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
이런 미묘한 상황에서 국회의원 6명이 느닷없이 사드 배치와 관련하여 중국 내부의 상황을 알아보겠다면서 요란스럽게 방문길에 올랐다. 이렇게 안팎으로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차라리 민심을 더 깊이 알아보겠다고 국민 속으로 ‘여론수렴 투어’라도 먼저 나서는 것이 바른 순서가 아닌가. 그런데 난데없이 남의 나라 여론을 먼저 들어보겠다고 길을 나서다니, 아무리 곱씹어 생각해봐도 본말이 전도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게 국익이 우선이고 나라를 걱정하기 때문”이라는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을 국민이 몇이나 될까? 정부를 대표하는 공식방문단도 아닌 그들이다. 그것도 이제 막 국회의원 배지를 단 초선에다 중국 관련 전문가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며칠 전에는 한 개그맨 연예인이 사드 배치 현장으로 찾아가 대통령을 비롯한 일부 정치인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개그식 말장난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도 어김없이 ‘국가와 국민의 안전이 우선’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박수를 받았다. 대체 그는 사드 문제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 사이의 복잡미묘한 역학관계 등 여러 국가적 사안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안다고 겁도 없이 끼어들어 선동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는 우리 국민들의 수준을 자기처럼 철없는 무지랭이보다 못한 부류로 여기는가 보다. 참으로 어리석고 무식한 자의 만용이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돌아보면, 나라가 어지러운 세상에는 항상 그 혼란을 일으키고 부추기는 간신들이 있었다. 간신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음흉한 생각은 감추고, 허울 좋은 이야기로 듣는 사람의 귀를 즐겁게 만드는 기막힌 재주를 가지고 있다.
당 현종이 당시 총애하고 있던 안록산(安祿山)의 뚱뚱한 배를 보고 물었다.
“그대 뱃속엔 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가?” 안록산이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예, 폐하를 위한 일편단심이 가득 차 있을 따름이옵니다.(唯赤心耳)”
아부에 넋이 나간 현종은 안록산을 나라의 ‘대들보’라 불렀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755년 안록산이 이끄는 15만 반란군은 파죽지세로 장안으로 쳐들어오자, 현종은 끼니도 거른 채 도성을 빠져나와야 했다. 피신 도중에 어느 백발노인이 처량한 신세가 된 황제를 안타까워하며 수레의 난간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다.
“예전에 어진 이들이 재상일 때는 폐하께서 바른 말을 다 받아들였기에 천하가 태평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조정에 현명한 신하는 없고, 간신 아첨배들만 득실거립니다. 폐하는 황궁 밖의 일을 들을 수 없습니다.”
현종은 피눈물을 흘리며 “그 일편단심이라는 말을 믿었던 내가 어리석었도다.”고 장탄식했지만 이미 상황을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다.
“세상에 간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世未嘗無姦臣也). 다만 현명한 임금이 그들을 적절히 부림으로써 나라를 바른 길로 이끌어나갔기 때문에 멋대로 술수를 부릴 수 없었다(惟人主明 以照之而馭之 得其道 故不得騁其術). 만약 임금이 한 번 간신의 술수에 빠지면 나라는 거의 패망에 이르렀다.” 《고려사》 〈간신열전〉 서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즉 ‘간신’은 어느 세상이나 있지만 현명한 군주가 있다면 간신의 발호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려사》편찬자들이 간신열전을 기록하여 후일을 경계하려는 이유였다. 오늘날에 이르러 그 현군이란 바로 현명한 국민들을 가리키는 말이라 할 것이다. 왕이 모든 일을 결정하고 휘두르는 시대가 아니라,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 주권을 가진 국민들이 대표로 선출해 놓은 사람들이 바로 국회의원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마땅히 그들의 주인인 국민의 뜻을 잘 헤아려 그 뜻에 걸 맞는 정치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답답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통령까지 나서서 “국가 안보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초당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정치의 기본적인 책무”라면서, 몇몇 정치인의 중국 방문 행위는 ‘정치인의 기본 책무를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저는 매일같이 거친 항의와 비난을 받고 있지만 저를 대통령으로 선택해준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비난도 달게 받을 각오가 돼 있다”고 했다. 군주로서의 기본책무를 언급한 것이다.
간신과 충신을 구분하는 것은 언제나 군주의 몫이다. 다산 정약용도 “아첨을 좋아하는 자는 충성하지 못하고 간쟁을 좋아하는 자는 배신하지 않는다. 사람을 쓸 때는 반드시 이 점을 살펴야 한다.(《목민심서》 〈吏典篇〉 用人)”고 강조했다. 즉, 바른 말을 하는 신하라야 군주를 배반하지 않으며, 윗사람은 반드시 이런 이치를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역사상 성군이나 명군으로 평가 받는 군주들의 공통점은 간신과 충신을 잘 구별해서 쓸 줄 알았다는 데 있다. 중국 역사상 최고 성군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당 태종이 어느 날 궁중을 산책하다가 나무 한 그루 앞에서 서서 “이 나무가 정말 좋구나!”하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러자 시종 우문사급이 얼른 다가와 맞장구치며 거들었다. 태종이 안색을 바꾸며 말했다.
“위징(魏徵)이 살아 있을 때, 늘 짐에게 아첨배를 멀리 하라고 했는데, 그 때는 어떤 자가 아첨배인 줄 몰랐다. 그런데 오늘에야 비로소 알겠도다.”
일개 개그맨조차 말장난으로 국론분열을 부채질하고 여론을 호도하며 코미디 판으로 만들어도, 이를 두고 잘한다고 옹호하고 나서는 정당의 대표까지 있으니 더 말해 뭘 하겠는가. 당파의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국민을 기만하는 정치인과 그들을 감싸고도는 패거리 정치가 계속되는 한, 우리에게는 내일이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구설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정치인도 간신배에 다름 아니다. 당 측천무후 때 어사대부 관직에 있던 양재사(楊再思)의 경우가 그러하다. 조정 회의 때마다 황제의 안색만 살피며 쩔쩔매는 그를 보고 어떤 이가 “대부께서는 왜 그리 늘 굽신대기만 하느냐”고 물었다. 양재사가 대답했다.
“정치가 어지러울 때는 곧은 자가 먼저 화를 당한다. 그러니 이렇게 하지 않고서야 어찌 내 한 몸을 보전하겠는가.”
《신당서》는 재상자리에 10년 넘게 있으면서 의견도 내지 않고, 황제의 뜻도 거스른 적이 없는 양재사를 주저 없이 〈간신전〉에 올려놓았다. 가혹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그것이 바로 역사의 준엄하고 엄중한 평가이다.
자고로 간신은 나라를 좀먹는 벌레였다. 《송사(宋史)》 〈유일지전(劉一止傳)〉에 “군자가 여럿 모여도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없지만, 나라를 망치는 것은 소인배 하나면 족하다”고 했다. 간신이 얼마나 암적인 존재인지를 알려주는 말이다.《삼국연의(三國演義》 〈제갈량 매사왕랑(罵死王朗)〉에도 제갈량이 왕랑을 향해 “너처럼 썩어빠진 관리들이 금수처럼 녹봉만 축내고 있다. 너처럼 이리와 개 같은 무리들이 도를 행한답시고 굴러다니고, 노예와 같은 비굴하기 짝이 없는 너 같은 자들이 정치를 주무르고 있다.”면서 일갈하는 대목이 나온다. 왕랑은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말에서 떨어져 현장에서 죽었다.
돌아보니 정치판이 온통 간신배로 넘쳐나고 있다. 그 한심한 초선 국회의원들이나 철없는 개그맨은 물론이고 이들의 궤변을 옹호하며 동조하는 자들이, 역사로부터 한 시대를 농단하는 간신배들로 평가받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겸허하게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
유례없는 폭염에 사상 초유의 코미디 정치놀음이 이어지면서 국민들의 불쾌지수는 점점 높아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브레이크 장치가 고장 난 열차를 타고 롤러코스트를 만난 형국이다. 지금 한반도는 폭염 속에서 뜨겁고 긴장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제갈량의 준엄한 호통소리가 그리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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