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원섭(경민대 교수)
하버드대학의 사회학자 에드워드 밴필드((Edward Banfield) 교수가 젊은 시절에 9개월 동안 이탈리아 남부 시실리의 한 작은 마을에서 살 기회가 있었다.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두 가지 특징이었다. 하나는 너무 가난하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미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공동의 이익을 위한 자원봉사 같은 것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자기 가족들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각자의 이익만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이웃은 이익을 함께 나눌 수 없는 적으로 간주되었다. 때문에 서로에게 적용하는 행동 기준도 가족에게 대하는 것과는 달랐다. 마을은 서로 돕고 사는 공동체가 아니었다. 마을은 치열한 전쟁터였다.
이런 관찰을 바탕으로 그는 1958년에 《후진사회의 도덕적 기초》라는 책을 출간했다. 밴필드는 이 책에서 마을 사람들이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는 이유가 자기 가족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공익 또는 공동선(共同善)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태도와 행동에 비롯되었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오로지 자기 가족의 이익만 고려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자기 가족과 남에게 각각 다른 이중적인 도덕적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일반화된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행동 양식을 ‘무도덕적 가족주의(amoral familism)’라는 용어로 정의했다. 가족에 대한 애착이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을 불러일으켰고, 오직 자기 가족 구성원에 대해서만 도덕적 의무를 느끼는 현상을 초래했다고 보았다.
지금 우리 사회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차이가 있다면 문제의 원인이 가족이 아니라 집단의 이기적인 행동에 있을 뿐이다. 최근 유행어가 된 ‘내로남불’이 시사하듯이, 지금 우리 사회에는 내가 속한 집단과 다른 집단 사이에 이중적인 판단 기준을 적용하는 행태가 만연해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자기 집단의 단기적인 이익을 극대화하려 하기 때문에 사회 발전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
해가 바뀌기가 무섭게 전직 공무원의 내부고발을 두고 나라 안팎이 시끄럽다. 고발 내용이 주는 상당한 무게감(?) 때문인지 정치권의 반응은 물론, 국민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그러나 그동안 ‘공익 제보자 보호’를 주장하며 사회정의를 외치던 시민단체들은 뜻밖에도 조용했다. 폭로를 시작한지 6일만에 겨우 참여연대가 내부고발자를 고발한 기재부에게 이를 철회하라는 논평을 냈다. 내부고발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고, “정권이 바뀌니 시민단체가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이 나오자 마지못해 논평을 내는 모양새이다.
여당의 한 의원은 내부고발자를 향해 ‘돈 벌러 나온 사기꾼’, ‘순진한 표정을 만들어 청산유수로 떠드는 솜씨가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면서 노골적인 ‘인격살인’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의원의 태도는 오히려 이중적이고 위선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전 정부 당시 내부고발자에게 ‘의인(義人) 중 의인’이라며 온갖 호들갑을 떨며 치켜세우던 바로 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잣대란 ‘어떤 현상이나 문제를 판단하는 데 쓰이는 기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어떤 사건을 두고 평가를 내릴 때는 보편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공동선(共同善)’을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 공정하고, 공정하기 때문에 신뢰를 받는다. 똑같은 상황에 대해 경우에 따라 다른 결과를 제시하는 것을 우리는 ‘이중적 잣대’라고 말한다.
공동선이란 개인을 포함한 공동체 전체를 위한 사회 구성원 전체에 공통되는 이익(public interest)을 의미한다. 공동선의 추구는 다양한 구성원과 복잡한 사회체계를 가진 현대사회를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하는 핵심적인 원리이다.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공익(公益)보다 사익(私益)을 앞세우면 공동체는 혼란에 빠지고 그 사회는 와해되고 만다.
하지만, 공동선을 지나치게 내세워 개인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변질된 집단주의나 권력 지향주의는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공동선이라는 가치의 추구도 결국은 인간 개개인의 가치와 존엄성 존중은 물론, 모든 구성원이 다함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모든 집단이 공동선은 뒤로한 채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있다. 다른 집단이 한 것은 기득권 지키기지만, 자기가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라 한다. 오로지 제 집단의 이익만 내세운다.
해가 바뀌고 황금돼지해가 온들 무슨 소용이 있나? 공동선을 담보하는 공정한 잣대가 적용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아무리 큰 복이 굴러들어온들 그 혜택은 그들에게만 돌아가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요구하며 묻는다. 지금 우리는 공정한 잣대를 가지고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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