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李白)과 더불어 당(唐)나라 시단(詩壇)에서 쌍벽을 이루며 시성(詩聖)이라는 칭호를 얻은 두보(杜甫)는 그가 가진 천재적 재능에 비해 관운(官運)이 없는 사람이었다.
안록산(安祿山)의 난(亂)으로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온갖 시련을 겪다가 나이 47세(A.D.758)에 이르러 겨우 좌습유(左拾遺)라는 말단관직에 앉았다. 그는 1년 간 곡강(曲江)에 머물면서 매일 같이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고 술을 마시며 아름다운 자연을 상대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곡강(曲江)은 당나라 수도인 장안(長安, 오늘날의 西安)의 동남지역 끝 중심지에 있는 연못의 이름으로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했으며, 특히 봄날이 되면 연못의 남쪽에 있는 부용원(芙蓉苑)이라는 궁원(宮苑)으로 많은 사람들이 꽃구경을 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한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곡강이수(曲江二首)라는 칠언율시(七言律詩)도 그 때 지은 것이다.
一片花飛減却春 꽃잎 한 점 질 때마다 봄날이 줄어들거늘
風飄萬點正愁人 바람에 만 점 잎이 흩날리니 시름겹도다.
且看欲盡花經眼 지는 꽃잎 눈앞을 스치는 것도 잠깐이려니
莫厭傷多酒入脣 몸 상한다 하여 술 마시는 일 마다하지 않으리
(…中略…)
첫 구절 일편화비감각춘(一片花飛減却春)은 너무나 유명한 싯귀로, 이를 따서 책 제목으로 삼은 것만도 수십 권에 달한다. 시인은 갔으나 그가 남긴 명귀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술을 좋아하는 두보(杜甫)는 난세의 울분을 달래거나 시흥을 돋우기 위해 술을 많이 마셨다. 그래서 퇴근길이면 주막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돈이 없으니 옷 따위를 잡혀두고 술을 먹었는데 여기저기 깔린 술값이 마침내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까짓 술값이 무슨 대수인가.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朝回日日典春衣 조정에서 나오면 봄옷 잡혀놓고
每日江頭盡醉歸 매일 강가에서 취하여 돌아오네.
酒債尋常行處有 외상 술값은 가는데 마다 깔려있지만
人生七十古來稀 사람이 일흔까지 사는 건 옛부터 드물다고 했지
(…下略…)
흔히 말하는 심상(尋常)은 원래 고대 중국의 도량형(度量衡)에서 유래된 말이다. 둘 다 길이를 뜻하는 단어로 심(尋)은 8자(尺)이고 상(常)은 그 두 배인 16자(尺)를 뜻했다. 물론 그 자(尺)의 길이는 오늘날의 길이보다 약간 짧았는데 당시에는 그리 길지 않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제후들이 쟁패에 혈안이 된 나머지 ‘심상(尋常)의 땅’조차도 서로 다투었다고 한다.
장자(莊子)는 ‘배를 물에 띄우면 잘 나가지만 땅에서는 평생을 밀어도 심상(尋常)만큼 나가기도 힘들다.’고 했다. 그러므로 심상(尋常)은 얼마 되지 않은 길이로 극히 미미하여 보잘 것 없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심상치 않다’고 하면 결국 ‘예사롭지 않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 유명한 고희(古稀)라는 말도 바로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요즈음 사회 전체가 어지럽고 시끄럽다. 내일이면 꼭 뭔가가 터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으니 아무런 관련이 없어도 지켜보는 사람들도 역시 긴장하게 된다. 이런 때일수록 일의 경중(輕重)을 잘 살펴서 대응해야 한다.
술값 빚 정도는 별 것 아닌 심상(尋常)한 것으로 여겼던 두보(杜甫). 그의 말대로 어차피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거늘 심상한 일에 목숨을 거는 일은 없어야겠다. 심상(尋常)치 않게 돌아가는 시간들 사이로 가는 봄날이 너무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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