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극장가에서 크게 인기를 모았던 오우삼(吳宇森) 감독의 영화「적벽대전(赤壁大戰)2」에서 조조(曹操)가 휘하 장수들을 모아놓고 술을 마시며 시(詩) 한 수(首)를 읊는 장면이 나온다.
對酒當歌(대주당가) 술잔을 들고 노래를 부르노라.
人生幾何(인생기하) 우리의 삶이 길어야 얼마나 되는가.
譬如朝露(비여조로) 비유컨대 아침이슬처럼 덧없는 것이거늘
去日苦多(거일고다) 지나간 나날 속에 괴로움만 많았도다.
慨當以慷(개당이강) 슬피 한탄하며 목 놓아 노래 불러도
憂思難忘(우사난망) 근심걱정은 잊기가 어렵구나.
何以解憂(하이해우) 무엇으로 이 근심 풀 수 있으리오
惟有杜康(유유두강) 오로지 한 잔 술 뿐이로다.
(하략(下略))
조조(曹操. 155∼220)가 지은 시로 후세 사람들이「단가행(短歌行)」또는「대주당가(對酒當歌)」라고도 부르는데 감정이 충만하고 박자가 처량한 서정시이다. 조조는 삼국시대 당시 난세의 영웅으로서 이름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문풍(文風)의 혁신을 선도하고 개창하였으며 찬란한 문학의 신시대를 열었던 문단의 기수이기도 했다.
조조는 이 시를 통해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과 덧없이 짧은 인생을 한탄하면서도 동시에 현자(賢者)를 갈망하는 심정과 공을 세우려는 웅대한 뜻을 드러냈다.
예컨대 ‘人生幾何’라는 한탄(恨歎)을 시작으로 해서 “새벽이슬처럼 지난 세월에 괴로움도 많았다(譬如朝露, 去日苦多)"라는 표현으로 지난 날 자신의 뜻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데 대한 안타까움을 아침이슬과 같은 덧없는 인생에 비유하면서,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의 패배로 인한 좌절감에다 당시 나이 60을 눈앞에 두고 있던 상황에서 느낀 짧은 인생에 대한 허망함 그리고 천하를 제대로 평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산은 높음을 시기하지 아니하고, 바다는 깊음을 시기하지 않듯이 주공이 했던 것처럼 천하의 민심이 모두 내게 오도록 하겠다(山不厭高, 海不厭深, 周公吐哺, 天下歸心)"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웅대한 야심과 포부를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조로(朝露)’는 아침이슬을 뜻한다. 아침이슬은 비록 수정처럼 영롱함을 자랑하지만 해가 뜨면 금방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한 순간’ 또는 ‘인생의 덧없음’을 말할 때 조로(朝露)라는 표현을 쓰곤 했다.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아침에 났다가 저녁에 사라지는 버섯인 ‘조균(朝菌)’에도 자주 비유하듯이 우리 인생살이도 그와 다를 것이 없다. 흔히들 부운조로(浮雲朝露)라 하여 하늘에 떠있는 구름도 역시 덧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정치판의 부패상이 끝없이 드러나고 있다. 한 기업가의 탈세에 대한 수사가 마침내 전직 대통령에게까지 이르렀다. 사실 이 수사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부터 세간에는 그 궁극적인 대상이 전직 대통령일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일차적으로는 그 기업가가 전직 대통령의 후원자였기 때문이었지만, 더 설득력이 있었던 것은 정권교체기마다 늘 대형 정치자금 비리가 터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전두환 정권 때는 3김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수사가 이루어졌고 노태우 정권에서는 자신에게 정권을 물려준 전두환 정권의 비자금으로 화살을 겨누었다. 김영삼 정권에서 노태우 정권의 비자금 수사도 예외일 수 없었고 김대중 정권에서는 김영삼 정권의 안기부자금 수사로 이어졌다. 지난 노무현 정권에서는 김대중 정권 당시의 대북자금이 수사대상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대권 경쟁자였던 이회창 현 자유선진당 대표의 대선자금도 수사에 올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시작되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비리관련 수사를 보면서 권력의 부침(浮沈)에 대한 세상인심의 반응과 변화가 늘 놀랍기만 하다. 요즈음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차갑고 냉정하다. 한두 번 속은 것이 아닌데다가 비리가 있고 없고의 문제를 떠나 보복과 한풀이의 삼류정치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높은 관직에 올라 천하를 호령하며 천년만년을 살 것 같이 처신한다 하더라도 때가 되면 강산도 변하고 인심도 변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기도 하다. 천하를 통일하고 호령하며 부러울 것이 없었던 진시황도 불로장생을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고작해야 50세를 넘기지 못했다.
조조(曹操)가 술잔을 높이 들고 인생을 일러 아침이슬(朝露)에 비유했듯이 우리들의 삶이란 결국은 나뭇잎에 붙어 있는 새벽이슬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국민들은 오늘날 어차피 결론이 뻔한 가소로운 정치판의 놀음을 보면서 환멸을 느끼면서 근심과 깊은 시름에 잠겨 있다.
대체 무엇으로 이 근심과 시름을 해소할 수 있으리오.
오로지 한 잔 술 뿐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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