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원섭
1984년 8월 어느 날 아침, 각 신문 1면 톱기사로 경북 영주에서 고구려 벽화고분이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영주는 원래 신라문화권에 속하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그 곳에서 고구려 벽화고분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역사학자들에게는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강남대학교 외래교수)
당시 한국고대사를 전공하며 석사과정에 있었던 나는, 지도교수와 함께 청량리에서 열차를 타고 풍기에서 내려 택시로 발굴 현장이 있는 영주 순흥으로 갔다. 그리고 그 때 처음으로 웬만한 사람이면 볼 수 없는 벽화고분의 내부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채색이 약간 바래기는 했지만, 연도(羨道)의 남쪽 벽에는 명문(銘文)과 어형기(魚形旗)가, 서쪽 벽에는 우람한 청년이 뱀을 몸에 감고 두 손에 뱀의 목과 꼬리를 잡아 역도하는 자세를 취하는 역사상(力士像)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피장자의 유골이 일부 남아 있었다.
발굴단과 함께 식사를 하고 나서 나는 고분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여러 개의 고분들이 석실을 드러낸 채 파괴되어 있었다. 모두 도굴을 당한 것이다. 그 중에서 제일 커 보이는 고분의 석실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허리를 굽혀 들어간 고분의 내부는 장방형의 석실로 현실(玄室) 내부가 제법 컸다. 바닥에는 도굴 과정에서 깨뜨려진 듯 한 토기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져 있었다.
나는 벽 쪽으로 플래시를 비추다가 뭔가 이상한 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사방 벽에는 강돌을 쌓아 축조를 하면서 돌과 돌 사이에는 방수를 위해 진흙에다 잘게 썬 볏짚을 섞어 반죽처럼 만들어 발라놓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진흙을 발라놓은 자리 자리에 수 백 개의 지문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끼치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석실 한 가운데 앉아 눈을 감았다.“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라고 카아(E. H. Carr)는 말했던가. 이 무덤의 피장자는 누구일까? 이 지문을 남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었을까? 이 사람들은 과연 천 여 년이 지난 후에 자신의 후손들에 의해, 그들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들이 일정한 평가를 받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조사 결과, 이 고분들은 모두 6~7세기경에 축조된 것으로 판명되었으니까, 나는 1,300~1,400년 전의 사람들과 대화를 한 셈이었다.
나는 그 때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며 얼마나 가슴 뿌듯한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아하. 사람들은 이런 느낌 때문에 자기가 전공하는 분야에 더욱 몰입하게 되는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그 만한 느낌을 가져 본 적이 별로 없다.
영화“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를 보면, 주인공이 미래의 좋은 삶을 만들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서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소동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우리는 역사 공부를 하면서 종종 안타깝게도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펴 보지도 못하고 시대의 풍운아로 사라진 몇 몇 선각자들을 아쉬워하곤 한다. 그들이 주장했던 사상이나 세계는 다음 세대에 이르러 그대로 현실로 나타났음을 우리는 역사적 교훈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른 바 지은 죄는 당시 사회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파격적인 사고에 기인한 가치관을 사회적으로 보편화, 일반화하려는 것이었을 뿐이었다. 즉, 시대를 앞서 간 죄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도 그런 역사의 오류를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가올 미래 사회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해야 하고 그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새로운 세계에 대해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주목해야 한다. 혹시 우리 주변에는 우리보다 한 발 먼저 지나갔다가 우리를 위해 미래에서 다시 온 사람은 없을까.
우리는 누구나 미래의 우리와 우리 후손들의 모습에 대해 궁금해 한다. 1,300~1,400년 전에 그 고분을 만든 사람들이 그랬고, 오늘을 사는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들의 100년 또는 그 후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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