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제(齊)나라에서 왕도(王道) 정치의 이상을 펴려고 했으나 도저히 받아들여질 가망이 없자 제나라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선왕(宣王)은 시자(時子)라는 사람을 보내 집과 1만종(萬種)의 곡식을 녹(祿)으로 준다고 하면서 회유했다. 1종은 6섬 4말이니, 요즘의 쌀 한 가마(20만원) 시세로 계산한다면 연봉 2백억이 넘는 거액에 해당한다.
이에 맹자는 자숙의(子叔疑)가 자식에게 벼슬을 물려주면서 대를 이어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한 것을 두고‘어떤 사람인들 부귀를 원하지 않으랴마는 그는 남을 밀어젖히고 부귀를 독차지한 것이다(私壟斷焉:사농단언)'라고 비난하면서 `자신의 정치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욕심을 버리고 그냥 물러설 일이었다'라고 비판했다.
또 ‘옛날 한 욕심 많은 장사치가 있어 높이 솟은 언덕에 올라 저자거리를 둘러보고는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싼 것을 사모아 비싸게 팔아 이익을 독점했다. 사람들이 모두 그를 부도덕하다고 비난하였고 이에 관리도 그 자에게 세금을 물게 하여 부당한 이익을 환수했다. 이것이 상인들에게 세금을 거두기 시작한 시초였다’고 하면서, ‘만약 내가 부유하고자 했다면 벌써 그리했겠지만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데도 봉록에 욕심을 내서 재물을 독차지(壟斷)할 생각이 없다’며, 선왕이 제의한 1만종의 봉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제나라를 떠났다.
원래 농단(壟斷)이란 뜻은 ‘깎아 세운 듯이 높이 솟은 언덕’을 의미하는 말인데, 시장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이익이나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비난하는 뜻이 담겨 있다. 원래 시장이라는 곳은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으로 나에게 없는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는 곳을 말한다. 그러나 이렇게 농단하는 모리배(謀利輩)들이 있어 시장의 원리를 왜곡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맹자는 장사꾼을 ‘말리자(末利者)’, 즉 이끗을 취하는 사람들이라고 완곡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맹자는 대를 이어 부귀와 권세를 누리려고 했던 자숙의의 처사나, 이익을 독차지하려고 했던 욕심 많은 장사치의 소행을 사회 전반의 보편적인 정서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라 여겨 일침을 가했던 것이다.
이 말은『맹자(孟子)』의〈공손추(公孫丑〉 하(下)편에 나오는데 원문에는 ‘壟’이 아니라 ‘龍’으로 되어 있다. 언덕이라는 의미로 쓰일 때에는 ‘용’이 아니라 ‘농’으로 발음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새로운 얼굴들이 국정을 맡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위치에 있는 지도층의 인사들이 알고 보니 ‘위선(僞善)의 가면(假面)’을 쓰고 그동안 부정하고 부당한 방법으로 자기 잇속 챙기기에 몰두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면서 국민들 사이에는 실망감을 넘어 한숨 섞인 자조의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제 딴에는 변명할 구실을 찾느라 온갖 궁리를 하는 모양인데 며칠 궁리 끝에 나오는 변명치고는 한심할 정도로 어이가 없다. 도대체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건지는 몰라도 저 혼자만 잔뜩 약을 대로 약은 모습이다. 지켜보자니 분노를 느끼다 못해 차라리 안쓰럽기까지 하다.
누가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고 내 방식대로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의식이 만연된 오늘의 현실을 생각하면, 처음부터 존경이나 신뢰받을 수 있는 인물이 나타날 것을 기대한 것도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돈과 권력, 그리고 유명세에 취약한 우리 사회의 허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우리 사회의 허점을 간파한 약삭빠른 사람들이 사회 구석구석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은 자리에 올라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여 이리저리 농단해왔던 결과물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가운데는 지난 정권 때 국정을 맡은 사람들을 보고 부패한 사람들이라고 거친 말들을 토해내며 가혹하게 공격해대던 이들도 섞여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허물은 돌아보지 아니하고 남의 허물 잡기에만 몰두해온 사람들에게는 상황역전이요 자승자박한 꼴이다.
기업을 열심히 하면서 부(富)를 축적해온 사람들은 으레 그렇다 치더라도 학자들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학자라고 해서 상아탑에만 갇혀 후학을 가르치며 고고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 현실에 참여한다는 명분으로 정치판에 기웃거리는 학자들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쩐지 고귀한 품격으로 존경받는 모습이 아니라 구린내 나는 속세의 영리(榮利)가 듬뿍 배어나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농단을 일삼는 ‘말리자(末利者)’들이 각계각층에서 횡행하고 있다. 현실이 날로 각박해져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사회의 이런 모습에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언제나 묵묵히 일하는 참일꾼들이 곳곳에 숨어서 지켜보며 제 역할을 열심히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 ‘말리자(末利者)’들의 농단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작지만 진실된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옥석을 가려 판단할 줄 안다면 더 선진화된 건강한 사회가 빨리 오지 않겠는가.
내일은 또 어떤 귀하신 분의 가면이 벗겨지고 ‘말리자(末利者)’의 대열에 오르내릴까?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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