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효부 현풍 곽씨의 명정을 펼쳐보이는 남호열씨 |
340여 년 전에 죽은 사람의 무덤 속에서 원형이 거의 훼손되지 않은 온전한 상태의 명정(銘旌)과 현훈(玄纁), 근봉(謹封)이 출토되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근남면 수곡1리 비월동 뒷산에 위치했던 이 무덤은 역대 울진군의 효부로서「울진군지」에 기록되어 있는 영양(英陽) 남윤(南昀)의 부인 현풍(玄風) 곽씨(郭氏)의 무덤으로 명정 등의 장의용품은 지난 2005년 12월 이장(移葬)을 하는 과정에서 출토되었다.
이번에 발견된 명정은 약 250cm 길이에 폭은 약 50cm 정도의 크기로서“고유인곽씨지구(故孺人郭氏之柩)”라는 한문글씨가 세로로 쓰여 있다.
그리고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낼 때에 산신에게 바치는 검은 헝겊과 붉은 헝겊의 두 조각 폐백 장례용품인 현훈은 세월의 무게 탓에 색깔이 바래어 있다.
또 현훈을 무덤 속에 묻을 때 묶어주는 띠인 근봉도 함께 출토되었다.
영양 남씨 후손으로 현풍 곽씨 부인의 묘소를 이장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남호열(南鎬烈. 77세. 근남면 행곡리)씨는 “이장을 하기 위해 곽씨 할머니 묘를 파묘(破墓)했는데 명정과 현훈, 근봉이 마치 얼마 전에 사용했던 것처럼 손상되지 않고 남아 있어서 자신이 보관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또“곽씨 할머니가 모셔졌던 나무관은 외관(外棺)안에 내관(內棺)이 있는 이중 관으로 돼 있었고, 관위의 회반죽을 어찌나 두껍게 했는지 주위에서 다들 놀랐다”며 이장 당시의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자신의 14대 조모인 곽씨 부인의 장의용품을 보관중인 남호열씨는“300년이 훨씬 지난 장례용품이 원형에 가까운 보존 상태로 출토된 것도 지역에서는 최초의 일이지만, 역사적으로 기록이 남아 있는 효부와 관련된 것인 만큼, 울진의 역사 유물로 보존되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또“현풍 곽씨가 영양 남씨 집안의 며느리였던 만큼 현재 건립중인 남사고 유적 기념관등에 보존처리 후 진열된다면 더욱 뜻있는 일이 될 것”이라면서,“보존할 공간만 마련된다면 언제든지 기증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곽씨 부인의 유해는 2005년 12월 8일 근남면 수곡2리 두전동(斗前洞-말앞)에 위치한 남편 남윤(南昀)의 묘 옆에 나란히 합장되었다.
|


|
| ▲현훈(상)과 근봉(하) 모두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
효부(孝婦) 곽씨(郭氏)에 대해「울진군지」는“적(籍)은 현풍(玄風)이며 참봉(參奉) 곽안석(郭安碩)의 딸로 영양(英陽) 남윤(南昀)의 처다.
시부모에게 극진히 효도하고 공양을 하였으며 일상생활에 조금도 거슬림이 없도록 노력하였다. 또 시아버지 임천공(臨川公)이 늙어서 이가 빠져 음식을 먹지 못하므로 곽씨가(나이 65세가 되어도 젖이 나왔음) 매일 아침 계단 아래에서 절하고 곧 마루에 가까이 가서 시아버지에게 젖을 대접하여 수명을 연장케 하니 향인들이 그의 효행을 칭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영양 남씨(英陽南氏) 대광공파(大匡公派) 13세손의 손부인 현풍(玄風) 곽씨(郭氏)는 울진 행곡리 주천대(酒泉坮) 옆에 집을 짓고 20여 년 동안 은거했던 만휴당(萬休堂) 임유후(任有後)와 교우하던 임천(臨川) 남세영(南世英)의 둘째 며느리이다.
곽씨 부인의 시아버지 남세영 또한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의 종기 병을 고치기 위해 입으로 종기 고름을 빨아내고 심지어 대변의 맛을 보면서까지 어버이의 병환을 살피고, 부모의 상을 당해서는 묘 옆에 여막을 짓고 여묘(廬墓)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