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원섭(경민대 교수) |
연말 모임을 거듭할수록 ‘득과차과(得過且過)라는 말이 생각났다. 별로 하는 일 없이 한가하게 세월을 보내는 것을 이르는 말로, 굳은 의지와 기력이 없이 그럭저럭 되어 가는 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중국 산시성(山西省) 북동부에 있는 해발 3,040m의 불교 성산(聖山)인 우타이산(五臺山)에 생김새가 박쥐와 비슷하고 4개의 다리에 날개가 달린 동물이 살았는데 박쥐처럼 날지는 못했다. 봄과 여름에는 이 동물의 몸에서 아름다운 털이 났는데, 이때가 되면 보란듯이 우쭐거리며 자신의 자태를 뽐내는 모양으로 기이한 울음소리를 내는데, 그 울음소리가 마치 '봉황새도 나만 못하다(鳳凰不如我)'라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고 한다. 그런데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다가오면 아름다웠던 털이 모두 빠지면서 알몸이 되어 몹시 흉악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때가 되면 이 동물의 울음소리는 너무 처량하게 들리는데, 그 울음소리가 마치 사람들의 귀에 '그럭저럭 지내면서 되는 대로 살아가자(得過且過 得過且過).'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동물을 ‘한호조(寒號鳥)’ 또는 ‘한호충(寒號蟲)’이라고 불렀다.
득과차과(得過且過)라는 말은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말로서, 모든 일에 싫증을 내면서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뚜렷하게 한 것 없이 하루하루를 한가하게 보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마음먹은 대로 되었을 때에는 온 천하에 자기를 따를 것이 없다고 하는 오만방자한 태도를 보이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처량한 모습이 되어 사람들에게 동정을 구한다는 뜻이다. 중국 명나라 초의 학자 도종의(陶宗儀)가 지은 《철경록(輟耕錄)》에 실려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대로 그럭저럭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사회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관즉득중(寬則得衆)’으로 요약되는 ‘통합과 관용의 리더십’이다.《논어(論語)》〈양화(陽貨)〉편에 보면, 자장이 공자에게 인(仁)에 대해서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공손함, 너그러움, 미더움, 민첩함, 은혜로움, 다섯 가지를 천하에서 행할 수 있으면 인이 되느니라(恭寬信敏惠).” 이 가운데 ‘관(寬)은 두 번째 덕목으로 너그러우면 뭇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되므로 관대하고 관용이 있는 지도자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뜻이다. 즉, 다른 사람을 포용하면서 통합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을 말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한 고조 유방(劉邦)이다. 유방의 성공은 그 그릇이 컸다는 점에 기인하는데, 이런 됨됨이를 역사가들은 한마디로 ‘관(寬)’이라 평한다. 즉, 너그럽다는 뜻의 ‘관’은 관용, 관대, 포용력을 말하는데, 특히 부하 통솔법에서 이러한 성품을 잘 드러난다.
유방은 부하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자신이 먼저 나서서 지시하거나 명령하지 않았고 큰 문제가 생기면 항상 부하들의 의견을 들었다. 부하가 이런저런 대책을 말하면 차분히 귀를 기울인 다음 ‘좋다. 그렇게 하자’고 결단을 내리는 것이 유방의 의사결정 방식이었다. 중요한 것은 유방의 의사결정 방식은 대체로 참모들을 소집하여 공개된 장소에서 결정하곤 했다는 점이다. 어떤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한 참모의 의견에 대해 공론에 부쳐 그 토론으로 결정된 내용을 시행하고 그 추진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어준 것이었다. 그러므로 군대를 동원하고 휴식하고 이동하는 각각의 행위에 대한 이유를 참모들이 모두 공유함으로써 그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방식은 한비자(韓非子)가 권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한비자는 〈왕도(王道)〉에서 ‘뛰어난 임금은 지혜가 있는 신하에게 대책을 가다듬게 하고 자신이 그 위에 서서 결단을 내린다. 고로 그는 지혜가 부족해서 곤란을 겪는 일이 없다.(明君之道, 使智者盡其慮, 而君因以斷事, 故君不窮於智)’라고 말하고 있다. 한비자는 뛰어난 지도자의 조건으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하나는 부하들의 의견을 널리 구하고 그것을 정책에 반영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실행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결단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내리는 것이다. 유방은 한비자가 말하는 뛰어난 지도자의 두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런 관용과 포용으로 통합을 이끌어낼 만한 지도자가 없는 나라의 위기상황을 걱정하면서 그 해법은 없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다.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깊은 불신을 보면 그 해법의 중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정치 지도자들을 믿고 따르게 만들 수 있을까? 공자는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서 ‘곧은 자 즉, 정직한 자를 등용하여 굽은 사람 위에 올려놓으면 백성들이 복종한다(擧直措猪枉則民服).’고 말했다. 노나라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복종합니까?”라고 묻자 대답한 말이다.
애공은 노나라 임금으로 제 역할을 못하는 허수아비 왕이었다. 당시 노나라의 권력은 계손(系孫), 맹손(孟孫), 숙손(叔孫)의 삼가(三家)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애공의 질문에는 자신을 따르지 않는 백성들에 대한 통치자의 고뇌가 담겨 있었다. 그는 백성들이 자신을 따르지 않는 것은 모두 백성들의 어리석음에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생각은 달랐다.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것은 바로 권력을 등에 업고 국정을 농단하는 세 집안에게 있다고 파악하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곧은 인재를 등용하는 것이 백성들의 복종과 신뢰로 이어진다고 본 것이다. 정직한 사람이 위에 있으면 아랫사람들도 다 정직하게 되어 공평무사한 정치가 실현됨으로써, 백성들은 그 정치를 믿고 따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곧은 인재를 등용하는 것은 통치의 기본이다. 백성들이 복종하길 바란다면 올바른 사람을 적재적소에 등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정치와 신뢰와 복종의 첫걸음이다. 애공은 그 기본을 행하지 않은 것이다. 그의 측근에는 세 집안과 내통해 있는 아첨꾼들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제는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다. 나라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모두가 집단적 자성(自省)을 통해 거듭나야 한다. 《논어(論語)》 〈이인(里人)〉편에는 “어질고 현명한 이의 행동을 보고는 그와 같아지기를 생각하고, 어질지 못한 이의 행동을 보고는 마음속에서 스스로 반성한다(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고 했다. 어질고 현명한 사람을 보면 늘 그와 같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듯이, 어질지 못한 사람을 보면 ‘저 사람 같은 면이 나에게도 있지 않을까?’ 스스로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내 몸을 세 번 살핀다,”는 증자(曾子)의 ‘삼성오신(三省吾身)’은 만고의 가르침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도모하는데 충실하지 않았는지(爲人謀而不忠乎), 벗과 함께 사귀는데 신의를 잃지 않았는지(與朋友交而不信乎), 스승에게 배운 것을 익히지 못하지는 않았는지(傳不習乎).” 퇴계 이황도 58세에 이르러 《자성록(自省錄)》을 엮어 그 때까지의 자신의 지식과 행위 전반을 성찰하기도 했으니 자성은 하루의 일이 아니라, 평생의 일도 챙겨야 하는 것이다. 우리도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살피며, 옳은 것은 실천하고, 어질지 못한 것은 마음속에서 스스로 반성하는 자성(自省)을 한 번 해보는 건 어떨까?
어느 새 병신년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지금 우리 국민 모두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상실감이 크다. 훗날 후손들에게 이번 병신의 겨울은 어떻게 기억될까? 이번 겨울은 유난히 혹독한 추위가 이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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