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원섭(경민대 교수)
정치적·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미묘한 문제를 일컫는 용어로 ‘뜨거운 감자’라는 말이 있다. 영어의 ‘hot potato’를 직역한 것이다. 일상의 식단에서 주요 먹거리로 감자를 많이 먹는 미국인들이 많이 쓰는 말이다. 장작불에 갓 구워낸 뜨거운 감자를 입에는 넣었지만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감자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여서 해결은 해야 하는데, 사안이 너무 민감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주위 상황을 살피며 눈치만 보게 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쓰는 용어이다. 이 말은 오늘날 정치나 사회문제 등 모든 분야에서 다루기 곤란한 문제나 어렵고 민감한 사안을 가리킬 때 포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작게는 어느 한 분야나 한 지역의 문제일 수도 있고, 크게는 한 국가 또는 국제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뜨거운 감자’라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최근 우리 사회는 이렇듯 뜨거운 감자들이 널려 있다. 사드 배치 문제가 그렇고, 에너지 정책 문제도 그렇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양극화되어 있고 문제 해결방식은 어느새 폭력화되어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으로 사사건건 극한적인 반대투쟁을 이어온 결과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정치적인 문제로 주로 충돌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대결하는 분야는 사회의 모든 분야로 확대되면서 이제는 어떤 처방으로도 치유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달아버린 모양새가 되었다. 이와 같은 현상이 지속되는 사이에 토론문화는 편 가르기 문화로 변질되었고 자기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행동은 점점 거칠어졌다. 급기야 저들 스스로 공공장소를 불법으로 점거하고 공중질서를 무시하면서도 정당한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행위라고 합리화한다.
문제는 법질서를 엄격하게 집행해야 하는 공공기관이 이를 묵인하고 방조하는 데 있다. 그런데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권력기관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어느새 그런 행위들을 지지해오고 때로는 주도해왔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막상 자기들이 권력을 잡고 보니 상황이 묘해진 것이다. 불법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는 형국이 된 것이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구호에 열광하고 있는 사람들의 장막 뒤에 드리워진 우리 사회의 어두운 모습이다. 우리 사회의 뼈아픈 단면이다.
사회적 적폐 청산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인류가 공감하는 도덕적 가치를 기준으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제외한다면, 어떤 것을 적폐라고 규정할 수 있겠는가? 해방 후 우리는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대통령 중심제가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제도라고 믿어왔다. 비록 급속한 경제개발로 이어진 산업화 과정에서 개발독재도 있었고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인권의 유린과 탄압과 같은 부정적인 요소도 있어왔지만, 이를 제왕적 대통령제가 낳은 적폐라고 일방적으로 규정하고 폄하하기에는 이분법적 모순에 빠질 함정이 너무 많다. 사회발전의 모든 이치가 순기능적 요소가 있으면 역기능적인 요소도 있는 법인데, 한 시대의 수레바퀴를 함께 부대끼고 밀고 당기며 굴려서 예까지 왔는데, 어찌 이들을 따로 떼어놓고 평가하려 들 수 있겠는가? 저들이 가장 먼저 청산해야 할 적폐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합리성과 공감대가 확보되지 않은 편향되고 일방적인 것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그런 이분법적 편 가르기에 능한 버릇 때문이 아니겠는가. 상대를 동반자로 보지 않고 청산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는 것은, 결국 자기가 다치게 된다는 역사의 교훈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중국 춘추시대 우(虞)나라와 괵()나라는 서로 이웃하여 있던 작은 나라였다. 주변의 강대국인 진나라의 헌공(獻公)이 괵나라로 쳐들어가려고 신하인 순식(荀息)에게 그 의견을 묻자, 순식은 ‘괵나라를 공격하려면 반드시 우나라를 통과해야 합니다. 우나라 왕은 원래 욕심이 많은 사람이므로 먼저 그에게 귀한 옥과 좋은 말을 보내 환심을 얻은 후에 길을 빌려달라고 해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진헌공은 그의 계략에 따라 우나라 왕에게 귀한 옥과 좋은 말을 보냈는데, 욕심 많은 우나라 왕은 몹시 기뻐하면서 재상 궁지기(宮之寄)를 불러 논의하였다.
재상 궁지기는 진헌공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우왕에게 간언했다. “우리나라는 괵나라와 서로 이웃하고 있어서 한 몸이나 다름없는 사이입니다. 만약 괵나라가 망하면 우나라도 망할 것이옵니다. 옛 속담에도 수레의 짐받이 판자와 수레는 서로 의지하는 관계이며(輔車相依),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고 했습니다. 이는 바로 우리나라와 괵나라와의 관계를 말한 것입니다. 절대로 길을 빌려주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뇌물에 눈이 어두워진 우왕은 듣지 않았다. “진과 우리는 원래 같은 조상을 둔 나라인데 설마 우리를 해칠 리가 있겠소?” 궁지기는 탄식하면서 “우나라는 올해를 넘기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가족과 함께 다른 나라로 피신했다. 진나라는 궁지기의 예견대로 괵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도 정복하고 우나라 왕을 사로잡았다. 여기에서 유래한 고사가 “가도멸괵(假途滅虢)”이다. 상대를 공격할 군사적 목적을 숨기기 위한 구체적 수단으로 쓰이는 계책이다. 이 고사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은 상대를 죽이고 나면 공격 대상은 사라지지만, 그 기쁨과 승리의 희열은 실로 순간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공격 대상이 사라진 집단에서는 다시 새로운 공격대상을 찾게 되는데, 그 표적은 바로 내부에서 분열로 만들어지고 그 화살은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공격 대상에게로 향한다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상대가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며 함께 국정을 풀어나갈 동반자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이다. 상대의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말만 옳다고 계속 반복하면 상대의 눈에는 오만한 독선에 빠진 사람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진(晉)나라 명문가 범씨(范氏)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큰 종(鐘)이 있었다. 그런데 범씨 집안이 몰락하여 어수선하게 되자 도둑이 들어 그 종을 훔치려 하였다. 그러나 종이 너무 무거워 옮길 수 없자, 도둑은 궁리를 하다가 종을 부수고 조각을 내어 가져가려고 망치로 종을 내리쳤다. 그러자 ‘꽝’ 하는 요란한 소리가 났다. 도둑은 다른 사람들이 들을까 겁이 나서 얼른 자기 귀를 막았다. 자기 귀에 들리지 않으면 남의 귀에도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 고사에서 유래한 ‘엄이도종(掩耳盜鐘)’이라는 성어는 가당찮은 잔꾀로 자신의 비위를 숨기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비웃는 말이다. 엄이도령(掩耳盜鈴)이라고도 하는데, 《여씨춘추(呂氏春秋)》의 불구론(不苟論)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북한은 여전히 핵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고 주변 강대국은 한반도를 놓고 물밑에서 우리가 모르는 밀거래를 통해 이를 해결하려고 한다. 한반도 문제의 해결에서 우리의 의견은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존중을 받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 국민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우리의 동의 없이는 절대 안 된다고 연일 큰소리치고 있다. 국민은 불안해하는데 어디에서 나오는 자신감일까?
어느새 우리나라는 지금 장작불에서 갓 구워낸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뜨거운 감자’ 신세가 되었다. 이 난국을 풀어나갈 지혜로운 선택은 무엇인가? 갓 구워낸 감자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호호 불면서 이리저리 굴려 가며 껍질을 벗기던 기억이 새롭다.
어느새 우리나라는 지금 장작불에서 갓 구워낸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뜨거운 감자’ 신세가 되었다. 이 난국을 풀어나갈 지혜로운 선택은 무엇인가? 갓 구워낸 감자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호호 불면서 이리저리 굴려 가며 껍질을 벗기던 기억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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