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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얻었으나 도리는 잃었다.

  • 장원섭 교수
  • 입력 2026.10.1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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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원섭  (작가, 역사학자)

 

명나라 문인 마중석(馬中錫)의 『중산랑전(中山狼傳)』에는 목숨을 구걸하는 늑대 한 마리가 등장한다. 

춘추시대 말기 때의 일이다. 

 

진(晉)나라 대부 조간자(趙簡子)가 무리를 이끌고 사냥에 나섰다. 화살을 피해 쫓기던 늑대는 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동곽선생(東郭先生) 앞에 엎드려 살려 달라고 애원한다. 목숨만 건져 준다면 그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맹세도 곁들였다. 다급한 자의 맹세는 언제나 장엄하다.

 

동곽선생은 늑대를 자루 속에 숨겨주었다. 그런데 조간자의 추격을 따돌리고 위험에서 벗어나자, 늑대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본색을 드러냈다. 감사의 인사를 올리기는커녕 배가 고프다며 그를 잡아먹겠다고 달려든 것이다. 

자루 안에서는 은혜를 말하더니 자루 밖에서는 이빨부터 드러냈다. 후세 사람들이 ‘중산랑(中山狼)’을 배은망덕한 인간의 대명사로 삼은 까닭이다. 

 

오늘날 정치판에도 동곽선생의 자루에서 기어 나온 늑대들이 어슬렁거린다. 공천이 필요할 때는 충성을 맹세하고, 자리가 탐날 때는 스스로 심복을 자처한다. 자신을 이끌어 준 사람을 스승이라 부르며 허리가 부러질 듯 몸을 굽힌다. 그들의 의리는 대개 임명장을 받는 날까지이고, 충성은 권력의 유효기간만큼만 지속된다.

 

권력을 손에 넣거나 정치적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태도도 바뀐다. 어제의 은인은 오늘의 걸림돌이 되고, 함께 나눈 비밀은 공격 자료가 되며, 신뢰의 증표였던 말은 모략의 칼날로 돌아온다. 

 

먼저 배신하고도 “국민을 위한 결단”이라 둘러대고, 제 살길을 찾아 달아나면서도 “시대정신을 따랐다.”라고 능청을 떤다. 늑대가 넥타이를 매고 기자회견을 한다고 해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민주정치에서 특정 인물에 대한 맹목적 충성은 미덕이 아니다. 부당한 권력에 맞서고 잘못된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배신이 아니라 용기다. 그러나 원칙을 위해 결별하는 것과 자신의 영달을 위해 은인을 짓밟는 것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손해를 감수하지만, 후자는 이익을 계산한다. 전자는 대의를 밝히지만, 후자는 배신부터 저지른 뒤 부랴부랴 대의명분을 찾는다. 소신은 홀로 서는 것이지만 변절은 더 큰 자루를 찾아 숨어 들어가는 일이다.

 

중산(中山)의 늑대는 정치권에만 서식하지 않는다. 일상의 인간관계에도 옷만 바꿔 입은 늑대들이 적지 않다.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을 형편이 나아지자 외면하고, 자신을 믿고 털어놓은 속내를 훗날 공격의 재료로 삼는다. 

 

취업과 승진을 부탁할 때는 고마움을 입에 달고 살다가 목적을 이루면 전화 한 통조차 하지 않는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이 도움받았다는 사실을 감추려고 은인을 헐뜯는다. 빚진 과거가 자신의 초라함을 증명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은망덕한 사람은 은혜를 잊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은인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야 비로소 자신의 배신이 정당해지기 때문이다.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은 지우고, 자신이 홀로 일어섰다는 신화(神話)를 만든다. 은혜는 삭제하고 공적은 독차지한다. 기억까지 권력의 하인이 되는 셈이다.

 

도움을 청할 때 고개를 숙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약자의 겸손은 때로 인격이 아니라 생존술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진짜 됨됨이는 힘이 없을 때가 아니라 힘을 얻은 뒤 드러난다. 

 

더는 아쉬울 것이 없을 때도 은혜를 기억하는가, 상대의 약점을 알고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가, 손에 쥔 권력으로 옛사람을 짓밟지 않는가. 그것이 인격의 시험대다.

 

관중(管仲)은 자신을 알아보고 제나라 재상으로 천거한 포숙아(鮑叔牙)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아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 

 

관중은 포숙아의 도움을 지워 자신의 위대함을 꾸미지 않았다. 은혜를 인정한다고 자신의 공적이 작아지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신의가 두 사람의 이름을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수천 년 동안 살아 있게 했다. 『사기(史記)』 「관안열전(管晏列傳)」에 실린 이야기이다.

 

권모술수로 자리를 차지할 수는 있다. 배신으로 경쟁자를 밀어내고 모략으로 잠시 박수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얻은 권력은 능력을 증명하는 훈장이 아니라, 사람의 도리를 얼마에 팔았는지 적힌 영수증일 뿐이다. 

자루 밖으로 나온 늑대가 아무리 정의(正義)와 대의(大義)를 외쳐도 입가에 묻은 배은(背恩)의 더러운 핏자국까지 감출 수는 없다.

 

권력은 얻고 목적도 이루었으나 끝내 사람의 도리를 잃었다면, 그는 과연 승자(勝者)인가. 아니면 더 큰 자루를 찾아 헤매는 또 한 마리 ‘중산의 늑대(中山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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