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劉邦)과 장량(張良)이 처음 만났을 때 유방은 수천의 부하를 거느리고 있었고 장량은 백여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있었다. 장량은 일찍이 동쪽 순행 길에 나선 시황제(始皇帝)를 박랑사(博浪沙)라는 곳에서 철퇴를 던져 암살하려다 실패한 후 방랑하고 있었고, 시골의 말단관리였던 유방은 만리장성을 쌓는 공사에 인부를 동원하다가 도중에서 이탈하여 도망자들과 함께 숨어 지내고 있었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의기가 투합 되어 세력을 확장하면서 드디어 난세에 주목받는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유방이 장량에게 “천하를 경영하는데 무슨 묘책이 없을까?”하고 물었다.
“지금 천하의 인심은 몹시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는 무엇인가 확실한 것은 없을까 하고 사람들은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태공망(太公望)의 병서(兵書)에는 확고부동한 것을 주는 사람이야말로 천하를 경영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하고 장량은 대답했다.
패공은 장량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잘못이 있을 때 장량이 그것을 지적하면 순순히 따랐다. 장량은 패공의 이러한 인품에 감탄하였으며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또한 받아들일 줄 안다는 것은 윗사람으로서 어려운 일인데 패공은 능히 이를 해내니 이분이야말로 하늘이 내리신 분이라 감탄하고 섬기기로 결심하였다.
자기보다 나은 사람의 말을 믿고 따르면서 후일을 도모하던 유방은 나중에 소하와 한신을 얻어 마침내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 사회는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사회의 큰 흐름을 보수와 진보로 양분하던 이분법조차도 별로 설득력이 없을 정도로 보수는 예전의 보수가 아니요 진보도 예전의 진보가 아니다.
보수는 보수대로 자기들이 누려왔던 기득권을 빼앗기며 살아온 10여 년의 시간을 견디기 어려웠던 인고의 세월로 한탄하며 반드시 다시 찾아와야 한다고 칼을 갈고 있고, 진보는 진보대로 유신시대와 5공 등 오랜 세월 동안 참고 살아왔던 인고의 세월에서 마침내 가진 자의 위치가 되면서 권력의 달콤함을 맛본 후 이제는 다시 옛날로 돌아가지는 않겠다고 사력을 다하고 있는 형국이다.
새로운 기득권을 형성한 진보는 이제 그 권력의 위대함(?)과 풍요로움에 젖어 그 자리를 내놓고 싶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그것을 나누는 것조차도 반겨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현대차 노조와 같은 강성집단들이다.
지난 10여 년 간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수레바퀴를 굴려왔던 이들 진보세력들은 다른 사람들의 충고를 즐겨듣지 않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들의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협상하자고 양보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입장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 철저한 이기적인 태도를 일관되게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 독재시대를 살아오면서 경험하지 못했던 우리에게는 정권초기에는 파격이었고 뭔가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희망을 갖게도 했지만 일시적인 착시현상에 불과했다고 느끼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 우리들에게 이 시대의 진보는 또 다른 오만과 독선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국가경영 철학에서 오는 시행착오 등으로 인해 아름다운 백조의 환상을 버리고 배척당하는 미운 오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모든 국민의 소리를 겸허하게 수용하면서 국민이 진정으로 주인이 되는 정부를 만들겠다며 요란하게 출범했던 자칭‘참여정부’가 서서히 임기를 끝내가고 있다.
어느 정권 때보다도 더 많은 레임덕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바로 그들 스스로가 100년 후의 미래를 생각하는 새로운 국가 패러다임을 만들겠다고 하면서도 정작 경험 많은 참모들의 말을 따르지 않고 백성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일관된 오만함과 독선 때문이 아니겠는가.
예로부터 민심은 천심이라 했다. 예로부터 스스로 잘났다고 외치던 어리석은 군주는 많았으나 어리석은 백성은 어느 시대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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