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
유방과 천하를 다투다가 해하(垓下)에서 사면초가의 수세에 몰린 항우는 20여 기밖에 남지 않은 기마병을 이끌고 장강 기슭의 오강(烏江)에 이르렀다. 이때 오강의 정장(亭長)이 배를 강 언덕에 대고 기다리다가 항우에게 말했다. “강동(江東)이 비록 작다고 하나 땅이 사방 천 리요, 백성이 수십만 명에 이르니 그곳 또한 족히 훗날을 도모할 만합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빨리 건너십시오. 지금 저에게만 배가 있으니 한나라 군사가 이곳으로 온다 해도 강을 건너지는 못 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항우가 웃으면서 말했다. “하늘이 나를 버리는데 이 강을 건너서 무엇을 하겠는가? 내가 강동을 떠나 서쪽으로 갈 때 강동의 젊은이 8,000명과 함께 하였는데, 설령 강동의 부모형제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왕으로 삼아 준다고 한들 내가 무슨 면목(面目)으로 그들을 대하겠는가? 또,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해도 내 양심에 어찌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는 정장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후덕한 사람이로구나. 나는 지난 5년 동안 이 말을 탔는데, 이 말에 대적할 것이 없었으며 하루에도 천 리를 달렸다. 내 차마 이 말을 죽일 수 없어 그대에게 주겠노라.”
항우는 부하들로 하여금 모두 말에서 내려 손에 짧은 무기만을 들게 하고 뒤를 추격해온 한나라 군대와 마주섰다. 이때, 한나라 군사 중에 옛날 그의 수하 장수였던 여마동(呂馬東)이 있음을 보고는 “내가 들으니 한나라 왕이 나의 머리를 천금과 만호의 값으로 사려 한다고 한다. 내 그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리라” 하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면목(面目)이란 얼굴과 눈이라는 뜻으로, 체면을 가리키는 말로 염치와 같은 의미로 쓴다. 그러므로 면목이 없다는 말은 스스로 자기 잘못을 뉘우치면서 사람다움의 도리를 지켜 나간다는 뜻이다.
최근 비극적인 세월호 사건을 두고 우리 사회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민심이 갈라지고 있다. 여야 의원들이 제출한 “세월호 특별법”에 도대체 무슨 내용이 담겨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법안을 다루는 국회의원은 물론, 언론조차도 상세한 내용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으니 알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많은 국민들은 “세월호 특별법”이 단순히 사고의 진상규명을 위한 법으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 여야의원들이 낸 특별법에는 진상규명보다 더 많은 부분이 세월호 희생자와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내용이다. 만약 국민들이 그 내용을 제대로 안다면 결코 특별법에 대해 무조건 서명하거나 찬성하지는 못할 것이다.
현재 세월호 특별법은 여야가 각각 법안을 따로 발의한 상태이지만 그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새정치민주연합이 발의한 내용으로서, 희생자 전원을 ‘의사상자(義死傷者)’로 지정하는 내용과 피해자들에 대한 대학특례 그리고 평생지원과 혜택에 관한 내용이다.
‘의사상자’란 직무 외의 행위로서 타인의 생명, 신체 또는 재산의 급박한 위해를 구제하다가 사망하거나 신체의 부상을 입은 사람을 말한다. 국가는 사회정의 구현에 이바지하기 위해 ‘의사상자 예우에 관한 법률’을 제정, 의사상자와 그 가족 및 유족에 대하여 필요한 보상(보상금, 의료급여, 교육보호, 장제보호, 취업보호) 등 국가적 예우를 하고 있다.
희생자와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은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결 같을 것이다. 문제는 사실관계에 있어서의 객관성이다. 남을 위해 희생했다는 것이 밝혀져야만 지정될 수 있는 지위가 ‘의사상자’이다. 분명한 것은 세월호 희생자들은 안타까운 사고의 희생자일 뿐 어느 누구를 위해 희생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기본과 상식은 물론, 법과 원칙을 무시하고 정치적인 손익판단을 통해 세월호 희생자와 피해자들을 전원 의사상자로 지정하려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법안에 이러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도 찬성할 국민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또, 특별법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해 TV수신료, 수도요금, 전기요금, 전화요금 등의 공공요금 감면과 상속세 및 양도세 등 각종 조세감면 혜택과, 세월호 피해자에 대한 근로자 치유휴직, 유가족들의 직계비속과 형제자매들에 대한 교육비 지원, 아이돌봄 지원, 간병서비스, 화물 등 물적 피해 지원,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 금융거래 관련 협조 요청 등을 담고 있다.
일각에서 모든 책임을 정부와 여당으로 돌리며 여론을 호도하는 것도 문제이다. 정부의 책임은 정치적인 책임일 뿐, 직접적인 책임은 어디까지나 세월호 선박회사인 청해진 해운과 유병언 일가라는 점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구조 활동과 사후처리가 미흡했던 것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던 안전 불감증에서 초래된 시스템의 문제이며, 이런 비판에 대해서는 역대 어느 정권도 자유롭지 못하다.
만약 세월호 유가족들이 정말 희생자 전원에 대한 의사자 지정이 자신들의 생각과는 다른 의견이라면, 당장 새정치민주연합이 제출한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수정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사회적, 제도적 장치를 요구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우리는 세월호 희생자와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기본과 상식을 지키라는 것이고 정치적인 목적이나 의도를 배제하고 다른 사고 희생자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수준에서 지원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수년 전 우리 사회를 안타깝게 만들었던 대구지하철참사를 비롯해 수많은 사건들도 세월호 참사나 똑같은 사고이고 안타까운 희생이었다.
그런데 왜 어떤 사고는 일회성 지원으로 끝나고 어떤 사고는 평생지원을 해줘야 하는가? 어떤 일이 있어도 사회적 형평성이 유지되어야만 사회가 공정하게 바로 설 수 있지 않겠는가?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에 따라 특별법을 만들려는 정치인들로 인해 국민과 유가족들 간의 불신이 조장되고 갈등이 빗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최소한의 ‘염치’는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염치는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마음”이다. 공자는 ‘염치(廉恥)를 아는 것’을 정치가가 지녀야 할 기본 덕목의 하나로 삼았다. 통일된 왕조가 등장하고 법에 입각한 관료적 통치를 하면서 염치는 자연스럽게 관료에 대한 청렴결백의 요구로 바뀌었다. 즉, 예의가 중시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명리(名利)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이익 앞에 사람들은 염치를 돌아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끊임없는 자기 수양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절제하고, 일상생활에서는 기본적으로 예의를 지키는 것과 염치를 아는지 모르는지를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삼았다. 선비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예의염치가 없으면 선비로서 대접받지 못하고 사람으로 취급도 받지 못했다.
채근담에 “탐욕스러운 자는 차가운 연못에서 물결이 끓어오르는 듯하여 산 속에서도 고요함을 보지 못하고, 마음이 비어 있는 이는 무더위 속에서도 서늘한 기운이 일어난 듯하여 저자거리에 있어도 시끄러움을 모른다(欲其中者 波沸寒潭 山林 不見其寂 虛其中者 凉生酷暑 朝市 不知其喧)”고 했다. 노자도 “까치발 하고 있는 자는 똑바로 서 있을 수 없고, 가랑이를 벌리고 발걸음을 크게 내딛는 자는 제대로 걸어갈 수 없으며, 스스로 잘난 척 뽐내는 자는 우두머리가 될 수 없다(企者不立 跨者不行 自矜者不長)”고 했다.
지난 날 빈곤해결을 위한 경제성장이 사회적 당면과제로 등장하면서 이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정치는 실종되었고, 힘들게 이루어낸 민주화된 사회는 염치의 대중적 몰락을 동반해 왔다. 오늘날 ‘세월호 특별법’을 두고 벌이는 사회적 갈등은 바로 마음속의 온갖 탐욕 때문에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사람들과, 까치발로 서서 가랑이를 벌리고 걸으며 잘난 척 거드름을 피우는 염치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우리 사회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예의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는, 정말로 상식 밖의 면목 없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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