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원섭(경민대 교수)
“저는 불행하게도 일찍이 부모를 잃어 생후 6개월 된 갓난아이 때 아버님과 사별하고 네 살 때 어머니께서 개가(改嫁)하는 바람에 혼자가 되었습니다. 외롭고 약한 것을 불쌍히 여기신 할머니 유(劉)씨께서 저를 키워주셨습니다. 저는 어릴 적에 병이 많았고 아홉 살이 되어도 걷지 못했으며 외롭고 쓸쓸하게 홀로 고생하면서 겨우 성인이 되었습니다. …(중략)… 할머니께서도 일찍 병이 들어 늘 자리에 누워 계십니다. 저는 매일 탕약을 달여 올리며 한 번도 곁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중략)… 할머니가 없었다면 오늘의 제가 없었을 것이며, 할머니도 제가 없으면 여생을 마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할머니와 손자 두 사람이 서로 목숨을 의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략)… 저는 금년에 44세이고 할머니는 96세이니, 이는 신이 폐하께 충성을 다할 날은 길고, 할머니를 봉양할 날은 짧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부디 까마귀가 먹이를 물어다 늙은 어미에게 먹여 은혜를 갚듯이,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봉양하게 해주시기를 바라옵니다(烏鳥私情, 願乞終養). …(중략)… 만약 할머니께서 다행히 여생을 끝까지 보전하게 된다면, 저는 살아서는 목숨을 바쳐 폐하께 충성을 다하고 죽어서는 할머니의 은혜에 결초보은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진(晉) 무제(武帝, 사마염) 때, 이밀(李密, 224-287)이 황제에게 올린 진정표(陳情表)의 내용이다. 황제가 그에게 ‘태자세마(太子洗馬)’라는 관직을 제수하자, 할머니를 봉양해야 한다는 이유로 황제에게 글을 올려 관직을 사양하면서 올린 글이다. 무제는 그의 효성에 감복하여 노비들을 하사하였고, 관할 군현에서는 이밀의 할머니 유씨에게 의식(衣食)을 제공하도록 배려하였다.
예로부터 ‘진정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효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듯이 그의 글은 너무나 절박하여 읽는 이들의 심금을 울린다. 그가 쓴 진정표는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 한유(韓愈)의 제십이랑문(祭十二郞文)과 더불어 중국 역사상 3대 명문장으로 꼽힌다. 굳이 가정의 달 5월이 아니더라도 읽을수록 숙연해지는 참으로 명문장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도 이제 어느덧 4대가 한 집에 모여 살던 것을 미덕으로 알았던 전통적인 대가족 문화가 사라지고. 핵가족을 거쳐 이제는 이른 바 ‘1인 가족문화’가 일반화된 속칭 ‘전자가족’ 시대가 되었다. 고향의 부모를 그리워하지 않는 자식이 어디 있으랴마는 마음만 그리워할 뿐 몸이 따라가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 대학을 나와도 취업조차 만만하지 않은 세상이 되고 보니 요즘 젊은이들은 제 몸 하나 간수하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흔히 부모에게 용돈을 보내고 먹을 것을 챙겨 드리는 것으로써 효도를 다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일찍이 공자께서도 지적한 바 있다. ‘개나 말도 집에 두고 먹이지 않는가. 공경하는 마음이 따르지 않는다면 무엇으로써 구별하랴(今之孝者是謂能養 至於犬馬皆能有養 不敬何而別乎)라고.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소를 잡아 제사지낸들 무슨 소용인가? 차라리 생존해 계실 때 닭, 돼지로 봉양해 드리는 것만 같지 못하다, 처음에 내가 관리가 되어 녹(祿)이 6말 4되도 안 되었으나 오히려 기뻐했던 것은 그 녹이 많다고 생각되어서가 아니라, 그것으로써 어버이를 봉양할 수 있음을 즐거워했기 때문이다.
어버이께서 돌아가신 후, 내가 초나라에 가서 높은 벼슬을 받았음에도 오히려 북쪽을 향해 눈물을 흘린 것도 그 벼슬이 천(賤)하다고 생각되어서가 아니라, 그것으로써 효도를 하고 싶어도 돌아가신 어버이에게 미칠 수 없음을 슬퍼했기 때문이다.“
공자의 제자 증삼(曾參)이 부모를 여읜 뒤에 부모를 그리워하며 다시는 효도할 수 없음을 탄식하며 한 말이다.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위해서라면 영혼까지 팔아가며 온갖 아부를 아끼지 않는 세상에서, 그 부러운 벼슬을 마다하고 키워주신 은혜를 갚으려는 이밀의 효심은, 각박해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로 하여금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위해서라면 영혼까지 팔아가며 온갖 아부를 아끼지 않는 세상에서, 그 부러운 벼슬을 마다하고 키워주신 은혜를 갚으려는 이밀의 효심은, 각박해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로 하여금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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