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원섭 (경민대학교 교수) |
하지만 요즘은 이러한 겸손함을 미덕으로 여기지 않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남이 알아주기를 기다리기보다 적극적인 자기PR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세상에 알리지 않으면 사람들이 알아주려 하지 않고, 알아주지 않으면 자신의 뜻을 세울 수가 없다는 취지에서다.
일방적으로 자신의 장점이나 긍정적 활동을 알리는 것이 PR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진정한 PR은 진정성과 진실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소통을 통하여 상호 신뢰와 이해를 높이고 서로의 이익과 발전을 도모하려는 체계적인 노력이다. 따라서 PR의 핵심은 소통이다. 그러므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결국 자기자랑과 자기PR은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이르러 선종(禪宗)을 전파하기 위해 황제인 양무제에게 면회를 신청했다. 선종이란 좌선(坐禪)과 내관(內觀)을 통하여 정신을 집중하고 잡념을 버려 마음의 본성을 깨달아 해탈에 이르며 진리를 파악하고자 하는 불교사상이다. 불심의 깨달음을 목적으로 하므로 불심종(佛心宗)이라고도 한다. 양무제는 주위에 항상 고승들을 두고 불교포교의 자문을 받아오며 실천하는 불심이 깊은 황제였다.
양무제는 인도에서 온 달마라는 승려가 선불교를 대중에게 주장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내심 만나보고 싶었던 차라 이를 흔쾌히 승낙하고, 고승들과 함께 달마대사를 영접하고 다과를 준비하여 융숭하게 대접하였다. 양무제는 그동안 자신이 곳곳에 큰 가람을 짓고 대형 불상과 탑을 세웠으며 유능한 스님들이 대중에게 설법하게 하는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고 자랑하면서 달마대사에게 물었다.
“어떻소? 이만하면 내 공덕이 크지 않겠소?” 달마대사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공덕이 없습니다(所無公德). 지옥에 직행하지 않으면 다행이요.”
뜻밖의 대답에 양무제는 놀랐다. 황제는 섭섭하고 성난 마음을 진정하면서 혹시 달마대사가 자신이 황제임을 몰라보는 것 아닌가 싶었다. “내가 누군지 아시오?” 달마대사가 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不識)” 황제가 다시 물었다. “성인(聖人)은 있습니까?” 달마대사는 또다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성인은 없습니다(廓然無聖)” 난처해진 황제를 보며 달마대사가 말을 이었다.
“황제께서는 그동안 칭찬을 받기 위해 불사를 많이 하셨고, 지금도 그 욕망에 집착해 있습니다. 그 욕망을 내려놓지 않는데, 제가 어찌 황제의 공덕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만사만불만탑(萬寺萬佛萬塔)의 공덕도 아무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부디 황제께서는 마음공부를 하시기 바랍니다.” 달마대사는 정중히 예를 갖추고 인사를 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섰다.
세상에 자랑할 만한 일은 스스로 드러내지 않아도, 주머니속의 사향처럼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알려지기 마련이다. 세상인심은 항상 분명하다. 자랑할 만한 것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일부러 드러내지 않으려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의 인격과 인간성을 높이 평가하며 매우 호의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를 통해서 증명된 사실이다.
자신이 이룩한 업적을 주위에 알리는 일은 필요하다. 특히 그 업적이 공익적인 성격이 강하여 사회적으로 공유할 가치가 있을 때는 그 정확한 실상을 알리는 일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홍보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필요한 것들이다. 공명심 때문에 그 내용이 지나치게 과장되는 일이 다반사이고 그로 인해 또 다른 반발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그럴듯한 과장은 당장은 분별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처음부터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자극적인 내용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교묘한 방법과 미사여구로 사람들의 욕구를 건드리므로, 어떤 계기가 되어 드러날 때까지 그 효과는 상당한 시간 동안 지속되곤 한다. 나중에 진상을 알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속았음을 알고 사이비가 넘치는 세상을 한탄하며 혀를 찬다.
옛날, 한 서생이 글재주도 없는데 항상 붓을 가지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늘 자신의 유식함을 뽐내고 다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박사’라고 부르면서 비꼬았는데 그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마냥 좋아했다.
어느 날 이 서생이 시장에서 나귀 한 마리를 사게 되었다. 당시에는 물건을 사는 사람이 파는 사람에게 매매계약서를 써주는 것이 관습이었다. 서생은 거창하게 지필묵을 대령하게 하고는 계약서를 써 내려가는데 큰 종이로 석 장을 쓰고도 완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덧 날이 저물어오자, 나귀를 파는 사람은 발을 동동 구르며 계약서를 빨리 써달라고 재촉했다. 그러자 서생은 버럭 화를 내면서 “글도 모르는 무식한 자가 뭐가 급하다고 재촉하는가? 지금 막 나귀 ‘려(驢)’ 자를 쓰려고 하는데……”라고 했다.
이 고사에서 유래한 ‘삼지무려(三紙無驢)’라는 성어는 ‘종이를 석 장이나 낭비했지만 결국 계약서에는 정작 써야 할 나귀 ‘려(驢)’라는 글자를 쓰지 못했다’는 것으로, ‘박사매려(博士買驢)’라고도 한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재주도 없으면서 허세를 부리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 육조시대(六朝時代) 말기 북제(北齊)의 안지추(顔之推)가 자손을 위해 저술한 《안씨가훈(顔氏家訓)》 〈면학편(勉學篇)〉에 실려 있다.
〈면학편〉에는 본질과 핵심을 파악하는 것이 학문의 관건임을 강조하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남을 가르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다른 학자들이 풀어놓은 것만을 지키고, 가르쳐준 말만을 되풀이하며, 세상일에 그것을 풀어먹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는 배울 만한 게 거의 없다. 대개 이러한 사람들은 누가 한 마디를 물으면 순식간에 수 백 마디로 어지럽게 대답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요지가 무엇인지를 따져 물으면, 정작 그 말의 요점을 정리하지 못하고 또 다시 어지럽게 수 백 마디 말을 어지럽게 늘어놓는다. 업하(鄴下) 지방의 속담에 ‘박사 서생이 나귀를 사는데 계약서를 석 장이나 쓰면서도 정작 계약서에는 나귀(驢)라는 글자를 쓰지 못했다(鄴下諺云, 博士買驢, 書券三紙, 未有驢字)’라는 말이 있다. 혹시라도 너희들로 하여금 이런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게 한다면 기가 막힌 일이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도 전문가 행세를 하는 이런 사이비(似而非)들이 곳곳에 넘쳐나지만, 정작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그 진면목을 알아채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우리 일상을 돌아보면, 굳이 스스로 나서서 자랑할 것도 뽐낼 일도 아니다. 실력이 있으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도 《논어(論語)》 〈학이(學而)〉에서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자기가 남을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하라(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고 가르쳤다.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나, 내 주변의 다른 사람의 능력도 살펴 존중해줄 줄 아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 많은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우리 전통문화 속에 면면히 흐르는 ‘겸손함의 미덕’이야말로, 자기PR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오늘날 우리에게 더욱 더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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