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향이 코끝을 간질이더니 저 멀리로 사라졌다. 추억 많았던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누군가에게 연서(戀書)를 보내고 답장을 애타게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괜스레 우체부 아저씨가 배달을 올 때가 되면 ‘혹시 저에게로 온 편지 없나요?’라고 설레는 맘을 살짝 내 비추며 무작정 답장을 기다리던 그때. 우체부 아저씨들은 본의 아니게 견우와 직녀의 오작교처럼 수많은 청춘남녀들의 가교 역할을 했다. 답장 온 편지를 혼자 몇 번이고 되새김질 하며 다시 답장으로 보낼 멋진 구절을 인용하기 위해서 수많은 서적과 명언들을 뒤적거리고, 심금을 울리는 시와 노랫말을 옮기느라 많은 편지지를 구기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젠 이메일과 휴대폰의 문자메세지가 불과 몇 년 만에 그 자리들을 급속도로 채워가고 있다. 사람들은 이메일과 문자메세지의 편리함과 빠름에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고 공감을 하고 아쉬움을 나타내지만, 쉽사리 그런 타성에 젖어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일반 규격봉투의 우표 값이 얼마인지 모르는 이도 많다.
열네번째 주인공은 울진우체국 소속으로 북면에서 우편물을 배달하는 장헌중(33세, 북면 신화리) 씨다. 바람이 온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5월 23일 저녁 연호공원에서 헌중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같은 마을 집배원의 권유로 일을 시작, 연말연시에는 우편물량이 몇 배로 불어나
2000년 6월부터 집배원 일을 시작했으니 만 7년이 되어 갑니다. 부구중학교와 죽변종고(94년 졸업)를 졸업하고 상경해 서울에서 생활을 했어요. 그러다가 군복무 문제로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농사를 짓기도 했습니다. 같은 마을에 집배원을 하고 계신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이 권유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북면우체국에서 근무하다가 2001년 10월 울진우체국으로 통폐합되면서 자리를 옮겼습니다.
시기적으로는 아무래도 성탄절과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시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연말연시(年末年始)에 우편물이 가장 많습니다. 소포와 택배물량은 예년에 비해 많이 늘어났고, 분기(3,6,9,12월)마다 우편물이 몰리기도 하고요. 또 이메일을 통해 고지서가 첨부되다 보니 고지서는 조금 줄어든 반면에 택배물량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루 평균 등기와 소포, 택배물 등 우편물들을 합치면 천 통 가까이 되지만, 연말연시가 되면 며칠 동안 우편물량이 몇 배로 불어나죠. 그리고 그때가 연중 해가 제일 짧다 보니 배달할 수 있는 시간은 짧고 우편물량은 배로 늘어나 직원 모두가 이중고를 겪는 셈이죠.
우편물의 대부분은 각종 고지서와 정기간행물, 그리고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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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편으론 택배가 조금 늦거나 하면 인터넷으로 민원을 제기합니다. 고객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고 매일 날씨와 우편물량 등으로 상황이 변할 수도 있잖습니까? 또 서로 착오가 생길 수도 있는 문제인데 일방적으로 우리가 잘못했다고 다그치면 심하다는 생각과 함께 씁쓰레함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수고하십니다’라는 한마디 말과 물이나 음료수라도 한 잔 건네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고맙죠.
동료 직원 모두가 웬만큼 아파도 대부분 참고 일해
제가 주로 담당하고 있는 지역은 북면의 시내입니다. 8시까지 출근을 해서 우편물을 분류하고 등기와 소포를 우선적으로 배달하고 우편물을 돌리면 오후 5시 정도에 우체국으로 돌아옵니다. 다시 다음날 배달할 우편물을 분류하죠. 점심은 배달 중간에 짬을 내서 합니다.
그래도 저는 시내에서 배달하다 보니 식사에 대해서는 별 걱정이 없습니다만, 골짜기 골짜기를 다니며 배달해야 하는 동료 직원들은 일찌감치 이른 점심을 먹고 배달하러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그냥 우편물만 배달하면 그만인데 별로 힘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어느 일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막상 해보니 몸과 마음이 다 지치고 힘이 들더군요.
특히 몸이 아파도 대부분의 동료 집배원들이 그냥 참고 견딥니다. 자신의 구역이 아닌 다른 구역은 아무래도 시간이 더 많이 걸리게 되고, 매일 배달해야 될 우편물량은 기다리고 있거든요. 그래서 몸이 아프다고 쉬게 되면 다른 동료들이 해야 할 몫이 그 만큼 늘어나게 되다 보니, 웬만큼 아파서는 그냥 묵묵히 일을 합니다. 휴가도 최대한 짧게 해서 쉬고요.
고객과의 의사소통이 중요
우편배달도 정해진 코스와 순서가 있습니다. 그런데도‘자기 것을 먼저 갖다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전화 통화를 하고 약속이 어긋나서 막연히 기다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분명히 약속을 하고 우편물을 배달하기 위해 문을 두드리고 했는데도 인기척이 없어 그냥 발길을 돌리게 될 경우 ‘왜 물건을 갖다 주지 않느냐’고 다시 연락이 오면 답답하죠.
자초지종을 얘기하다 보면 고객들이 ‘자고 있다 던지, 가까운 곳에 갔다 온다’고 잠깐 집을 비운 상태였거든요.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생활패턴을 어느 정도 알게 되면서는 작은 다툼(?)들이 줄어들게 되더군요. 고객과의 의사소통이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우편물이 몇 시에 배달예정이라고 연락을 하면 아파트 관리실이나 이웃에 맡겨 달라고 서로의 의사가 원활히 소통이 되면 훨씬 일하기가 수월하니까요.
겨울철과 궂은 날은 이래저래 곤욕을 치러, `그 날 그 날 최선을 다하자'
겨울철이 근무하기에는 가장 힘들죠.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해 본 사람은 누구나 동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옷 깃 사이로 파고드는 칼바람과 특히 눈이라도 내리고 나면 길이 상당히 미끄럽다 보니 위험하기도 하고요. 저도 눈길에 많이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시내는 조금 덜한 편이지만 마을마다 눈이 오고 나서 그늘진 곳은 길이 얼어 있는 경우가 많죠. 상당히 위험합니다. 같이 근무하는 동료들도 겨울철에는 이래저래 곤욕을 치르곤 합니다. 또한 비오는 날과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도 애먹기는 만찬가지죠. 우편물을 기다리고 있을 고객들을 생각하면 그래도 시동을 걸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주 드문 경우지만 햄스터나 새, 열대어도 배달한 적이 있었는데 황당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는 일이니 만큼‘그 날 그 날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을 먹습니다. 우편물로 인해 고객들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면 보람 있지요. 제가 선물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배달하는 입장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괜스레 저까지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니까요.
촌으로 들어가면 할아버지 할머니만이 생활하고 계신 분들이 많아요. 각종 세금 고지서들은 그 자리에서 날짜와 요금을 몇 번씩 강조해서 가르쳐 드려야 하고, 대신해 세금도 내주기도 하죠. 어떤 때는 마을까지 실어 드리기도 합니다. 수확철이 되면 농산물이나 수산물을 고맙다고 꼭꼭 싸서 주시기도 하죠.
정(情)으로 살아가는 것들을 배우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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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으로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본 일이 까마득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한자 한자 또박 또박 정성스레 꾸몄던 편지.‘썼다 지웠다’를 수 없이 반복한 편지 내용에는 전화나 문자, 이메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정성이 하나 가득이다. 그립고 고마운 이들에게 그동안 숨겨 놓았던 속마음을 전해 보는 것은 어떨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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