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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의 진산(鎭山), 안일왕산(安逸王山)

  • 이명동기자 기자
  • 입력 2007.06.13 12:39
  • 글자크기설정

▲ 안일왕산의 `대왕소나무', 울진에서 가장 큰 금강소나무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울진군에는 1천 미터 높이를 전후한 산이 세 군데나 있다.
북면의 응봉산(鷹峰山 또는 매봉산, 999미터), 서면의 통고산(通高山, 1,066미터), 온정의 백암산(白岩山, 1,004미터)이 그것이다.
 

그런데 울진의 산을 웬만히 다녀본 사람들이 ‘울진 최고의 산, 산중의 산’이라고 극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안일왕산(安逸王山)이 있지만 정작 주변에서 이 산을 올라 보았거나 이름이라도 들어보았다는 사람들을 만나기는 어렵다.
 

임도 입구에서 1시간 쯤 걸어가면 나타나는 안일왕산 입구의 계곡
예로부터 ‘울진의 진산(鎭山)’으로 불리면서 숭배되어 온 명산인 안일왕산은 서면 소광리에 자리를 잡고 있다.
북면 두천리에서 소광리로 이어지는 임도로 접어들어 좌우로 도열한 소나무 숲 비포장 길을 따라 고갯마루 하나를 넘어서 1시간쯤 부지런히 걷다보면 작은 계곡 바로 옆쪽으로 안일왕산 입구가 나타난다.
 

고갯마루를 오르는 길은 군데군데 시멘트로 포장된 부분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비포장 흙길이고, 산 고개를 넘어서서 아래로 내려가면 왼쪽으로 사시사철 송사리가 헤엄치는 모습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명경 같은 내(川)가 나타난다.   
 

이쯤 걷다보면 조금은 거친 숨을 몰아쉬게 되지만 폐 속을 들락거리는 산 공기부터 확연히 달라진다. 기분 좋고 나른하게 온몸을 파고드는 짙은 솔 향이며, 이름 모를 온갖 화초들이며, 나무 위 작은 새들의 지저귐까지,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적되어만 가는 웬만한 시름은 가히 잊을만하다. 내를 끼고 다시 임도를 따라 오르며 콘크리트 다리 두군데를 지나고, 세 번째 다리 바로 못미처 오른쪽으로 작은 오솔길이 설핏 보이는데 바로 이곳이 안일왕산으로 진행하는 초입이다.
 

초행자는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아야 겨우 모습을 드러내는 안일왕산 입구는 나목의 계절인 겨울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짙은 수풀로 가려져 있다.
산입구로 들어서서 10분쯤이면 금세 골짜기는 깊어지고, 사방으로 숱한 종류의 수목이 줄지어 서며 앞을 가로막는다.
 

안일왕산에서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나무는 소나무와 참나무류인데, 특히 가장 흔히 보이는 소나무들은 어림짐작으로도 각각 1백년 이상의 나이를 자랑하면서 아름드리 굵기로 하늘로 하늘로 키를 늘여 서 있다.
 

안일왕산 정상의 석성,
약 1킬로미터 구간이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평소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허리까지 잠길 만큼 깊이 쌓인 낙엽을 헤치고 좌우로 오랜 수령을 뽐내는 소나무와 참나무들을 구경하면서 1시간 남짓 걸어 올라가면, 적의 침공을 피해 울진 지역으로까지 피난을 왔었다는 고대 삼한시대의 부족국가인 실직국((悉直國-현 삼척 지방)의 임금인 안일왕이 쌓았다는 성인 토석혼축(土石混築-흙과 돌을 섞어서 쌓은 성)의 긴 성벽이 눈길을 끈다.
 

왼쪽으로 야트막한 성벽을 끼고 20~30분 남짓 걸어 올라가면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아름드리 굵기의 소나무 가운데서, 북쪽 낭떠러지 정상부에 자리 잡은 채 유독 눈길을 끄는 한그루 소나무가 자태와 위엄을 자랑하며 우뚝 서 있다.
 

불러 대왕소나무(大王松)! 이 소나무를 직접 마주한 사람들은 감히 이 소나무를 ‘대왕소나무’로 부르는데 추호의 망설임이 없다.
둘레가 4미터나 되는 대왕소나무는 울진 금강송 특유의 황금빛을 띈 거대 황장목으로써, 순수의 금빛으로 구불거리면서 사방으로 뻗어나간 가지들과 20여 미터는 족히 됨직한 키와 우람한 몸통은 가히 바라보는 이들을 압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대왕소나무의 황금빛 가지.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대왕소나무’는 서면 소광리 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500년 추정 수령의 보호수(경북 16-2호)보다 훨씬 더 크고 옹골찬 울진소나무 특유의 모양새를 지니고 있다.
사실상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려운 안일왕산의 대왕소나무를 대부분의 주민들은 잘 모르고 있고, 산림 관계기관들조차 정확한 실태 조사를 수행하지 않고 있다.
 

울진군 관계자 모씨는 “수년전에 일부에서 안일왕산 대왕송을 보호수 등으로 지정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우선적으로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운 만큼 지정하더라도 그 의미가 반감되고, 또 보호수 등으로 지정함으로써 오히려 훼손되는 사례가 있는 만큼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대왕소나무가 서 있는 안일왕산의 9부 능선 일대에는 2천여 년전 삼척을 기반으로 하는 ‘실직국’왕인 안일왕이 울진지역의 ‘파조((波朝, 또는 파단(波但))’국을 병합하여 부족국가를 이루고 있을 때, 강릉 일대를 기반으로 하던‘예국’의 갑작스런 침략으로 서면 소광리의 안일왕산까지 쫓겨 와서 급히 성을 쌓고 임시 피난처로 삼았을 당시의 주둔지로 추정되는 넓은 공터가 있다.
 

공터를 오른쪽으로 끼고 다시 발길을 재촉하여 북서방향으로 10여분을 더 올라가면 토석혼축의 성벽은 끝이 나고 석축(石築) 성벽이 나타난다.
2천여 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돌로 쌓은 성벽은 지금까지도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감동을 던진다.
 

성벽의 폭은 약 2미터 내외, 현재의 높이는 약 1.5미터 정도로써 일부 유실된 구간을 제외하더라도 약 1킬로미터 구간이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한때의 치열했던 인간사를 무심하게 전하고 있다.
 

성벽위에 올라서면 이천 여 년 전 당시에 이곳으로 피난을 떠나온 실직국의 백성들로 소란스러웠을 성안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서북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낙동정맥(洛東正脈)의 단조롭지 않은 산세들이 수려한 자태를 뽐내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달린다.

안일왕산 정상의 고사목과 저멀리 낙동정맥의 단조롭지 않은 산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아름드리나무들이 하늘로 쭉쭉 높이를 견주는 한쪽에서는 산양(山羊)의 배설물을 어렵지 않게 구경할 수 있는 곳이 또한 안일왕산이다.
안일왕산은 천연기념물 217호로 지정되어 있는 산양의 주요한 이동 통로 및 서식처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해발 818.1미터 높이의 안일왕산은 낙동정맥의 지맥 가운데 하나인 아구지맥(蛾口枝脈)에 속한다고 산악인들은 전한다.
 

아구산(蛾口山, 일명 악구산)은 울진읍 대흥리 본동을 거쳐 안미팥골과 검미팥골을 지나 1시간 20~30분쯤 걸어 올라가면 다다를 수 있는 험준한 지세의 악산으로 652.9미터 높이로써 주변에서는 가장 우뚝하다.

정상부근의 돌로 축조한 성벽을 따라 5분쯤 걸어 올라가면 드디어 산의 정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내린 성벽이 성안을 아늑하게 감싸 안고 있는 안일왕산의 정상에는 네다섯 명이 둘러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 저절로 생겨있고, 2004년 건설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설치한 측량표가 바닥에 설치되어 있다.
 

눈을 들어 동북쪽을 바라보면 울진원자력발전소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동쪽으로는 드넓은 동해바다와 죽변항구가 마치 한손에 잡힐 듯 다가든다.
 

남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구불구불한 긴 해안선을 따라 연안을 접한 낮은 산들이 남으로 달려가고, 저 멀리 아직까지 비행기가 뜨고 내리지 못하는 기성공항 활주로가 일자로 뻗어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예전에 신라시대의 제의와 관련된 산천 체계는 산천의 중요도에 따라서 대사(大祀), 중사(中祀), 소사(小祀)로 나눠졌는데, 모두 다 국가적으로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다.
 

소사에 속한 산천으로 명주(溟州-강원도의 동쪽 중앙에 있던 군, 현 강릉시 일원) 관할에 속했던 산천은 고성의 상악(霜岳-금강산)과, 수성군(간성)의 설악(雪岳), 우진야군(于珍也郡-울진)의 악발((岳髮-발악(髮岳))이 있었다고 전한다.
 

드넓은 명주군 관내에 소사에 속한 산천이 오직 세 곳뿐이었는데, 울진의 악발산이 금강산, 설악산과 더불어 통일신라시대 이후까지도 국가적으로 제사를 지내던 중요한 산이었다는 점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안일왕산에서 만난 도마뱀

안일왕산 정상부에서 만날 수 있는 산양의 배설물

계명대 사학과 노중국교수는『한국고대 사회와 울진지방』이라는 책에 실린「고대 울진의 역사 개관」이라는 소논문을 통해 ‘신라가 통일 이후 사전체계를 정비하면서 소사에 편제한 울진 지역의 악발산은 안일왕산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힌바 있다.
 

노교수는 이 논문에서 “신라가 통일 이후 제의체계를 정비하면서 각 지방의 산들 중에서 중요한 산을 제의체계내에 편제한 것은 지방민을 위무함과 동시에 그 방면의 정치 세력을 진압한다고 하는 상징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면 신라가 악발을 소사체계내에 편제하고 국가의 제사대상으로 삼은 것은 울진지역의 민들을 위무하면서 동시에 울진지역 토착세력들의 힘을 억제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소사에 들어있는 악발은 울진의 어느 산일까. 이를 분명히 하기 어려우나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추론해보고자 한다. 첫째, 악발이 소사에 들어 있다는 것은 이 산이 울진지역의 다른 산들보다 훨씬 중요한 산이라고 하는 점이다. 아마도 악발은 삼한시기 이래 울진지역에서 신성시된 산이었고, 울진지역이 신라에 편입된 이후에도 중요시되어 국가적인 제의의 대상으로까지 되었던 것이다. 둘째, 이 산은 신라시기에 소사의 대상이 된 만큼 후대에 와서도 역시 숭배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주목되는 것이 안일왕산(安逸王山)이다. 
안일왕산은「신증동국여지승람」에 ‘안일왕산(현의 서쪽 41리에 있다. 울진의 진산이다.)’이라 한 것에서 보듯이 조선시대에는 울진의 진산(鎭山)이었다. 진산은 도읍이나 성시(城市)의 뒤쪽에 있는 큰 산으로 그곳을 진호(鎭護-난리를 진압하고 나라를 지킴)하는 주산을 말한다”라고 주장했다.

 

안일왕산을 오르는 내내 좌우로 줄지어 선 수령 1백년 이상의 금강송

 

1988년 울진군의 성지유적(城址遺蹟)에 대해 지표조사를 수행한 대구대학교 박물관은 “안일왕산 성내에서 채집된 유물 중 극히 작은 편들이지만 삼국시대에서 고려 초기에 걸친 회청색 경질(硬質)의 토기편들이 지표상에서 유리되어 떠돌아다니고 있다. 이들 채집된 편들이 극히 소수여서 기형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이 시기에 이미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반영하여 주고 있다. 즉 안일왕성의 초축(初築-처음 성을 쌓는 일) 시기를 삼국시대까지 올려볼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 크지만, 확실한 근거의 제시를 위해서는 보다 많은 채집품들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그리고 서문지(西門址) 부근에서 채집되는 다수의 기와편과 관련해서는 “명문와는 채집되지 않았고 막새류나 등무늬가 선명히 베풀어진 평와류(平瓦類)도 없어 정확한 연대를 판단할 순 없지만 고려시대의 와편(瓦片)으로 판단된다”면서, “이들 기와는 임시 피난처인 안일왕성(安逸王城)을 위해 이 일대의 어느 곳에서 급히 조와(造瓦)된 중하품의 것들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안일왕산 인근에서 어릴 때부터 고단하게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아온 나이든 노인들은 아주 오랜 옛날 북쪽 지방의 왕이 난리를 피해 안일왕산으로 내려와서 성을 쌓고 피난살이를 했었다고 믿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무르팍을 베고 누워 그렇게 대를 이어 구전되는 얘기들을 들으면서 자라온 것이다.


안일왕산과 안일왕산 일대에는 ‘안일왕’과 관련되는 숱한 전설이 시대를 건너뛰어 전해 내려온다.
성의 북쪽에는 큰 굴이 있는데 20여명이 능히 숨어서 생활할 수 있다고도 하고, 굴 안에는 철로 만들어진 대형 가마솥 2개가 있는데 수십 년 전 절벽을 타고 석이(石耳)버섯을 채취하러 밧줄을 타고 내려갔던 주민들이 발견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실직국의 왕(王) 가운데 유일하게 그 이름이 남아서 전해 내려오는 “안일왕”을 울진 지역에서는 “에밀왕”으로 불러 왔는데, 아직도 대다수의 노인들은 “안일왕성”이 아닌 “에밀산성”으로 부르고 있다.
 

또한 지역의 70~80대 노인들은 어린 아이 적에 울거나 하면 윗대 어른들이 “예 나온다 그쳐라, 예 쳐온다 그쳐라"고 말하며 울음을 달랜 것으로 기억한다. 강릉의 ‘예’ 국이 쳐내려오니까 울음을 그치라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노인들에 의하면 10~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안일왕산성 안에서 화전민이나 약초꾼들이 집을 짓고 살았는데, 다른 성씨를 가진 사람들은 무서워서 몇 달을 살지 못하고 다들 떠나가는데 유독 김씨 성을 가진 사람들만은 아무 탈 없이 터전을 일구고 살 수 있었다고 한다.
 

김씨 성이 아닌 다른 성씨의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려고 하면 밤새도록 말을 달리고 병장기를 부딪치며 병사들이 싸우고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서 무서움 때문에 버티기가 힘들었다고 전한다. 

10~20년 전 마지막으로 안일왕산에서 살다가 울진읍내로 내려온 사람 역시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알려준다.


울진군지, 삼척시지, 삼국사기 등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 이곳 동해안에는 강릉지역의 예국(濊國), 삼척지역의 실직국(悉直國), 울진지역의 파조국(波朝國) 또는 파단국(波但國)이란 군장국가(君長國家)가 공존하고 있었는데, 이들 세 나라를 통칭하여 창해삼국(滄海三國)으로 불렀다고 한다.
 

창해삼국은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같이 국가의 기틀을 갖춘 나라가 아니었고, 작은 집단이 모여서 한 지역에서 일정한 세력을 형성한 군장국가로서, 그 당시에 한반도 내에는 이런 군장국가가 130여개나 있었다고 전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에 나타나는 `안일왕산'. 울진군 관내에서는 평해의 백암산과 함께 오직 두 곳만 실려 있다
어느 시기에 철기시대를 맞으면서 많은 양의 청동무기와 철제무기를 소유한 이들 창해삼국은 서로 간에 영역확장을 위한 전쟁을 하게 되고, 기원 후 50년경이 되면 마침내 삼척의 실직국이 울진의 파조국을 침략하여 합병하게 된다. 합병한지 10년 후 실직국은 강릉의 예국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고, 당시 실직국을 다스리던 안일왕(安逸王)은 합병한 영토인 울진으로 피난을 내려와서 산성을 쌓고 방비를 하였는데, 이것이 서면 소광리에 위치한 안일왕산성이다.
 

그러나 힘들여서 안일왕 산성을 쌓고 피신했던 안일왕도 끝내 예국의 추격군에 의해 후퇴를 하게 된다. 안일왕의 죽음과 관련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안일왕산 인근 지역인 서면에는 안일왕과 관련되는 지명들이 많이 남아 있다. 경상북도 지명유래사전에 따르면, 안일왕 산성에서 서쪽으로 바라다 보이는 통고산은 안일왕이 후퇴를 하는 도중에 이 산을 넘으면서 재가 하도 높아서 통곡했다 하여 통고산(通高山)이라 한다.
 

삿갓봉의 복두괘현(僕頭掛縣-일명 박달재)은 안일왕산성이 함락되자 안일왕이 신하와 옷을 바꿔 입고 도망가다가 이곳에서 복두(머리에 쓰는 모자)를 벗어놓고 샘물을 마시던 중, 적군의 추적이 가까워지자 미처 걸어놓은 복두를 쓰지 못하고 도망간 곳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타나는 `안일왕산'.
울진의 진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울진군 서면 왕피리(王避里)는 왕이 피신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고, 병위동(일명 병우동)은 안일왕의 군사가 머물렀던 곳, 포전(飽田)은 안일왕이 피난 당시 군속과 같이 갈증을 풀고 포식한 곳, 임광터(일명 임왕기)는 임금의 옥새를 보관하던 곳, 핏골은 왕이 적에게 붙잡힌 곳, 거리고(巨里庫, 일명 걸부지)는 실직국의 군량미를 저장하는 창고가 있었던 곳, 한천(寒川, 일명 한내)은 피신하던 안일왕이 내를 건널 때 마침 얼음이 녹을 때라서 물이 차다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전해온다.
 

또한 소광리 장군터(일명 장강이터)는 안일왕의 호위장군이 진을 치고 있었다는 곳이고, 옥상이(玉山, 일명 옥생이, 옥쌍이)는 안일왕의 옥좌가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보부천(寶富川)은 안일왕이 울진의 파조국을 병합하여 산성을 쌓고 머물렀다는 곳이며, 저진터(저근터)는 안일왕이 보부천에 주둔할 때 호위군의 후속부대가 주둔했다는 곳이다.
 

정작 실직국의 본거지였던 삼척 지역에는 안일왕과 관련된 설화가 빈약한데 반해, 울진지역은 특유의 지형적인 고립성 때문인지 2천여 년 전 영동 남부지역의 중심세력으로 넓은 영토를 소유한 군장국가였던 실직국의 역사적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해 오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울진의 진산(鎭山)으로 기록되어 있는 산, 정상 가까운 곳에서 울진에서 가장 우람하여 으뜸인 대왕소나무를 만나볼 수 있는 곳, 천연기념물인 산양의 배설물을 직접 볼 수 있고 정말 운이 좋다면 산양을 직접 만날 수도 있는 곳, 정상에 올라서서 사방 천지 어디를 둘러보더라도 흉물스럽고 거대한 송전철탑이 눈에 띄지 않는 곳, 2천여 년 전 울진과 삼척을 영토로 활동하던 실직국 안일왕의 치열했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곳.
 

안일왕산의 압권은 가을이다. 만산이 오색 단풍으로 물들어 있다

 

그곳이 바로 서면 소광리의 안일왕산이다.
봄이면 봄대로, 여름이면 여름대로, 가을이면 가을대로, 겨울이면 겨울대로, 온갖 종류의 수목과 더불어 대왕 소나무, 녹음, 단풍과 낙엽, 산양, 만산에 덮인 하얀 눈을 볼 수 있는 곳.
 

아, 안일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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