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인 ‘페인트 최’는 고향이 서울로 울진에서 15년간 생활했다. 현재 경기도 안산시에 거주하며 한국미협·도무스·예형회 회원 등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 lomo / 이명동기자]


초봄에 몇 개의 화분에 허브 씨앗을 뿌려 놓았다.
파릇한 새 싹이 쏙쏙 올라오더니, 어느새 제법 푸르른 잎들을 자랑하며 창가를 장식하고 있다.
눈에도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작은 씨앗이 움을 터 싱그러운 색과 향을 간직하며 무성해지는 잎들을 보면 신기할 정도다.
그런데 고것들이 알아서 예쁘게 커주면 더 대견하련만, 그들에게 필요한 햇살과 각각의 성질에 맞는 흙, 알맞은 물, 관심 하나라도 빠지거나 하면 고개를 있는 대로 숙이거나 당장에 잎을 검게 변색시켜 버리면서 자기들에게 애정을 가져달라는 티를 팍팍 낸다.
그래서 애정을 갖고 잘 키운 화분 하나의 즐거움은 의외로 크다.
코가 석자나 빠져 허우적대는 막막한 현실이지만 그들을 보는 순간만큼은 무기력과 근심 까지도 날아간다.
식물 하나 키워 쳐다보는 것조차 그러한데, 하물며 뇌외 가슴을 가진 인간을 낳아 키우는 일이라는 것은 어떤 한 순간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며, 어떤 한 순간도 기쁨이 아닐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 옆집 그 녀석을 처음 본 것은 일주일 전이다.
내 이웃을 처음 보는 자리치고는 가슴이 아리디 아렸다.
자정이 거의 되어갈 무렵이니까 같은 소리라도 십리는 더 날아가는 시간.
교복만 아니라면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봐도 될 만큼 체구가 작은 녀석.
문제는 그렇게 작은 체구가 아니라 툭하면 가출을 한다는 것이고, 매번 잡혀 와서는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무서운 그의 아버지로부터 무지막지하게 맞는다는 것이고.
크고 순한 눈에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그렇게 매를 맞고 있는 녀석을 그 때 내가 보고 만 것이다.
삼일 전에도 그래서 맞았고, 어제도 학교 간다고 하고선 학교도 집에도 안 들어 왔다고 어딘가에서 녀석을 데리고 가라는 전화가 올 거라며 이를 갈고 있는 그의 아버지를 보았다.
가출이라고 해서 찾지 못할 곳으로 멀리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24시 쇼핑센터를 돌며 시식코너에서 시장기를 해결하거나 서점에 박혀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이럴 때 도와주고 힘이 되고 싶은데, 나는 그저 안타까운 심정으로 보고만 있다.
짐작해 보건데 녀석에겐 돌아갈 따뜻한 안식처가 없는 듯 했다.
그 녀석이 잘 성장해야 할 중요한 요소들이 하나씩 빠져있는 게 분명했다.
아이를 죽어라 패서 제자리에 올 것 같으면 벌써 왔겠지
패는 것 대신 그 아버지는 시들지 않고 제자리 지키면서 꿈을 꾸고 행복해지고 싶은 아들에게 지금 필요한 게 뭔지 한 번만 생각해 보면 안 될까?
사실은 내 자식도 잘 키우지 못하는 나로선 자격미달이지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 햇살 같고 물 같은 사랑만이 그를 푸르게 성장시킨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하지만 많은 말을 삼키는 대신 그 녀석이 오면 주라면서 나는 빵 한 봉지와 야채샐러드를 건네주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녀석의 가방에서 담배를 발견하고 실컷 때리고 벌주고 그것도 모자라서 집에서 나가라며 내 쫓는데도 한사코 문고리를 잡고 늘어지던 우리 집 아들, 그 때 집을 안나가줘서 고맙다.
고등학교 졸업 선물로 귀걸이 사주려고 했는데, 엄마한테 허락도 안 받고 중학교 2학년 때 귀 뚫고 온 딸이 회초리 맞고 그것도 모자라 집에서 나가라며 내 쫓는데 한사코 문고리 잡고 늘어져 준 우리 집 딸이 너무 고맙다.
연일 비가 내리는 요즘.
그 녀석이 마음 놓고 숨쉬어야할 집이고 학교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심장을 조려야 하는 장소가 되어 시들어 간다고 생각하면 내가 이렇게 마음 아픈데 그의 부모 마음은 더 하겠지.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이 제일 힘든 건 그 녀석일 테고...
그러나 때린다고 나가고 나가니까 또 때리고, 그 반복의 끝을 녀석이 끝내 줬으면 한다.
반평생 산 이 아줌마도 헤매고 싶은 마음만 믿고 막상 집을 뛰쳐나가면 얼마나 막막한데.
버티자 녀석아. 죽을 만큼 힘들어도 한사코 집 문고리 잡고 해결하자, 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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