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양심과 신용거래로 고객이 흡족하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 김석칠기자 기자
  • 입력 2007.08.01 16:25
  • 글자크기설정

  • 희망을 일구는 젊은이들...후포면 임영욱

우리 사회가 점점 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대도시보다는 농·어촌 지역의 고령화 정도가 심하다. 우리 군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각 읍·면의 소재지를 벗어나면 그 정도가 더 심하게 나타나 농·어촌의 골목길을 누벼 다니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텅 빈 그 공간을 우리네 노부모들이 힘겹게 지켜나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지키며, 가슴 속에 소박한 꿈을 품고 논밭을 일구고 산과 바다, 각자의 분야에서 하루하루의 땀방울을 더해가며 힘겨운 현실에 넘어지고, 타협하고, 때로는 부딪치면서 그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젊은이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속한 분야에서 아직은 초보자(?)에 불과하다. 그러하기에 실패에 맞서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미약하나마 힘과 용기를 불어 넣어 보고자 연재를 기획한다.

 

 

장마가 끝남과 동시에 불볕더위가 시작되었다. 많은 이들이 피서를 위해 산과 계곡, 바다로 발걸음을 옮기지만 우리 고장은 그런 사람들을 맞이해야 하는 곳이다 보니, 삶을 위해 폭염과 무더위에 아랑곳없이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생활해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번 호의 주인공은 지역출신이 아니라, 울진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대게·활어유통업으로 삶의 터전을 일구어 가는 임영욱(39세)씨다. 영욱씨로부터 울진과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를 들었다.

    

전남 해남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말 그대로 산세 좋고 물 맑은 전남 해남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울진으로 치면 온정면 외선미 마을 정도의 다소 외진 곳입니다. 농촌에서 자란 사람들이 그렇듯 아버지가 농사짓는 것을 돕고 소, 토끼, 염소 등 가축을 기르면서 고등학교까지 해남군에서 마쳤어요. 
아버지가 중3때 돌아가셨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로 이사했죠.   
작은 전세방을 얻고 스프링을 만드는 공장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프레스도 밟아보고 옷에 기름도 묻혀가며 3개월 정도 하다가 그만 뒀습니다. 
당시 30만원 정도를 받았는데 생활하기가 빠듯했습니다. 배운 기술이라곤 없고 농사지으면서 지게를 졌던 일 덕택에 벽돌을 지고 나르는 일을 했습니다. 지게 지는 일은 자신이 있었거든요. 5층까지 계단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날랐는데, 지금 생각해도 고생한 만큼 보람도 있었습니다. 
하루 일당으로 6만원을 받았으니 저에게는 큰돈이었죠. 동생 학비에도 보태고 어머니의 고생을 조금이나마 덜어 드릴 수 있었으니까요.

 

제대 후 큰 누나를 따라 울진과 인연 맺어
군에 갔다가 92년도에 제대했죠. 첫째 누나가 결혼을 해서 울진읍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그때부터 울진과 인연을 맺게 되었네요. 울진에 내려와서는 낮에는 보일러 설비로, 밤에는 누나 가게에서 일을 도왔습니다. 
누나가 갈비집을 했었는데 주로 하는 일이 불을 피우고 고기 써는 방법을 배웠죠. 주방장 수준까지는 안 되어도 그런대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몸으로 익혔어요. 
그러다가 누나가 94년 6월경에 이곳 후포로 이사를 했습니다. 저도 덩달아 내려오면서 쭉 이곳에서 생활의 터전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누나가 횟집으로 업종을 바꾸면서 저도 회 뜨는 기술을 배우게 되면서 지금의 청풍횟집에서 2002년까지 일을 했죠. 그동안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3명(2남 1녀)을 낳아 기르고 있습니다.        
  
2002년 연말부터 대게유통업 시작

그러다가 내 사업을 시작해야 되겠다고 마음먹고 어패류(주로 멍게, 해삼)와 활어(광어, 우럭)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막내 처남한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만 하루에 한 끼만 먹고 고생만 진탕 했죠. 
처남도 힘들고 저도 지칠 대로 지쳐 업종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지금까지 하고 있는 대게도매업을 2002년 말경부터 시작했죠. 울진에 대게가 없는 경우에는 대게를 구하기 위해 강원도 동해항까지 가서 추위에 떨어가며 대게를 싣고 후포에 도착하면 보통 자정에서 새벽 2시경입니다. 그 시각에 내려와 횟집마다 배달을 마쳐야 집에 들어와 눈이라도 붙일 수 있었죠. 
그러나 대게가 살이 너무 없다고 욕도 많이 얻어먹고 심지어는 상인들이 반품까지 하는 일도 제법 생겼습니다. 그러면 그 물건들을 싣고 다시 포항 죽도시장까지 가서 헐값으로 경매로 넘겨야 했죠. 
돈을 벌려고 이 일을 시작했는데 자꾸 적자만 생기니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대게의 생김새만 봐도 상품가치를 알 수 있지만, 그 고생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식당 주인 분들이 이해하고 도와주셨기에 가능했죠.    

 

울진 사람들 순박한 면이 많아, 수협 중매인을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

울진에서 만나 친동생처럼 지내는 후배가 오징어 활어 도매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와 같이 힘을 합쳐 오징어 활어 업도 겸하게 되면서 지난해 연말부터 수협중매인으로 경매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젠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아가고 있습니다만 여기에서 만난 선·후배들의 도움이 많은 힘이 됐죠. 바닷가 사람들이 거칠다고 하지만 사람마다 느끼는 상대성이 있잖아요. 
저는 한편으론 울진사람들의 순박한 면을 많이 느끼는 것 같습니다.  
중매인 일을 시작하면서 부터는 하루 일과가 더 빠듯해 졌죠. 요즈음 같은 경우에는 새벽 5시가 넘으면 첫 경매가 시작되니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보내고 있습니다.    

 

양심과 신용거래가 중요

유통업을 하면서‘신용거래'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여름에는 대구와 안동에서 오징어 활어를 구입하러 오는 차들이 많다면, 겨울에는 서울과 부산에서 대게를 사러 오는 차들이 많습니다. 현금거래가 아니기 때문에 서로 믿으면서 거래를 유지해 나가고 있죠. 
서울에서 수산유통업을 하시는 분과 인연을 맺은 지가 10년이 되어 가는데, 그 분이 멍게 어장과 좋은 사람들을 소개시켜주어 제가 장사를 하는데 물질적·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대게가 한창인 겨울이 되면 충남 부여에서 농사를 짓는 처남들이 도와주러 옵니다. 자기 일 같이 해주니 고맙죠. 
친구들도 보고 싶지만 1년에 한 번 보기가 힘드네요. 고향과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가고 싶다고 쉽게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벌여 놓은 일들은 일일이 제 손이 가야하니까요.   
속이지 않고 양심적으로 믿고 하는 신용만큼 좋은 장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가게로 직접 오시는 분들도 많지만 택배나 버스로 배달해 드리는 사람도 많거든요. 정성을 다해 그 분들이 흡족해 하도록 최선을 다하려고 다짐을 합니다.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울진과 후포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이왕 시작한 만큼 10년 내에 이쪽 분야에서 최고의 장사꾼이 되고 싶은 생각입니다.

 

ⓒ 울진뉴스 & www.ulji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문의 054-781-6776)

추천뉴스

  • 금강송배 전국 유소년클럽 축구대회, 울진서 열전 돌입
  • 울진국유림관리소, 지자체와 더불어 하천·계곡 불법행위 합동 점검 실시
  • 제293회 울진군의회(임시회) 의사일정안
  • 울진군, 지방도917호선∙군도20호선 4차로 확장 추진
  • 왕피천공원서 펼쳐지는 '2026 야(夜) 울진' 호러 퍼레이드
  • 울진군 지역자원 창업의 기회로! ‘2026 울진군 창업아카데미’ 첫 문 열어
  • 2026년 찾아가는 어린이 구강보건교실 운영 !
  • 울진군, 울진군청년연합회와 소통 “순수한 열정으로 지역 활력 이끌어 달라”
  • 울진군 드림스타트, 여름방학 맞아 ‘가족 나들이’행사 실시
  • 울진군청소년수련관·청소년상담복지센터, ‘청소년 함께 ON 문화여행’ 운영

포토뉴스

more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양심과 신용거래로 고객이 흡족하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