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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회풍조 때문에 많은 선비들은 점차 은거를 정치무대에 오를 수 있는 일종의 첩경(捷徑), 즉 지름길로 생각하게 되었으며, 의도적으로 심산유곡을 택해 은거생활을 하면서 지방정부의 천거나 조정의 부름으로 벼슬길에 오르기만 바라고 있었다.
당시에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숨어 사는 은자(隱者)에 대하여 명리에 초연하고 학문이 높은 고매한 선비로 여기는 풍조가 있었고 또 실제로 조정에서는 그러한 은자를 초빙하여 관리로 등용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은거생활은 당나라 때에 이르러 무수한 선비와 지식인들이 출세를 위해 선택하는 좋은 방법으로 성행하게 되었다.
진사(進士) 시험에 급제한 노장용(盧藏用)도 쉽게 임용되지 않아 몹시 초조한 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의 머리에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떠올리며 은거를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일부러 장안(長安) 부근에 있는 명산으로 도사들이 은거하는 곳으로 유명한 종남산(終南山)으로 가서 은둔하면서 기회를 엿보기로 했다. 과연 노장용도 은자(隱者)로 행세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명성을 얻게 되었고, 마침내 뜻한 바대로 조정의 권유에 못이기는 체 하며 나아가 좌습유(左拾遺)라는 관직에 임명되었다.
당시 종남산에는 사마승정(司馬承幀)이라는 도사(道士)가 은거하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진정한 은자로 명성이 높아 조정에서 여러 차례 등용하려 하였으나 매번 그 제의를 사양하였다. 한번은 사마승정이 또 황제의 부름을 받아 하산하였다가 관직을 사양하고 장안에 며칠 머문 뒤 종남산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노장용이 그를 배웅하여 성 밖까지 나왔다가 멀리 보이는 종남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종남산은 참으로 영험한 산입니다.” 그러자 사마승정은 대답했다.
“내가 보기에는 벼슬길로 가는 지름길일 뿐이오(以僕視之仕宦之捷徑耳).”
이 말을 듣고 노장용은 매우 부끄러워하였다.
‘첩경(捷徑)’이란 지름길 또는 어떤 일에 이르기 쉬운 가장 빠른 방법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서, 어떤 목적이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빠른 수단을 지칭한다. 여기서 유래한 ‘종남첩경(終南捷徑)’이라는 말은 편법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풍자하는 말로서 출세의 지름길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되고 있다. 즉, 종남첩경이란 몸은 강호에 있으나 뜻은 조정에 가 있는 은사들의 행태를 일컫는 말이다.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송(宋)나라에 은사(隱士)라고 자처하는 주옹(周顒)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북산(北山, 지금의 남경 종산(鐘山))에 은거하다가 나중에 남제(南齊)의 조정에 출사(出仕)해 회계(會稽)군 해염(海鹽) 현령을 지냈다. 주옹이 임기를 마치고 다시 종산으로 돌아와 은거하려고 하자, 평소 주옹의 출사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던 친구 공치규(孔稚圭, 447~501)가〈북산이문(北山移文)〉 이라는 글을 지어 다음과 같이 그의 변신을 조롱했다.
竊吹草堂 은자가 아니면서 거짓으로 초당에 살았고
濫巾北岳 북악에서 은자들이 쓰는 두건을 함부로 쓰고 다녔네.
…(中略)…
請廻俗士駕 청컨대 속된 선비는 말머리를 돌려라.
爲君謝逋客 그대를 위해 거짓된 은둔자는 사양하노라.
수준 미달의 인물이 은사(隱士)인 체 하며 명예를 훔치는 행위를 일컫는 말로 쓰는 ‘절취(竊吹)’는 ‘악기 부는 행위를 훔친다’는 뜻으로 거짓된 행위로 명성을 훔치는 것을 이르는 말로서, 악기를 불지도 못하면서 악사로 행세하며 왕과 세상을 속인 남곽처사(南郭處士)의 고사에서 유래한다. 건(巾)은 은자들이 쓰는 두건으로서 ‘남건(濫巾)’은 실상은 은자가 아니면서 출세를 노리고 가식적으로 은자처럼 두건을 쓰고 돌아다녔다는 뜻으로 ‘절취(竊吹)’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국시대 제나라 선왕은 우(竽 : 피리의 일종, 큰 생황이라고도 한다)라는 악기의 합주 듣기를 좋아했다. 보통 연주할 때 한꺼번에 300명이 합주를 했다(齊宣王使人吹竽 必三百人).
당시 초야에 은거하던 남곽처사(南郭處士)라는 선비가 있었다. 그는 우를 연주할 실력도 별 것 아니면서 선왕을 찾아와 자신을 합주단에 끼워달라고 요청했다. 선왕은 매우 기뻐하며 남곽처사에게 수백 명 분에 해당하는 높은 급료를 주고 합주대의 일원으로 추가했다(南郭處士 請爲王吹竽 宣王說之 凜食以數百人). 그는 합주할 때 연주하는 시늉만 하고는 자기 실력을 속이고 악사로서의 꽤 그럴싸한 대우를 누리며 살았다.
세월이 흘러 선왕이 죽고, 그의 아들 민왕이 등극했다. 공교롭게도 민왕은 아버지 선왕과는 달리 합주를 싫어하고 악사들이 각자 나 홀로 연주하는 것을 듣기를 좋아했다. 남곽처사는 난처해졌다. 더 이상 흉내 내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마침내 남곽처사가 독주할 차례가 왔다. 남곽처사는 연주 직전에 몰래 궁궐을 빠져나와 멀리 달아나고 말았다. 여기에서 유래한 ‘남취(濫吹)’라는 고사는 능력이 없는 자가 능력이 있는 것처럼 꾸미는 것을 뜻하며 실력이 없는 자가 높은 자리를 차지함을 비유한 말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다를 바가 없다. 여전히 실력이 없으면서도 적당한 기회를 봐가며 능력 있는 무리에 끼어들어 같은 부류인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학력 위조사건이나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터져 나오는 예술인들의 입선비리, 유명인사의 동향이나 동문으로 행세하면서 권력의 핵심에 가까이 가고 싶어 하는 사람 등과 같이, 출세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300명이나 함께 피리를 부는데 한 명의 남곽처사가 끼어들었다고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게다가 겉은 화려하고 잔뜩 번지르하니 알아낼 방법이 없다.
최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청정 경영’에 대한 소신과 ‘인사 쇄신’ 의지를 밝히고 ‘부정 척결’을 강하게 주문하고 나섰다. 대통령도 우리 사회의 부정과 부패지수가 한심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개탄했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이런 행태가 만연하게 된 이유는 그 자리에 보직된 책임자 개개인의 능력을 분명하게 가릴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투명하지 못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시스템 때문에 사건이 하나씩 터질 때마다 우리 사회의 도처에 광범위하게 숨어 사는 이런 남곽처사와 같은 부류들의 단면을 확인하곤 한다. 한 대기업의 이런 움직임을 반면교사로 삼아 정부는 더 늦기 전에 사회 전반에 대한 정화운동을 벌여나가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출세(出世)’를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 출세란 바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을 말하는데 누구나 남의 윗자리에 올라 세상을 호령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또는 가문을 빛내기 위해 예로부터 사람은 나면서부터 부모로부터 숙명적으로 부여받는 하나의 임무이기도 했다.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숨어 정직하게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생해 살아가는 수많은 남곽처사(南郭處士)들을 몰아낼 그날은 언제쯤이나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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