼굴, 이름, 나이와 출신지가 기록돼 있다. 나가사키까지 일행을 호송한 관리 오카 긴에몬에게 안의기가 남긴 감사장도 전한다. 안의기는 일본인들의 은혜가 태산처럼 높고 강과 바다처럼 깊으며, 자신들을 친형제처럼 돌보았다고 썼다.

 

장원섭의 새 책 바다가 돌려보낸 사람들은 이 기록을 바탕으로 겨울 바다의 고난과 귀환을 복원한 역사 교양서다. 확인되는 이름과 날짜, 화물, 표착지와 송환 경로는 사료에 따르고, 기록이 침묵하는 선상 대화와 고향 가족들의 기다림은 당시 동해안 사람들의 생활과 정서에 기대어 신중하게 구성했다. 저자는 일본을 일방적으로 미화하거나 조선을 폐쇄적인 사회로 단순화하지 않고, 국가의 경계 속에서도 죽어가는 사람을 먼저 살렸던 개인들의 선택을 바라본다.

 

책이 울진 독자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이유는 바닷가에 남은 사람들의 마음을 함께 다루기 때문이다. 귀항 예정일이 지나도록 배가 돌아오지 않자 가족들은 포구와 선주 집, 선장 집을 오가며 소식을 기다린다. 

 

저자는 이를 단순한 상상으로만 쓰지 않았다. 울진군 북면 나곡1리 석호마을에서 어부의 아들로 자란 그는 어린 시절 태풍을 만나 보름 만에 돌아온 아버지를 기다린 경험을 끝맺는 말에 담았다. 바다에 나간 사람만 표류하는 것이 아니라 육지의 가족들도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함께 표류한다는 것이다.


1819년의 인연이 오늘의 교류로


안의기 선장의 사건은 200여 년 전의 표류담으로 끝나지 않았다. 울진군은 1994년 11월 돗토리현 아카사키정과 교류를 시작했다. 아카사키정은 이후 고토우라정으로 통합됐으며, 두 지역이 교류를 맺은 공식적인 역사적 계기로 1819년의 표류와 구조가 기록돼 있다. 

 

당시 평해가 강원도에 속했던 역사 때문에 이 사건은 강원도와 돗토리현이 1994년 자매결연을 맺게 된 인연으로도 기억된다. 고토우라정에 조성된 일한우호교류공원은 겨울 바다에서 시작된 만남이 지역 간 우정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그 인연의 출발점에 울진 평해 사람들의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고향으로 되돌려 놓는다. 안의기는 두려움을 모르는 영웅이 아니었다. 가족을 그리워하고 자신의 판단을 걱정했으며, 굶주림과 추위 앞에서 흔들렸을 평범한 선장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화물과 배를 버리면서도 사람을 버리지 않았다. 열두 명이 끝까지 서로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에 모두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는 것이 책의 중심 메시지다.


은사에게 뒤늦게 올리는 약속의 책


이 책에는 또 하나의 긴 시간이 포개져 있다. 2003년 8월, 저자의 고등학교 시절 교감이었던 고 김재윤 교장선생님은 세중옛돌박물관 학예연구실장으로 일하던 제자를 찾아왔다. 안의기 선장의 후손을 찾고 있으나 어려움이 많으니 역사를 전공한 제자가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선생님은 “장 군, 이건 우리 고향을 위한 일이기도 하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순흥 안씨 족보와 관련 기록을 대조하며 후손의 흔적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김재윤 선생님은 자신이 작성한 원고와 모아둔 자료를 모두 건네며 이제 이 일은 “장 군이 맡아서 계속해 주게.”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저자는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느라 그 약속을 제때 지키지 못했다. 정년 뒤에야 자료를 다시 펼쳐 안의기 선장을 「한국사 비사 열전」의 네 번째 주인공으로 삼았다. 2003년에 시작된 약속이 20여 년 뒤 한 권의 책이 된 것이다.

 

원고를 마무리할 무렵 은사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확인한 저자는 추모사에서 살아 계실 때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죄송함을 고백하며, 회한의 눈물을 쏟아낸다. 그리고 이 책을 김재윤 선생님의 영전에 바치며, 아직 찾지 못한 안의기 선장의 후손을 찾는 연구도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역사 자료를 세상에 내놓는 일이 한 제자가 은사에게 늦게 올리는 사죄이자 약속의 이행이 된 셈이다.


“바다는 사람을 삼킬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고 이름을 불러주는 한, 그 이름까지 삼키지는 못한다.”


바다가 돌려보낸 사람들은 울진 바닷가 사람들이 바다를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보여준다. 동시에 국경과 언어가 달라도 위험에 빠진 생명을 먼저 살렸던 사람들의 선택을 기록한다. 

207년 전 평해에서 출항한 열두 사람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이 책은 울진과 돗토리의 오래된 인연을 오늘의 독자에게 건네는 지역의 기억이기도 하다.


저자 장원섭은 울진군 북면 나곡1리 석호마을 출신으로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신라 삼국통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역사학자이자 교육자다.


도서정보  장원섭 글, 한국사 비사 열전4 『바다가 돌려보낸 사람들』

푸른영토.  11,000원(2026년 9월 30일 출간)  ISBN 979-11-92167-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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