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흔히 가르치지 못할 사람도 없고, 배우지 못할 사람도 없다고 한다. 사제(師弟) 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선생은 있어도 스승이 없다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스승과 제자의 만남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예로부터 인생에서 평생 잊지 못할 스승을 만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 행운아요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진정한 스승과 참다운 제자 그리고 사제 간의 애틋한 정(情)을 담은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으로 회자되고 있다.
조선 최고의 석학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전라남도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했다. 청운의 뜻을 품고 관직에 나아갔지만 그 원대한 꿈을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멀리 강진으로 유배되어 변변히 머물 곳도 없는 곳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유배 기간 동안 수많은 저작들을 쏟아내면서 제자들을 키워냈다. 비록 자신이 가졌던 청운의 꿈은 접어야 했지만 제자들을 통하여 그 뜻을 다시 세상에 펼친 것이다.
다산은 머물던 동문 밖 주막집에 작은 서당을 열었고, 그곳에서 열다섯 살 소년 황상(黃裳, 1788~1870)을 만난다. 제자 황상이 스승인 다산을 회상하며 적은 글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문사(文史)를 닦도록 권하였는데, 나는 머뭇머뭇 부끄러운 표정으로 ‘저는 세 가지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둔(鈍)하고, 둘째로 막혀(滯) 있고, 셋째로 미욱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선생님께서 이르시기를 ‘공부하는 자에게 큰 병통이 세 가지 있는데 너는 하나도 해당되는 것이 없구나. 첫째 외우기를 빨리하면 그 폐단은 소홀한 데 있으며, 둘째 글짓기에 빠르면 그 폐단은 부실한 데 있고, 이해를 빨리하면 그 폐단은 거친 데 있게 된다. 무릇 둔하면서 파고드는 자는 그 구멍이 넓어지며, 막혔다가 소통이 되면 그 흐름이 툭 트이고, 미욱한 것을 닦아 내면 그 빛이 윤택하게 되는 법이다. 파는 것을 어떻게 하느냐? 부지런하면 되고, 소통은 어떻게 하느냐? 부지런하면 되고, 닦기는 어떻게 하느냐? 역시 부지런하면 된다. 이 부지런함을 어떻게 다할 수 있느냐? 마음가짐을 확고히 하는 것이니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나이 열다섯 살 아동으로 관례(冠禮)를 올리지 않았는데, 선생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뼛속 깊이 새겨 행여 잊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로부터 61년이나 지났지만, 지금도 가끔 책을 놓고 쟁기를 잡으면서도 계속해서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시골 아전의 아들이던 황상은 ‘부지런 하고 부지런 하고 부지런 하라’는 스승의 ‘삼근계(三勤戒)’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평생 공부에 매진했고, 관 뚜껑을 덮을 때까지 한마음으로 공부하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고 오로지 들이파고, 막힌 것을 틔우며, 갈고 또 닦았다. 다산은 신분적인 차이를 넘어 인간적인 격려와 함께 스승으로서 참다운 삶의 깨우침을 주는 말로 어린 제자를 이끌었고, 황상은 스승의 가르침을 인생의 길잡이로 삼고 자신의 삶을 설계하면서 실천하였다. 스승과 제자가 인간적 신뢰를 바탕으로 유대를 맺고 서로의 내면을 소통한 것이다. 모두가 출세를 위해 공부할 때, 오직 황상은 스승이 입버릇처럼 일러주신 ‘유인(幽人,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조용한 곳에서 숨어사는 사람)의 삶’을 실천했다.
송(宋) 나라 때 진사였던 양시(楊時)와 유초(游酢)는 정문(程門)의 4대제자이다. 그들은 처음에 대유학자 정호(程顥)의 제자였는데, 스승이 세상을 떠난 뒤에 그의 동생인 정이를 스승으로 섬기고자 찾아갔다. 그들이 정이의 집에 이르렀을 때, 마침 정이는 눈을 감고 정좌하여 명상에 잠겨 있었다. 두 사람은 공손하게 밖에 서서 조용히 기다렸다. 한참 뒤에 명상을 마친 정이는 그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너희가 계속 거기에 있었느냐? 날이 저물었다 그만 돌아가 쉬어라!” 라고 말하면서 문을 나서니 문밖에는 눈이 한 자(尺)나 쌓여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날 때까지 두 사람은 스승을 뵙고자 말없이 서서 기다렸던 것이다. 후에 양시는 용도각(龍圖閣), 즉, 왕실도서관 학사의 관리로 복건성(福建省)에 학문을 도입해 ‘복건성 학문’의 시조가 되었고, 유초는 여러 관직을 역임하며 후덕하게 일을 처리하여 부임하는 곳마다 백성들이 그를 부모님 대하듯이 존경하며 우러러 모셨다.
후세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의 일을 두고 ‘정문입설(程門立雪)’이라 하며 칭송했다. 즉, ‘정씨 집 문 앞에 서서 눈을 맞다’라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을 존경함 또는 간절히 배움을 구하는 자세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서《송사(宋史)》〈양시전(楊時傳)〉에 실려 있다.
어느 날, 안회(顔回)가 공자에게 말했다.
“선생님께서 걸으시면 저도 걷고, 선생님께서 빨리 걸으시면 저도 빨리 걷고, 선생님께서 뛰시면 저도 뜁니다(夫子步亦步, 夫子趨亦趨, 夫子馳亦馳). 선생님께서 먼지도 일지 않을 정도로 빨리 달려 버리시면 저는 뒤에서 눈만 뻔히 뜨고 바라볼 뿐입니다.”
안회는 공자의 수제자로서 평소 공자가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신뢰하고, 남과 친하려 하지 않는데도 사람들이 친하게 따르고, 벼슬도 권력도 없지만 백성들이 자연스럽게 따르는 점을 늘 부러워했다. 그는 스승을 모범으로 삼아 모든 행동을 본받으려 노력하였으나, 아무리 해도 자신이 도저히 미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공자에게 가르침을 구한 것이다.
공자는 제자를 가르칠 때 제자의 능력과 처지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가르쳤다고 한다. 공자가 말하는 기본 정신은 독서와 공부 그리고 이를 삶에 실천하는 것이다. 즉, ‘널리 배워 예(禮)로 요약할 것’과 ‘배워서 그것을 세상에 활용할 것’을 말한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는 공자의 가르침은 공부하는 자세에 대한 총체적 해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유래된 ‘역보역추(亦步亦趨)’는 제자가 스승의 발자국을 따른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고사성어이다. 이 고사(故事)는《장자》의〈전자방(田子方)〉편에 실려 있다.
제자는 스승의 뜻과 가르침을 배우고 받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학문과 실천에 힘써 자신을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제자가 스승의 삶을 배워 새로운 인생의 길로 나아간 경우도 있고, 스승의 가르침과 삶을 평생 인생의 길라잡이로 삼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스승이 좋은 가르침과 엄청난 지식을 전해주어도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한다. 스스로 노력하는 제자보다 더 좋은 제자는 없다.
《순자(荀子)》의〈권학편(勸學篇)〉에 ‘배움이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므로 중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學不可以已)고 가르치고 있다. 푸른색이 쪽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고, 얼음이 물에서 나왔으나 물보다 더 차듯이(靑取之於藍而靑於藍 氷水爲之而寒於水), 면학을 계속하면 스승을 능가하는 학문의 깊이를 가진 제자도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다는 뜻인 ‘청출어람(靑出於藍)’이 나왔다.
북위(北魏)의 이밀(李謐)은 어려서 공번(孔璠)을 스승으로 삼아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학문의 발전 속도가 매우 빨라 열심히 노력한 결과 몇 년이 지나자 스승의 학문을 능가하게 되었다. 공번은 이제 그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도리어 그를 스승으로 삼기를 청했다. 그러자, 공번의 친구들은 그의 용기를 높이 사고 또 훌륭한 제자를 두었다는 뜻에서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고 칭찬했다. 이 이야기는 지금도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비유하는 사례로 자주 회자되는 고사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장차 커서 입신출세를 통하여 가문을 빛내고 후세에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주문을 받고 자랐다. 특히 남자의 경우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입신출세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적인 의무요 과제였다. 그래서 열심히 책을 가까이 하라고 끊임없이 주문을 받아왔다.
요즘 세상에 다산(茶山)처럼 ‘과골삼천(踝骨三穿)’ 즉, 복사뼈가 세 번이나 구멍이 날 정도로 노력하라고 권장할 수 없지만, 그의 정신만이라도 배워야 한다. 참된 공부를 하려면 부지런히 많은 책을 읽고 부지런히 글을 써야 한다. 스승이 가르치는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이를 통해 세상을 바꾸어나가는 실천 단계로 승화시키는 것이야말로 공부를 하는 자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실천이 따라야 하는데 그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학생은 있지만 제자는 없다’는 탄식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존경과 사랑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진정한 스승도 진정한 제자도 드문 요즈음이다. 어느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부지런함이 성공의 열쇠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시대가 되었다. 다만 자신에게 황상과 같은 우직함이 없다는 게 문제이다. 둔하고, 막히고, 미욱하다고 고백하는 황상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진정한 참 제자로서의 모습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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