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
하지만 KAIST 이사회는 “학내 여론이 점점 악화되는데도 불구하고 총장 개인의 독선 때문에 소통이 부족하다”면서 해임을 결정했다. 이른 바 ‘소통의 리더십’이 도마에 오른 것이다.
연말 대선이 다가오면서 정치판도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저마다 대선주자로서 출사표를 던지는 모양새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말은 역시 ‘소통의 리더십’이다.
특이한 점은 저마다 그동안 자신이 국민과 소통해온 정치인이었음을 강조하면서, 현 정부와 상대 주자들은 아집과 독선의 이미지로 국민과 소통이 잘 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말 그런가? 그러나 이들의 말을 곰곰이 새겨보면, 저들 스스로 그동안 국민의 여론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당리당략을 위해 정치를 해왔음을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니 참으로 가소롭고 어이가 없다.
전국시대 제(齊)나라는 7웅 가운데서도 강국에 속했다. 일찍이 춘추시대 초기인 기원전 7세기에 관중의 보필을 받은 환공(桓公)이 나라의 기틀을 탄탄히 다진 이래 제나라는 줄곧 강대국으로 군림해왔지만, 위왕(威王, B.C 359~B.C 329)이 즉위할 즈음에는 이미 국력이 많이 기울어 있었다.
위왕이 즉위하자 신하들은 다투어 왕을 칭송하며 듣기 좋은 소리만 늘어놓았다. 선왕에게 늘 해왔던 대로 새로운 군주에게도 아부를 한 것이다. 위왕은 원래 상당히 총명한 군주였는데 선왕 때부터 아부를 일삼아온 측근들에게 둘러싸여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점점 총기를 잃고 판단력이 무디어져 갔다. 이렇게 정무를 돌보지 않은 무기력한 상황이 즉위 후 무려 9년이나 흐르는 동안 제나라는 강대국은커녕 나라의 안위(安危)를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살벌한 경쟁이 대세였던 전국시대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위왕의 태도는 나라의 안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어느 날 추기(鄒忌)라는 자가 거문고를 들고 위왕을 위해 거문고를 연주하겠노라고 하면서 만나기를 청했다. 위왕은 워낙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호기심을 느끼며 연주를 부탁했다. 하지만 추기는 거문고를 안고 뜯는 흉내만 낼 뿐 연주를 하지 않았다.
위왕은 왜 연주를 시작하지 않느냐며 재촉했다. 추기는 자세를 잡아야 한다며 뜸을 들였다. 답답한 위왕이 또 재촉하자 추기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음악을 좀 알아야 한다면서 음악에 대해 장황설을 늘어놓았다. 위왕은 짜증을 냈다. 그제야 추기는 거문고를 내려놓고 말했다.
“그런 왕께서는 어째서 제나라라는 거문고를 9년 동안이나 연주하지 않고 뜸만 들이고 계십니까?”
위왕은 추기의 말뜻을 알아챘다. 위왕은 마침내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났다면서 추기를 재상으로 발탁하여 개혁 정치에 시동을 걸었다.
추기는 키가 크고 외모도 준수하여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의 잘생긴 용모에 스스로 감탄을 하곤 했다고 한다. 당시 제나라에서는 서공(徐公)이라는 자가 최고 미남이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그가 어느 날 아내에게 도성 북쪽에 사는 서공과 비교할 때 누가 더 미남이냐고 물었다. 아내는 “당연히 당신이 더 잘생겼지요”라 대답했다. 첩에게 물어도, 자신을 찾아온 손님에게 물어도 돌아오는 답은 마찬가지였다.
며칠 후 서공이 집에 찾아오자 추기는 그를 자세하게 뜯어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자신보다 서공이 훨씬 더 미남이었다. 그날 밤 추기는 잠자리에 누워 ‘이들은 왜 모두 하나같이 내가 더 잘생겼다고 할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부인은 오로지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고, 첩은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며, 손님은 내게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 날 그는 바로 조정으로 들어가 깨달은 바를 위왕에게 말하고,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지금 제나라는 사방 천 리에 120여개 성을 가진 대국입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왕의 귀여움을 먹고사는 왕비와 후궁들은 물론, 왕의 측근으로서 왕께 아부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조정의 신하들치고 왕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또 주변에 있는 사람들치고 왕으로부터 각별한 은혜를 얻으려는 욕심을 품고 있지 않은 자들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왕께서는 어떤 일의 진상을 알고 싶어도 제대로 알기 매우 어렵습니다. 바로 이런 자들 때문에 지금까지 왕의 총명함이 완전히 가려져 정작 바른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위왕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명령을 내렸다.
“내 앞에서 내 과오를 지적하면 상등(上等) 상을 주고, 상소를 올려 간언(諫言)하면 중등(中等) 상을 주고, 저잣거리에서 내 욕을 해서 내 귀에 들어오면 하등(下等) 상을 주겠다.”
신하들은 이 말을 듣자마자 간언을 하려고 다투어 입궐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궁궐의 문 앞과 뜰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붐비는 바람에 마치 시장이 열린 것 같았다. 몇 개월이 지난 뒤에도 간언하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주변에 있는 나라들도 이 소문을 듣고 제나라 위왕을 알현하기 위해 찾아왔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나자 위왕의 잘못을 지적하는 간언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위왕은 자신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충실히 귀를 기울여 즉시 잘못을 바로잡았기 때문이다.
‘대문 앞과 뜰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마치 시장(市場)과 같다’는 뜻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많음을 비유하는 이른 바 ‘문정약시(門庭若市)’라는 고사성어의 유래이다.《전국책(戰國策) 의〈제책(齊策)〉에 실려 있다. 오늘날에는 주로 ‘문전성시(門前成市)’라고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 사회 전반에 걸쳐 ‘소통의 리더십’이 화제다. 2006년 7월 취임 후 테뉴어(정년보장) 심사를 강화해 교수 철밥통을 깨면서 일약 대학 개혁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서 총장이 6년 만에 강제로 축출된 이유는 뭘까? ‘개혁에 저항하는 집단의 반발’인가, 아니면 ‘독선과 소통의 부재를 질타하는 불통의 리더십이 가져온 파행의 결과’인가.
시대가 변화면서 사회상도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카리스마 넘치는 독선적인 리더십이 필요했지만, 오늘날에는 달라진 세상의 흐름을 반영하는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리더십, 즉 ‘소통(communication)의 리더십’을 필요로 하고 있다. 따라서 복잡한 사회 속에서 다양한 계층과 격의 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소통의 리더십’은 오늘날 리더가 갖추어야 할 필수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언제나 당연히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내는 리더십을 우리 사회에 요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리더가 변하지 않는 게 문제다.
‘진정한 리더는 노력하고 섬기는 자’라는 말이 있다. 오늘날의 리더는 늘 노력하는 자이고, 남을 섬기며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공적인 영역에서 지위가 높을수록 그 지위의 기반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데 있다.
세종대왕은 백성에게 닥치는 좋지 않은 일들과 정책 실패의 원인을 다른데 돌리지 않고, 언제나 스스로에게 두면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으로 신하와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 세종이 펼친 정치의 바탕에는 ‘소통의 리더십’이 있었던 것이다. 세종은 재임기간 동안 총 1,898회의 경연(經筵)을 하면서 신하들과 끊임없이 학문과 국정을 논의했다.
월 평균 5회에 달할 정도로 자주 경연을 열었는데 때로는 밤이 늦도록 심한 논쟁도 서슴치 않았다. 이렇듯 세종은 경연을 통해 신하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백성들의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리더십을 넘어 조직구성원들로 하여금 리더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하는 카리스마는 물론, 조직변화의 필요성을 감지하고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는 변혁적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을 차세대 리더십으로 주문하고 있다.
초(楚)나라의 대부 섭공(葉公)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고, 멀리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오.(近者說 遠者來)”
나아가, 공자는 “그 몸이 올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일이 이뤄지지만, 그 몸이 바르지 못하면 아무리 명령해도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고 했다. 이는 곧, 모름지기 정치를 제대로 하는 첩경은 백성으로 하여금 믿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이다. 그래서 공자는 일갈한다. ‘백성이 믿지 않으면 정치는 성립될 수 없다(民戊申不立),’라고. 공자가 가르치는 ‘믿음’은 바로 백성들과의 ‘소통’인 것이다.
오늘날 리더의 몸가짐과 언행 등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다시피 하는 상황에서 리더의 자기 수양과 성찰을 통한 적극적이고 진정한 소통(疏通)의 자세는 과거 어느 때보다 훨씬 더 중요해졌다.
‘초보는 큰 그림만 보지만 대가(大家)는 작고 섬세한 것으로 승부를 건다.’라는 말이 있다. 적어도 오늘날 스스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려는 욕심을 내는 리더라면 큰 그림만 강조하는 초보 리더의 수준을 넘어,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비전과 믿음을 주면서 사회통합을 위한 작고 섬세한 기본적인 부분에 승부를 걸어야 할 것이다. 추기와 같은 신하가 보기 힘들어진 요즈음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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