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극장가에 영화 한 편이 톱뉴스를 장식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화려한 휴가’라는 제목을 단 영화로, 개봉한 지 약 4주가 지나면서 이 영화를 본 관객이 500만을 돌파함으로써 드디어 흥행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개봉 전부터 매스컴으로부터 관심을 끌었고 앞으로도 훨씬 더 많은 관객몰이가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니 지켜볼 일이다.
이 영화가 관심을 끌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아픈 사건 가운데 하나였던 1980년 5월의 광주민주화운동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작진은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기록되고 있는 5월 민주항쟁을 약간 다른 관점에서 그려내면서도, 당시 세계적인 지탄을 받았던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 장면들을 여과 없이 삽입함으로써 현장감을 불어넣으려고 애썼다.
당시 계엄을 선포하고 무자비하게 진압했던 정부는 이 운동의 실패를 선언했지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5월 민주항쟁은 역사적으로 승리한 운동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마침내 오늘에 이르러서는 당시 하늘이 무서운 줄 모르고 설쳐대던 5공 정권의 실세들은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어 햇빛이 두려운 듯 살고 있고, 구속되고 상처 입었던 사람들과 영혼들은 고통의 세월을 용서와 화합으로 보상받으려 하고 있다.
음지가 양지가 되고 양지가 음지가 되듯이 서로 처지가 뒤바뀐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힘이요 교훈이다. 이런 일을 교훈으로 삼으라는 뜻으로 옛 어른들은 ‘수락석출(水落石出)’이라는 고사성어를 자주 사용했다.
‘물이 빠지고 나니 돌이 드러난다'라는 뜻으로, 시간이 지나 어떤 일의 흑막(黑幕)이 걷히고 진상이 드러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이 말은 중국 송나라 때 소동파(蘇東坡)가 지은〈후적벽부(後赤壁賦)〉에서 유래되었다. 소동파(蘇東坡)는 송나라 명문장가 소순(蘇洵)의 큰 아들로 태어난 인물로 아버지는 물론, 동생 소철(蘇轍)과 함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8자리 중 3자리나 차지함으로써 명문가문의 기반을 확실하게 다진 인물이었다.
송나라 신종(神宗)이 왕안석의 변법(變法)을 받아들여 일대 개혁정치를 단행하자 구법당(舊法黨)에 속한 소동파는 구양수와 함께 반기를 들었다. 소동파는 왕안석과 격렬하게 논쟁을 벌였지만 당시 신종의 총애를 받고 있던 왕안석을 대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는 호북성 황주(黃州)의 동파(東坡)라는 곳으로 좌천되었다. 이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그가 좌천되었던 곳의 지명을 따서 그를 소동파라 부르게 되었다.
그는 천성이 자연을 즐겼던지라 틈나는 대로 주변의 명승지를 유람하였는데 그 가운데 적벽(赤壁)이라는 곳을 찾아 2수의 부(賦)를 지었다. 이 적벽은 우리가 삼국지를 통해 잘 알고 있는 '적벽대전'이 있었던 곳이 아니라 이름만 같은 다른 장소였다.
손권과 유비가 연합하여 조조의 백만 대군을 궤멸시켰던 유명한 '적벽대전'은 오늘날 호북성(湖北省) 가어현(嘉魚縣)의 북동쪽에 위치한 곳으로 양자강 남안(南岸)의 한 지명을 가리킨다.
늦가을 어느 날 적벽을 다시 찾은 소동파는 삼국시대의 적벽대전을 생각하며 시상을 떠올렸다. 단풍이 든 기암절벽 사이로 소슬한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적벽의 경관은 이전과는 느낌이 또 달랐다. 소동파는 붓을 들어 단숨에 적어내려 갔다.
… (前略)
江流有聲 斷岸千尺
강물은 흘러 소리를 내고, 깎아지른 언덕은 천 길이나 되네.
山高月小 水落石出
산은 높고 달은 기우는데, 물 빠지니 돌이 드러나누나.
曾日月之幾何
일찍이 세월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고
而江山不可復識矣
이리도 강산을 알아볼 수 없단 말인가.
(後略)…
이 싯귀 가운데 ‘물 빠지니 바위 드러난다’는 구절을 옛 어른들은 놓치지 않았다.
늦가을 어느 날 물 빠진 강의 모습을 보고 읊은 것을 후세 사람들은 흑막(黑幕)에 가려있던 진상이 훤히 드러나는 것도 이 싯귀, 즉 수락석출(水落石出)에 비유했다. 아무리 덮어두려고 해도 진상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된다는 뜻이다.
권세를 가진 사람들 가운데 가끔은 천하를 움켜쥐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면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행동하고 말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천년만년 그 자리에서 그 권세를 누리고 살 수 있는 것처럼 뭐든지 일방통행이다.
우리 속담에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달도 차면 기운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영화로도 인기를 끌었던 유명한 중국가수 등려군의 노래 ‘하일군재래(何日君再來)’에도 ‘好花不常開 好景不常在(아름다운 꽃은 늘 피는 것이 아니고 아름다운 경치도 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가사로 노래를 시작한다.
1980년 5월 무고한 광주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군화발로 무자비하게 밟고 그 피를 묻힌 총칼로 5공 정권은 탄생했다. 많은 사람들이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내야 했고 군부 독재세력들은 마치 천년만년을 살 것 같이 함부로 행동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민심을 등진 독재세력이 얼마가지 못하고 쓰러진다는 진리는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는 데도 이들에게 그런 역사의식을 기대한 것이 애당초 잘못된 것이었으리라.
이들 정권들이 무너지고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그동안 흑막에 가려져 있던 진실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이 드러나는 가운데에도 당시 관련자들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이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지금 그대들이 비록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천수를 누리고 죽는다 하더라도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나 할까, 그대들이 어찌 준엄한 역사의 심판대를 비켜갈 수 있겠는가.
그런데 한 술 더 뜬 일이 일어나 황당하기 그지없다. 독재자를 배출했던 한 지자체에서 이 영화의 상영을 금지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영화사와 시민단체에서는 이런 조치에 반발해서 해당 지자체 내에서 이 영화의 상영을 강행한다고 하니 결과를 한 번 지켜볼 일이다.
이 지자체는 지난해에도 당시 독재자의 이름을 딴 공원을 조성하기로 한다는 발표를 함으로써 전국적인 지탄을 받았다. 오죽 빛낼만한 인물이 없었으면 이런 짓을 했겠느냐 라는 자조 섞인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건 정말 해도 너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면 문화의식과 역사의식을 고루 갖춘 자치단체장을 뽑는 일도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백성 위에 군림하려는 자들이여. 역사의 평가가 얼마나 준엄한가를 부디 알아야 할 것이다.
이수차천(以手遮天)이라, 어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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