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
개회사에서 회장은 사람 된 자의 책임을 의논하여 분명히 할 것과, 사람의 행위를 들어서 옳고 그름을 의논할 것, 그리고 요즘 세상 사람들 가운데 인간으로서의 자격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조사할 것이라는 세 가지 문제를 토의하여 동물과 사람과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 사람들이 여전히 악한 행위를 일삼으며 반성하지 않으면 ‘사람’이라는 이름을 빼앗고, ‘이등 마귀’라는 이름을 갖게 할 것을 하늘에 아뢰겠다고 선포한다. 이어 동물들이 하나씩 등장하여 저마다 인간사회의 온갖 부도덕성과 비합리성, 모순들을 낱낱이 드러내어 자신보다 못한 인간을 비판하고 비웃는 연설을 한다.
맨 먼저 연미복을 입은 까마귀는 연단으로 나와, 어린 까마귀도 제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봉양하는 자신들의 ‘효성(反哺之孝)’을 강조하며, 부모에게 불효하는 인간들을 비판한다. 여우는 호랑이의 권세를 빌어 위세를 부리는 자신(狐假虎威)을 내세워 인간의 간교함을 비판한다. 개구리는 자신들처럼 견문이 좁고 세상 형편에 어두우면서도 마치 세상을 다 아는 것(井蛙語海)처럼 허세를 부리는 소견 좁은 인간을 풍자한다. 벌(蜂)은 겉으로는 선량한 척하나 속으로는 상대를 해치려 한다(口蜜腹劍)는 말로 인간의 양면성을 비판한다. 게(蟹)는 인간이 지조와 절개도 없이 온갖 짓을 다하여 마치 창자 없는 사람과 같이 행동한다면서, 사람을 ‘무장공자(無腸公子)’라고 불러야 한다고 역설한다. 파리는 먹을 것을 보면 여러 친구들을 청하여 먹는 자신들의 의리(營營之極)를 강조하며, 자신의 이(利)를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욕심 많은 인간들을 비난한다. 호랑이는 가혹한 정치와 권력의 남용이 산 속의 호랑이보다 더 포악하고 무섭다(苛政猛於虎)는 말로 인간의 잔혹성을 신랄하게 비난한다. 원앙새는 화목한 부부의 도리(雙去雙來)를 들어, 인간으로서의 윤리를 저버리는 더럽고 추악한 사례들을 이야기하고 강단을 내려온다.
1908년 안국선(安國善)이 발표한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이라는 작품의 줄거리다. 여러 동물들을 등장시켜 ‘인간사회와 인간’이란 논제를 통해 인간사회의 부조리와 현실을 비판, 풍자하는 우화소설이다. 이 소설에서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한마디로 금수보다 못한 세상이라고 치부하고 있다. 개화 풍조에 편승하여 혼미를 거듭하고 있던 당시 사회 각층의 의식구조와 지배층의 학정으로 인하여 온갖 비리가 횡행하던 양반 관료의 부패상에 대하여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내각 구성을 위한 인사청문회가 또 파행을 거듭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되었다. 어느 정부든 매번 내각을 구성할 때마다 국회는 정부가 추천한 인물에 대해 그가 그 자리에 맞는 인물인가를 놓고 격론을 벌이곤 한다. 청문회 과정에서 자신이 살아온 과거의 행적이 낱낱이 파헤쳐지고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들이 돌이킬 수 없는 비수가 되어 되돌아오기도 한다. 과거행적을 치밀하게 조사하여 조목조목을 들어가며 그 자리에 오를 수 없는 이유를 준엄하게 공격하는 모습이 너무도 박절하고 잔인하다. 그 누구도 변론이 자유롭지 못한 자리에 오르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어떤 이는 탈 없이 살아서 임명되고 어떤 이는 상처투성이가 되어 낙마한다. 또, 어떤 이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기도 한다. 입신출세의 상징이 되는 자리에 오르려다 오히려 부적절한 과거의 행적이 드러나고 그것이 빌미가 되어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매번 청문회를 보면서 문득 《금수회의록》의 내용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는 무얼까? 추천된 인물들의 과거행적이 밝혀지면서, 그동안 잘 포장되었던 얼굴 이면에 가려진 일그러진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 우리가 느끼는 충격과 허탈감 그리고 저절로 나오는 탄식을 가눌 수 없기 때문이다. 진짜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진짜가 아니더라는 상실감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기 일쑤다. 지도자가 될 만한 사람을 찾기가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보다 더 어렵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이제는 저자거리에서 늘 떠도는 상식처럼 되어버렸다.
‘사이비(似而非)’라는 말이 있다. 겉으로는 진짜와 같아 보이나 실제로는 전혀 다르거나 아닌 것을 이르는 말로, 《맹자(孟子)》의 〈진심편(盡心篇)〉과 《논어(論語)》의 〈양화편(陽貨篇)〉에 나오는 말이다.
맹자에게 만장(萬章)이란 제자가 물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 ‘저 사람은 훌륭하다’고 칭찬한다면 그는 어디를 가더라도 훌륭한 사람으로 칭찬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공자(孔子)께서는 그를 가리켜 ‘덕(德)을 해치는 도둑’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요?” 맹자가 대답했다.
“그를 비난하려고 해도 특별히 꼬집어 비난할 게 없고 공격하려고 해도 공격할 특별한 구실이 없으나, 그런 사람일수록 더러운 세속에 아첨하고 합류하느니라. 또 집에 있을 때는 충성심과 신의가 있는 척하지만, 밖에 나가 행동할 때는 청렴결백한 척하지.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고 그 자신도 자기 처신이 옳다고 생각하느니라.”
맹자가 말을 이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사이비’한 것(似而非者)을 미워한다. 말 잘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은 바른 것을 어지럽힐까봐 걱정스러워서, 말 많은 것을 미워하는 것은 신의를 어지럽힐까봐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또, ‘향원(鄕原)’을 미워하는 것은 그가 덕을 어지럽힐까봐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느냐?”
여기서 말하는 향원이란 고을 안에서 점잖다고 평가되는 인물이다. 머리에 든 지식도 없으면서 많이 아는 척, 어질고 점잖은 척 위장술에 능하여 겉으로 보기에는 훌륭한 사람으로 보여 사회적 영향력도 상당하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 결점을 감추는 데 서툴다고 공자는 지적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신보다 어리석기 때문에 자신의 결점이 영원히 드러나지 않을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이야말로 사회를 어지럽히는 매우 위험한 존재임을 공자는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 자천타천으로 이 사회를 이끌어 갈 재목감이라 하여 청문회에 오르내리는 수많은 인물 가운데 우리들로 하여금 ‘사이비’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지 않은 인물이 과연 몇이나 있었던가? 잘못된 일들을 가리기 위해 더 많은 거짓말을 서슴없이 해대는 파렴치한 행동에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잊는다. 국민들을 바보로 여기지 않는다면 어찌 그런 언행이 나올 수 있을까?
원리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일수록 사이비가 활개를 치는 법이다. 그들은 대부분 올바른 길을 걷지 않고 시류에 일시적으로 영합하며,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거나 실력을 과대포장하고 감언이설로 사람의 판단을 혼란시키는 사회의 암적인 존재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분명한 것은 무대에 오른 후보자들에게 그렇게도 절박하고 잔인하게 몰아붙이는 이들조차도 우리들은 결코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뜰 앞에 나서니 계절은 바야흐로 농익은 여름이다. 오늘날 금수회의장에 모여든 수많은 동물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온갖 비판과 경고의 목소리에 어느 누가 자유로울 수 있으리오. 느티나무 위에 높이 앉은 까마귀도, 개울가의 개구리조차도 보기가 부끄러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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