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7년 핵폐기장 반대 집회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5월 26일, 앞으로 12년에 걸쳐 사용후 핵연료 중간저장시설·영구처분시설 부지를 선정하고, 중간저장시설은 2035년, 영구처분시설은 2053년부터 각각 가동에 들어가는 내용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 계획(안)’을 발표했다.
이에 핵폐기장 부지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빠짐없이 날선 도마 위에 올랐던 울진 땅이 이번에는 또 어떤 격랑에 휩쓸릴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정부의 계획안에 따르면, 고준위 핵폐기장 부지 선정 절차는 ‘전국적으로 입지가 부적합한 지역 제외’→‘유치에 적합한 지역의 지자체를 대상으로 부지 공모’→‘대상 부지에 대한 기초 조사·부지 특성·적합성 평가’→‘기본 조사 통과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주민 의사 최종 확인’→‘주민 의사가 확인된 부지에 대한 심층 조사를 거쳐 확정’하는 순으로 추진된다.
부지 공모 신청을 하는 지자체가 없을 경우에는 정부가 직권으로 부지를 선정할 방침이다.
정부는 부지 선정에 총 12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부지 선정 작업에 들어갈 경우 2029년이면 최종 부지가 선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1991년 핵폐기장 반대 집회
고준위 핵폐기장 부지가 확정되고 나면 정부는 7년간 중간저장시설을 건설하는 동시에 14년이 소요되는 인허가용 지하연구시설(URL) 건설·실증 연구를 동시에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영구처분시설은 인허가용 URL에서의 실증 연구 이후에 건설하며 약 10년이 소요될 것으로 계획됐다.
결국 핵폐기장 부지 조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부지를 선정하는데 12년, 중간저장시설 및 인허가용 URL 건설·실증연구에 14년, 인허가용 URL 실증 연구 이후 영구처분시설을 건설하는데 10년이 소요되는 등 최종적으로 영구처분시설은 2053년이나 되어야 본격적인 가동이 가능하다.
저장 방식의 경우, 중간저장시설은 운영·확장의 용이성과 경제성 등을 감안하여 건식저장방식을 채택하고, 영구처분시설의 경우 심층처분과 다중방벽시스템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으로 밝혔다.
이와 함께 정부는 국제 협력을 기반으로 한 국제 공동 저장·처분 시설 확보 노력을 병행하고, 안전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지향하는 핵심 관리 기술을 적정한 시기에 확보하겠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7월 중으로 국무총리 주재의 원자력진흥위원회를 거쳐 기본계획(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또한 가칭 ‘고준위 방폐물 관리 절차에 대한 법률’도 올해 안에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1992년 핵폐기장 반대 집회
◈정부가 지난 1983년부터 핵폐기장 부지 확보를 추진한 이래 33년간 뜨거운 감자였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으로 중장기 로드맵을 발표한 것은, 현재 각 원자력발전소 내에 임시로 보관중인 방사성폐기물의 포화 상태가 임박하고 있다는 위기감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한울원자력발전소의 경우 사용후 핵연료 임시 저장고의 저장 용량 7,066다발 중 2015년 말 현재 저장된 양이 4,855다발(포화율 68.7%)로 2037년에 포화가 예상된다.
중수로형인 월성원자력발전소의 경우 2019년에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한빛원전은 2024년, 고리원전은 2024년, 신월성원전은 2038년으로 각각 예상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와 관련해 고준위 핵폐기장이 완공되어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이전까지는 각 원자력발전소 부지 안에 단기적으로 건식저장시설을 확충하여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5월 26일 행정 예고한 산업통상자원부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 계획안’은 2013년 10월에 출범했던 ‘사용후 핵연료 공론위원회’가 20개월 동안 국민들의 의견 수렴 활동을 거쳐 2015년 6월에 정부에 제시한 권고안을 바탕으로 1년 만에 만들어졌다.
1999년 녹색연합 녹색순례단이 울진군청 앞에서 신규 원전 추가 지정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2000년 신규 원전 추가 지정 반대 집회
◈울진 지역은 특히 지난 1986년부터 핵폐기장이나 원자력발전소 신규 부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변함없이 후보 지역으로 거론되며 ‘핵몸살’을 앓아왔다.
지역 주민들 간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은 물론 생업까지 포기하면서 군민들이 격렬하게 전개한 핵폐기장 반대 시위 과정에서 다수의 주민들이 체포 구금당하는 일까지 번번이 발생했다.
지난 1986년~89년에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울진, 영덕, 영일군의 지질 조사를 거쳐 핵폐기장 후보지로 지목하자 대규모 주민 시위가 일어났고, 1991년~93년에도 울진군은 강원도 고성, 양양, 경북 영일, 전북 장흥, 충남 태안 등 6개 후보지로 지목당하며 집단 주민 시위가 발발했다.
1993년~94년에도 정부가 유치 신청 지역에 대한 지원 사업을 제시하며 울진군과 경남 양산을 지목하면서 연일 주민 시위 사태를 불렀다.
그리고 2003년에도 정부는 울진군을 포함한 영덕, 전남 영광, 전북 고창 지역을 핵폐기장 예비 후보지로 선정하면서 극심한 주민 반대에 부딪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불과 5년 전인 2011년에는 현 임광원 군수가 울진군의회의 동의를 거쳐 근남면 산포리 일원에 신규 원자력발전소 유치를 신청했다가 무산된바 있다.
2011년 2월 9일 군의회는 군 집행부의 요청에 따라 ‘제181회 울진군의회 임시회’에서 박달수 의원이 청가(휴가)를 내고 장기간 불출석한 가운데, 장시원 의원을 제외한 송재원 의장, 김완수 부의장, 장용훈, 안순자, 전신규, 백정례 의원 6명의 찬성으로 ‘신규 원전 건설부지 유치 동의안’을 원안 가결했다.
당시 울진군은 신규 원자력발전소를 유치하면 원전 건설에 따른 인구 유입 효과는 물론, 특별 지원금, 기본 지원 사업비, 한수원 사업자 지원금, 지역 개발세, 기타 지방 세입으로 20여 년간 약 1조원의 수혜를 입는 등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전단지를 반상회에서 배포하는 등 신규 원전 건설부지 유치에 열을 올렸다.
정부가 고준위 핵폐기장 유치에 적합한 지역의 지자체를 대상으로 부지를 공모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지금, 울진군민들의 시선이 군 집행부와 군의회에 집중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2011년 2월 9일, 6대 군의회가 제181회 임시회에서 집행부가 상정한 신규원전 건설부지 유치 동의안을 제석의원 7명에 찬성 6명, 반대 1명으로 가결하고 있다
2011년 11월 23일, 한울원전 정문에서의 ‘핵발전소 신규 부지 선정 폐기 촉구’ 울진-삼척-영덕 지역 합동 기자회견
◈한편, 정부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 계획안’ 발표와 관련해 경북도의회, 경주시의회, 경주경실련을 비롯한 일부 환경단체 등은 정부의 일방적인 추진에 대해 반대 결의안과 반대 성명서를 내는 등 반발하고 있다.
경북도의회는 6월 24일 ‘제285회 정례회 제4차 원자력안전위원회(위원장 최병준)’를 열고, 정부의 일방적인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 계획안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도의회는 많은 희생을 감내하고 있는 원자력발전소 주변 지역 주민은 물론, 경북도민에 대한 현실적이고도 깊이 있는 지원 정책이 추진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 계획안에 대한 정부의 일방 통행식의 공론화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이어서 기본 계획안이 범국민적인 합의가 이루어져 확정될 수 있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고준위 핵폐기물 발생 전망>
<월성원전 내 건식저장시설 사례>
월성원전이 위치한 지역의 경주시의회 또한 6월 21일 ‘제214회 제1차 정례회 제2차 본회의’에서 정부의 기본 계획안에 대해 반대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경주 경실련과 다수의 환경단체들 또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오는 2019년에 고준위 핵폐기물이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저장밀도가 높은 조밀건식저장시설(맥스터)을 추가로 건설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 월성원자력발전소 인근 지역 주민들은 정부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기본 계획안이 발표된 이후부터 장기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많은 원자력발전소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인 울진군과 울진군의회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 계획안이 발표된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 7월 18일 현재까지도 아무런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어 대조적이다.
정부가 고준위 핵폐기장 부지 선정 공모 방침을 밝힌 지금, 2011년 신규 원전을 유치하려고 노력했던 울진군 집행부와 신규 원전 유치에 동의했던 울진군의회의 향후 행보에 또 다시 관심이 모아진다.
또한 과거 9차례에 걸쳐 고준위 핵폐기장 부지 선정에 실패를 거듭하며 시행착오를 겪었던 정부가 그 실패를 교훈삼아 어떤 방식의 소통을 통해 포괄적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지에도 시선이 쏠린다.
여하튼 울진군이든, 울진군의회든, 정부든, 어떤 지역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가를 수도 있는 중대한 사업을 하면서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관(官) 주도로 밀어부쳐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는 절대 지양해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끝끝내 고준위 핵폐기장 부지 마련의 핵심은 막연한 기술적 낙관주의나 극소수의 전문가주의가 아니라, 유연하고도 폭넓게 해당 지역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정부의 정공법에 기인한 사회적 신뢰라는 것이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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