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
가정은 부모의 사랑을 통하여 한 인간으로서의 인격체 형성에 중요한 터전이 되는 곳이며,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성인이 되어 올바른 사회활동의 근간이 되는 기본교육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특히 어린 시절의 가정과 교육환경은 한 인간으로서의 기본기를 형성하는데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공간이다.
가정은 공동생활이 이루어지는 최소 단위이자, 사회생활의 출발점이다. 따라서 공동체의 근간인 가정이 화목하지 않으면 가족 구성원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의심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나 결국 서로 반목하게 된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모든 일은 화목한 가정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의미에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강조해왔다. 가정의 화목은 가정을 다스리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자 사회생활의 근본으로 중시되었다. 《대학(大學)》에서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8조목으로 삼아 집안의 다스림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격물부터 수신까지는 개인적인 것이고, 제가부터 평천하까지는 공동체를 말하는 것으로, 가정을 화목하게 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치가(治家)〉편에도 ‘자식이 효도하면 부모가 즐거워하고, 가정이 화목하면 만사가 이루어진다(子孝雙親樂 家和萬事成)’는 말이 나온다. 또 ‘조상이 덕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후손에게 경사가 따른다(積德之家必有餘慶)’라 하여, 이 역시 가화만사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어린 시절에 많이 들었던 전래동화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한 색시가 시집을 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하루는 밥을 짓다 말고 부엌에서 울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남편이 이유를 물으니 밥을 태웠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편은 오늘 내가 바빠서 물을 조금밖에 길어오지 못했더니 물이 부족해서 밥이 탄 것이라면서, 이것은 자기의 잘못이라 위로하였다. 이 말을 들은 색시는 울음을 그치기는커녕 감격하여 더 눈물을 쏟았다.
마침 부엌 앞을 지나가던 시아버지가 이 광경을 보고 이유를 물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시아버지는 내가 나이가 들어 갈수록 근력이 떨어져 장작을 잘게 패지 못했기 때문에 화력이 너무 센 장작 때문에 밥이 탔다고 자기 잘못이라며 아들과 며느리를 위로했다. 안방에 있다가 뒤늦게 이 작은 소동을 들은 시어머니가 달려와서, 이제 내가 늙으니 밥 냄새도 못 맡아서 밥 내려놓을 때를 알려주지 못했으니 자기 잘못이라고 며느리를 감싸주었다.
이 이야기를 잘 살펴보면 모두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남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잘못을 스스로 반성하고 또 자기가 잘못을 뒤집어쓰면서까지 서로를 위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화목이란 바로 이러한 가운데서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된다(家和萬事成)’라고 일러주곤 했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또 하나의 작은 비결로 옛 어른들은 가족 사이의 상호신뢰에 있다고 강조한다.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는 처신의 바탕에는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비자(韓非子)》〈외저설(外儲說) 좌상편(左上篇)>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 가는데 어린 아들이 따라오며 징징거렸다. 아내가 아이를 달래며 뭘 먹고 싶으냐고 물었다. 아이는 돼지고기가 먹고 싶다고 대답하자 아내가 “알았다. 돌아가거라. 돌아와서 너를 위해 돼지를 잡아주마.”라고 하면서 달랬다. 아내가 시장에서 돌아와 보니 증자가 마당에 솥을 걸어놓고 물을 끓이면서 돼지를 잡아 죽이려고 했다. 깜짝 놀란 아내가 증자를 말리면서 말했다.
“나는 그저 어린애를 달래려고 농담을 했을 뿐인데, 당신이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합니까?”
아내의 말을 들은 증자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모름지기 부모가 되어 어린아이와 더불어 농담을 하여서는 아니 되오. 어린아이는 아직 지각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가 하는 대로 따라 배우는 법이오. 아이는 부모의 가르침을 따르거늘 지금 당신이 아이를 속이면 이는 자식에게 속임을 가르치는 것이 되오. 어미가 자식을 속이면 자식이 그 어미의 말을 믿지 않게 될 것이니 그것은 자녀를 가르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오(嬰兒 非與戲也 嬰兒 非有知也 待父母而學者也. 聽父母之敎 今子欺之是敎子欺也. 母欺子 子而不信其母 非所以成敎也).”
말을 마친 증자는 마침내 돼지를 잡아 삶아 아내가 아들에게 한 약속을 지켰다. 여기에서 비롯된 ‘증자살체(曾子殺彘)’라는 말은 “증자(曾子)가 돼지를 잡다”라는 뜻으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이렇듯 올바른 가정교육의 시작은 자녀들로 하여금 좋은 교육적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가정에서 가족 사이의 화목은 물론, 가정을 둘러싼 주변 환경도 자녀교육에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조조(曹操)는 어렸을 때부터 여유롭지 못한 집안 환경 때문에 전통적인 가정교육과 유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랐다. 조조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남긴 시,〈선재행(善哉行)〉에는 그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표현한 대목이 있다.
“내 스스로 복이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했고 옛날부터 비천하여 외롭고 고독했었네. 삼사교를 받은 적도 없고, 과정어를 들은 적도 없었네(自惜身薄祜 夙殘罹孤苦 旣無三徙敎 不聞過庭語)”
‘삼사교(三徙敎)’는 어머니의 가르침, 즉 맹자 어머니의 교육을 가리킨다. 《열녀전(列女傳)》에 보면, 맹자의 어머니는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했고 마침내 서당 근처에 자리를 잡아 맹자로 하여금 스스로 공부와 예를 배우도록 함으로써, 자식의 교육환경을 바르게 만들었다.
‘과정어(過庭語)’는 아버지의 가르침, 즉 공자의 교육을 가리킨다.《논어(論語)》〈계씨(季氏)〉에 보면, 공자가 집안 뜰에서 지나가던 아들 리(鯉)를 불러 세워놓고 시(詩)와 예(禮)를 가르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조조는 자신이 어린 시절에 맹자처럼 어머니로부터 제대로 된 교육환경을 제공 받아 보지 못했으며, 공리처럼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된 훈육을 받아 보지 못했음을 늘 아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점점 핵가족화 되어 가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가족 사이의 대화도 거의 실종되면서 화목한 가정이라는 말이 점점 동화 속의 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다. 입시 위주의 교육에 매달리는 어머니들의 잘못된 삼사교가 도를 넘고 있고, 아버지들의 과정어(過庭語)인 밥상머리교육은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된 기회조차 잡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올바른 자녀에 대한 교육을 위해서는 어머니가 해야 할 역할이 있고 아버지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정에서의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그로 인해 초래된 많은 불행한 일들을 우리는 보고 배워 왔다. 지금 내 집안의 가정교육은 어떤지, 가정의 달 오월에 다시 한 번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며 곰곰이 생각해 보는 건 어떤가. 가정의 달 오월을 맞이하여 화목한 가정을 위한 가정교육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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