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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無題)

  • 페인트 최
  • 입력 2007.09.17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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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하자마자 두 달 동안 치매노인 전문병원에서 체험실습? 아르바이트? 암튼 노동청과 병원에서 얼마의 돈을 받으며 일을 하고 지낸 아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친정엄마와 딸 그리고 나.

근 6개월 만에 삼대 세 여자가 만났습니다.
 

자기 1학기 장학금에 조금만 보태면 등록금은 문제가 없다고 했건만 한 학기 휴학을 결정한 딸과, 이지가지 여러 갈래로 마음 편하게 못해드려 죄송하기만 한 친정엄마와, 병원에서 바로 학교 기숙사로 입실을 하는 아들을 보러가기 위해서 여행 삼아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고속버스를 타고 혼자 앉아 두어 시간을 갈 때까지 나는 잘 몰랐습니다.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할머니와 손녀딸의 도란도란 이야기는 참 보기 흐뭇한 풍경이라 생각하며 막 잠을 청하려던 참에 딸이 살며시 옆에 와 앉을 때 까지도 말입니다.
 

할머니가 졸다 잠이 들자 의자를 뒤로 조금 눕혀 편안하게 만들어 놓은 다음 내 옆으로 온 딸.
우리는 도착할 때까지 서로의 팔을 풀지 않고 손을 꼭 감아쥐고는 밀린 이야기를 실컷 했습니다. 자칫 철딱서니 없을 거라 걱정스러웠지만 속은 지에미보다 깊어져 있지 않나 싶습니다.
 

다음날 딸은 친구 집에 간다고 진주로 갈라져 갔고, 오후4시에 완전히 마무리를 하고 온다는 아들을 부곡 시외버스 터미널에 앉아 기다렸습니다.
 

여름의 오후 긴 햇살이 대합실 안까지 기어들어와 우리의 등이 오렌지 속살같이 익어갈 때쯤, 짠! 드디어 우리엄마의 손자, 내 아들이 나타났습니다.
 

할머니는 여기, 엄마는 여기. 학교가 있는 대구로 출발할 때 버스의 한 좌석씩을 일러주고는 그는 할머니 바로 뒷자리에 혼자 풀썩 앉는 겁니다.
나는 그때서야 딸과 아들의 배려의 차이를 발견했습니다. 딸과 아들을 키워보아야만 알 수 있는 차이, 꼭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해야만 알 수 있는 보이는 것과 느낄 수 있는 차이의 그 미묘함.   
 

할머니와 앉자니 엄마가 혼자이고, 엄마와 앉자니 할머니가 혼자이니 처음부터 한 자리씩 혼자를 택한 아들과 내 딸의......

그들의 엄마라야만 나올 수 있는 해석이죠.   
 

포착하지 않으면 사라지고 말 화가의 햇빛과 같이, 포착하지 않으면 사라지고 말 우리 삶속의 그림.  
그 해석은 나만의 영원한 그림이 되는 순간입니다.

아들이 사주는 저녁을 먹고, 아들이 끊어주는 기차표로 서울에 왔습니다.
물론 나는 엄마가 아침나절에 벌써 은행을 몰래 다녀오신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한사코 됐다고 거절을 하는 손자의 손에 용돈을 쥐어주고는 대견하다며 즐거워 하셨습니다.
 

시간을 모아 기다리던 나의 휴가는 보고 싶은 아이들을 만나는 여행 이였습니다.
딸은 한 학기 휴학동안 더 잘 할 수 있는 공부가 뭔지 이것저것을 알아보기 위해 도서관을 판다고 학교 정문 앞 고시원에 방을 얻었습니다.
 

아들은 혹시 2학기를 마치고 군대 갈 준비를 하겠다는 자기를 위해 누나가 휴학을 했다고 생각을 하는지 잠시 멍했습니다만,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은 서로 마음속에 접어 넣었습니다.
 

한 계절이 끝자락에서 땅을 치며 몸살을 하듯 비가 옵니다.
더 맑은 하늘을 위해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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