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곳이나 비가 오는 날, 눈 내리는 날, 햇살이 가득한 날 등 언제 어디서든 짧은 휴식을 취하며 쉽게 접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커피다. 한 잔의 커피가 우리에게 주는 여유는 동전 몇 개로 뽑을 수 있는 가치 이상이다. 그 편리함에 우리는 고마움을 잊고 커피자판기를 너무 가볍게 대하는 것은 아닌지... 술이라도 한잔 걸치면 커피자판기와 씨름(?)하는 사람도 밤늦은 시간에 가끔 만날 수 있다. 한 사람의 무분별한 행동이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편으로 다가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호의 주인공은 우리 군 곳곳에 커피자판기를 관리·운영하는 고정호(34세, 울진읍)씨다. 정호씨는 자판기를 자기 물건처럼 아껴달라고 몇 번이고 반복해 당부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생활전선에 뛰어 들어
연호정을 아우르고 있는 연지리가 고향입니다. 울진종고를 졸업(93년)하고 군 생활을 지역에서 했으니 지금까지 계속해서 고향에 터 박고 살고 있습니다. 1995년 군 복무를 마치는 해에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돌아가셨어요.
3남1녀 중에 장남이다 보니 생활전선에 바로 뛰어 들었습니다. 이래저래 공부하고 싶은 생각도 여지도 없었던 것 같아요. 위로 누나가 있었지만 밑으로 남동생들을 이끌어야할 책무가 있잖습니까. 그렇다고 마땅한 기술이 없었으니 지역에서는 영업직을 구하기가 쉬웠죠.
누나와 엄마가 반대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영업직이 제 성격에 잘 맞는 것 같습니다. 결혼도 조금 빨리 한 편입니다. 27살에 결혼했으니까 책임감도 그만큼 더 느꼈던 것 같고요.
2000년 8월부터 지금하고 있는 커피자판기를 관리하고 커피숍에 재료들을 공급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장남이 아니었다면 모르겠지만, 어머니 혼자서 농사를 지어야 됐기에 이제는 울진이라는 제 고향에 몸이 배어 버린 것 같아요. 일이 있어 서울이라도 갔다 올라치면 몸이 먼저 알고 찌뿌둥해 지거든요. 그러다보니 타지로 나가고 싶은 생각도 없어진 것 같아요.
사람 때문에 상처 받고, 또 위로 받고
누구나 그렇겠지만 사람 대하는 것이 제일 어렵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사람이 모두 착하다고 여기지만, 사람으로 하여금 신용을 잃어버리게 하고 나쁘게 만드는 것은‘돈’이 연관돼 있기 때문이겠죠. 거래가 원활하게 이뤄지다가도 어느 순간 잠적해 버리는 수도 있고, 이래저래 받아야 될 외상값도 액수가 제법 됩니다. 특히 이런 사람들은 연락도 되지가 않고요.
저도 월급 받아서 일하는 입장인데 때로는 한숨도 많이 쉬었습니다. 큰 건이라도 터지면 저보다 더 곤란한 것은 사장님이죠. 그러나 한편으론 사업을 접으면서 그 동안의 거래를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루 평균 4~50곳을 다니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요. 같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면 모두 다 순하고 착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돈이 개입되면 사람이 달라지고 변해지는 것 같습니다.
자판기를 자기 물건인양 생각해 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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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는 일은 커피 재료들을 배달하고 커피자판기를 관리합니다. 거래처는 직접 방문해서 이런저런 사정들을 파악할 수 있어서 괜찮습니다만, 자판기 관리에는 많은 고초가 있습니다. 우리 군의 커피자판기 중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체의 80% 가까이를 관리합니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폐기처분해야 될 정도로 심각하게 고장이 난 경우도 있어요. 누가 그러겠습니까?
커피가 다 나오기 전에 잔을 빼 바닥에 커피가 흥건한 경우도 있고, 동전을 털어가기 위해서 강제로 문을 딴 흔적도 있고, 하여간 자판기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자판기가 고장이 나서 그 자리에서 제가 직접 고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때로는 부품을 교체해야 되는 경우도 있고, 폐기처분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모든 비용 역시 우리가 부담해야 됩니다. 자판기 자체가 3백만원 이상의 고가인데, 행동하기에 앞서 조금만 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 것이 아니니까 함부로 대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자기 물건이라면 그렇게 행동하고 망가뜨리겠습니까. 자판기를 곱게 사용하고 관리를 잘하면 길게는 10년 정도 사용할 수 있지만 멀쩡한 기계가 하루아침에 폐품으로 전락된다면 손해도 손해지만 씁쓰레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죠. 특히 무더운 여름철에는 위생문제에 많이 신경을 쓰게 되고 철저를 기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 하나라도 더 살펴봐야 하는데, 자판기가 고장이라도 나 있으면 애 먹습니다.
자기 것이 소중하면 남들 것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합니다. 한 사람의 무분별한 행동으로 인해 여유롭게 차 한 잔을 마시고 싶은 다수의 사람들이 불편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주인의식을 가져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요.
‘유통’에 대해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
저 역시 하루의 일과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반복이죠. 아침에 거래처를 들르고 자판기를 관리하고 저녁이 되면 다시 그 다음날의 주문을 체크해 차에 짐을 싣죠. 영업이 성격에 맞는 것 같아요. 제가 34살이지만 영업을 하고 있는 지가 만 10년이 지났습니다.
사무실에 가만히 않아 있는 성격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돌아다니는 일이 몸에 배서 그런지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편안하거든요. 제 시간이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사람들 만나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같이 나누는 것이 재미있어요. 집에 들어가서 애들하고 노는 것도 즐겁고요. 매 순간순간에 충실하려고 노력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을 전문적으로 익히고 활동영역을 넓혀서 하루하루 열심히 생활하면서 울진에서 살아가야겠죠.
앞으로는 억지로라도 시간을 만들어 ‘유통’과 관련해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요. 그래서 우리 군의 생산물을 제대로 된 가격에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우리들이 생활하면서 무심코 그 고마움을 모르고 쉽게 간과하는 것들이 많다. 때로는 자기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이런 물건들을 함부로 다룬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자기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본인이 한 행동이 여러 사람들에게 어떤 결과로 돌아갈 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남을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 찜통 같은 무더위가 가을을 재촉하는 제법 많은 비에 씻겨 간다.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면 우리들 주위에 고맙지 않은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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