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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임금이 하사한 교지(敎旨)

  • 입력 2015.07.28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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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륭(乾隆) 38년(1773년) 교지(敎旨)
  
소개하는 자료는 조선(朝鮮) 제21대 영조(英祖, 1694~1776년) 임금이 신하인 벼슬아치에게 하사(下賜)한 사령(辭令) 문서(文書)의 하나인 교지(敎旨) 8점이다.
  
교지는 조선 시대에 임금이 사품 이상의 벼슬아치에게 주던 문서로 세종 7년(1425년)에 기존의 왕지(王旨)를 고친 것이다.
  
교지는 용도와 명칭에 따라서 고신(告身, 조정에서 내리는 벼슬아치의 임명장), 홍패(紅牌, 문과의 회시에 급제한 사람에게 내리던 증서), 백패(白牌, 소과에 급제한 생원이나 진사에게 주던 흰 종이의 증서), 추증교지(追贈敎旨, 죽은 사람의 관작을 높여주는 교지), 노비토전사패(奴婢土田賜牌, 토지와 노비를 주는 교지), 향리면역사패(鄕吏免役賜牌, 향리에게 면역을 인정하는 교지)가 있다.






건륭(乾隆) 39년(1774년) 교지(敎旨)
  
또한 죽은 신하의 공덕을 칭송하여 붙이는 이름인 시호(諡號)를 내릴 때도 교지를 썼다.
  
이 교지는 죽변면 후정4리에 거주하는 장금자(여. 73세)씨가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교지 속에 등장하는 권재삼(權載三)이라는 인물은 장금자씨의 작고한 남편인 고(故) 권찬웅씨의 선조(先祖)이다.
영조 임금이 재위(在位)할 당시에 내려진 교지 8점은 각각 건륭(乾隆, 중국 청나라 고종 때의 연호. 1736~1795년) 38년에 생산된 문서가 3점, 건륭 39년에 생산된 문서가 3점, 건륭 40년에 생산된 문서가 2점이다.
문서는 전체적으로 상태가 양호한 편이고, 평균 크기는 가로 65cm, 세로 55cm이다. 
  
교지에 따르면, 권재삼이라는 인물은 영조 임금의 재위 기간인 건륭(乾隆) 38년(1773년)에 통정대부(通政大夫),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절충장군(折衝將軍) 행 용양위 부호군(行 龍驤衛 副護軍)이라는 직책을 맡았다.
  
이어 건륭 39년에는 가선대부(嘉善大夫),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가선대부(嘉善大夫) 행 용양위 부호군(行 龍驤衛 副護軍)을 맡았다.




건륭(乾隆) 40년(1775년) 교지(敎旨)
  
또 건륭 40년에는 가의대부(嘉義大夫), 가의대부(嘉義大夫) 행 용양위 부호군(行 龍驤衛 副護軍)이라는 직책을 받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각종 자료에 따르면, 통정대부(通政大夫)라는 직책은 조선시대에 정삼품(正三品) 동반(東班) 문관(文官)에게 주던 품계(品階)로 정삼품의 윗품계인 상계(上階)이며, 통훈대부(通訓大夫)보다 상위 자리인 당상관(堂上官)의 말미이다.
  
또 절충장군(折衝將軍)은 정삼품(正三品) 서반(西班) 무관(武官)에게 주던 품계(品階)로, 정삼품의 상계(上階)이며 어모장군(禦侮將軍)보다 상위 자리인 당상관(堂上官)의 말미이다.
  
가선대부(嘉善大夫)는 종이품(從二品)의 문관과 무관에게 주던 품계로써, 종이품의 아래 품계인 하계(下階)이며 가의대부(嘉義大夫)보다 아래 자리이다.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는 중추부(中樞府)에 두었던 종이품(從二品) 관직인 동지사(同知事)로 정원은 8명이다.
  
특히 중추부는 조선시대에 일정하게 관장하는 직무가 없는 당상관(堂上官, 조선시대 문무관의 18품계 중 정삼품인 절충장군 이상의 품계를 가진 자)들을 우대하기 위해 설치한 관청이다.
  
가선대부(嘉善大夫) 행 용양위 부호군(行 龍驤衛 副護軍)이라는 직책에서 ‘행(行)’은 실제 계급보다 낮은 직책을 맡아서 일할 때 사용하는 용어로써, 권재삼이라는 인물은 건륭 38년 한때 용양위의 부호군으로 근무했다.
  
용양위(龍驤衛)는 조선 시대에 궁궐 수비와 한양을 방비하기 위해서 설치한 오위(五衛)의 하나이다.
  
오위는 각각 중위(中衛)인 의흥위(義興衛), 좌위(左衛)인 용양위(龍驤衛), 우위(右衛)인 호분위(虎賁衛), 전위(前衛)인 충좌위(忠佐衛), 후위(後衛)인 충무위(忠武衛)를 일컫는다.
  
그리고 부호군(副護軍)은 종사품의 무관직(武官職) 벼슬이다.
가의대부(嘉義大夫)는 종이품 동서반(東西班) 문무관(文武官)에게 주던 품계(品階)로써, 종이품의 상계(上階)이며 가선대부(嘉善大夫)보다 상위에 있는 자리이다.
  
그런데 건륭 40년에 생산된 교지 중에 가의대부(嘉義大夫) 및 가의대부(嘉義大夫) 행 용양위 부호군(行 龍驤衛 副護軍)이라는 직책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실제 계급은 종이품이지만 그보다 낮은 직책을 맡아서 근무한 것으로 보인다.
  
소개하는 문서 8점은 특정한 개인에게 임금이 내린 교지로 조선시대 영조 임금 당시의 관료 정치와 양반사회의 성격 등을 연구 분석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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