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
대법관 출신인 김영란 권익위원장이 추진한 일명 ‘김영란 법’은 공직자의 대가성 없는 금품 수수를 처벌할 수 있고, 제3자를 통한 부정 청탁 행위도 엄격하게 금지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공직자에게 사적인 이해관계가 개입될 수 있는 직무 수행을 금지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처벌 대상이 되는 부패 행위의 범위가 형법 등 현행 부패방지 관련법이 금지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넓다.
현행 형법으로는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은 금품 수수나 금품이 오가지 않은 청탁은 처벌하기 어렵다. 김영란 권익위원장은 “청탁을 하지 말자는 캠페인 같은 법, 청탁 받은 공무원에게 거절할 수 있는 명분을 주자는 법”이라고 설명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는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축을 함께 만들어낸 한민족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준 ‘기적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단기간의 고도성장은 그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부정부패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는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척결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매년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CPI)에서 올해 우리나라는 10점 만점에 5.4점으로 180개국 중 43위였다. 2010년 39위에서 4단계나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는 하위권인 27위에 머물렀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많은 부패행위 중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공직자들의 부패다. 관직을 이용하고 동원하는 부패부터 근절해야만 사회 전체가 달라지고 청렴해질 수 있다. 모범이 돼야 할 공직사회의 부패가 심하니 사회 전체의 청렴도가 어떨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입법예고된 일명 ‘김영란 법’에 비상한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런 가운데 공천을 미끼로 40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양경숙(51세) ‘라디오 21’ 전 대표의 행적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야당 원내대표의 관련설이 증폭되면서 사람들은 ‘그러면 그렇지’라는 자조 섞인 푸념을 하며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공직자와 정치인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과 관련된 비리와 부정부패가 드러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분노와 허탈함을 안겨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지 돈의 액수가 서민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크다는 것과 거기에 연루된 사람들의 면면(面面) 때문만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 정치권과 공직사회에 존경받을만한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라는 물음에 자신 있게 ‘있다’라고 대답할 수 없는 허탈함 때문이리라.
정치인은 우리 손으로 뽑아놓은 사람들이고 공직자는 우리 국민이 임명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이미 성공한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때는 먼저 가족과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처신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그 본분을 망각하고 오히려 자신이 지닌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려 한다면 누가 그를 존경할 것이며 그냥 두고만 보려 하겠는가?
제(齊)나라 사람 중에 부인과 첩 하나를 두고 사는 자가 있었다. 그는 특별히 하는 일이 없는데도 밖에 나가면 반드시 술과 고기를 배부르게 먹은 후에 돌아오곤 했다. 이상하게 여긴 부인이 매일 같이 음식을 준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그때마다 그는 모두 부귀한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았다고 대답하곤 했다.
어느 날 부인이 그 첩에게 말했다.
“남편이 나가기만 하면 매일 어김없이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은 후에 돌아오는데, 그 음식을 준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모두 다 부귀한 자들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일찍이 출세한 자가 우리 집에 드나든 적이 없으니 이상한 일이 아닌가? 내 장차 남편이 어디에 가서 누구에게 대접을 받는지 가는 곳을 한 번 알아보리라.”
이튿날 부인은 일찍 집을 나서는 남편의 뒤를 몰래 따라갔다. 하루 종일 여기저기 두루 나라 안을 돌아다니는데도 남편과 마주치는 사람이 서로 인사를 나누기는커녕 함께 서서 말을 나누는 자도 없었다. 마침내 해가 질 무렵이 되자 남편은 동쪽 외곽에 있는 공동묘지에 이르렀다. 남편은 제사를 지내는 사람에게 가서 그 남은 음식을 얻어먹고 배부르지 않으면 또 제사를 지내는 묘소를 찾아 가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가 매일 배불리 먹고 만족하는 방법이었다.
부인이 먼저 돌아와 그 첩에게 이르며 말하기를, “남편이라는 사람은 평생 동안 우러러 보며 존경해야 하는데 오늘 보니 이런 꼴이었다.” 하며 탄식했다. 그리고 그 첩과 더불어 남편을 헐뜯으며 뜰 가운데서 마주 앉아 서로 붙잡고 울었다. 이런 사실을 알리 없는 남편은 늦은 밤에 으스대며 밖으로부터 돌아와 부인과 첩에게 “내 오늘도 부귀한 자들로부터 대접을 잘 받았소,”하고 거드름을 피며 교만하게 굴었다.
《맹자(孟子)》〈이루장(離婁章) 하(下)〉에 나오는 고사성어 ‘번간지식(墦間之食)’의 유래이다. 맹자는 여기에서 ‘세상 사람들이 부(富)와 귀(貴), 그리고 이익과 출세를 얻는 방법에서 그 처첩이 부끄러워하지 않고 서로 탄식하며 울지 않을 수 있는 것이 거의 드물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 뒤로는 부끄러운 짓을 하면서도 앞에서는 자신을 공적을 부풀리며 자랑하는 정치인과 공직자들의 처신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의 손으로 뽑아놓고 우리의 권력으로 임명한 공직자들의 처신을 두고 우리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고 서로 탄식하지 않도록 하는 깨끗하고 투명한 사회는 역시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유토피아일까?
어느 날 미국, 러시아, 인도의 지도자가 모여 신(神)에게 물었다. “언제쯤이면 우리나라에서 부정부패가 사라질까요?” 신은 어두운 표정으로 러시아는 25년, 미국은 족히 100년이 걸려야 부정부패가 끝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럼 우리나라는요?” 인도 총리의 질문을 받은 신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글쎄, 내가 그때까지 살 수나 있으려나?”
이 우스개는 부정부패가 극심한 오늘날 인도의 현실을 풍자한다. 또한 부정부패가 동서양을 넘어 보편적이라는 사실도 알려준다. 사람이 사는 곳엔 부정부패는 필연적이라고 체념하는 분위기 때문일까? 그래서 이제는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거나 치졸한 비리로 감옥에 갔다는 정치인들과 공직자들의 소식은 더 이상 새삼스런 뉴스가 아닐 정도로 흔해져 버렸다.
일명 ‘김영란 법’을 두고 공직사회와 국회 등 힘 있는 기관들의 ‘은밀한’ 저항은 여전하다. “기존 형사법 체계와 충돌하는 부분이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느니, “취지는 이해하지만 대가성 여부와 관계없이 금품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형벌을 가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국민권익위원회가 연내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더라도 통과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공직사회의 어떤 저항이나 반대도 명분이 없다. 다만 ‘부정한 청탁’과 ‘정당한 민원’의 구분이 불분명하다거나 부정 청탁 신고 등 사후처리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은 보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인정과 미풍양속을 내세워 ‘명절 떡값’이라는 뇌물을 받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대가성이 없다는 명분을 내세워 법망을 빠져 나가는 부패공직자들을 숱하게 보아왔다. 이 법안을 두고 못마땅한 사람들이 “잘사는 친구가, 성공한 기업인 친구가 평소 주는 돈도 포괄적 뇌물이냐?”고 물었을 때, 김 위원장이 “그 잘 사는 친구와 성공한 기업인이 못살고 관직이 없는 친구에게도 평소 돈을 줍니까?”하고 반문한 것은 정말 멋진 한 방이자 우문현답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일명 ‘김영란 법’의 제정과 시행은 우리 민주화의 역사에서 6·29선언이 큰 분수령이 된 것처럼 공직사회 청렴화와 반(反) 부패의 역사에 큰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며 지지하고 있다.
이 법이 시행되면 공직사회의 뿌리 깊은 부패 행위나 부정 청탁은 발붙일 틈이 없어질 것이다. 낮에는 하릴없이 쏘다니다가 어두워지면 먹을 곳을 찾아다니며 자기 배만 채우면서 살아가는 무능한 남편을 둔 부인의 탄식이 남의 일만은 아니다. 이제는 보다 실효성과 강제성이 담보된 법으로 투명한 공직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곧 공직사회가 늘 부르짖고 있는 ‘21세기를 주도하는 세계 속의 대한민국’으로 가기 위한 첫걸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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