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
‘가을전어’는 어느덧 가을철 명물이 된 듯 전국이 떠들썩하다. ‘가을전어에는 참깨가 서 말’이라느니, ‘집 나간 며느리도 전어 굽는 냄새를 맡고 돌아온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가을 전어가 유명한 이유는 가을이 되면 겨울을 나기 위해 지방을 축적해 살이 오르고 유난히 고소한 맛을 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이에 못지않은 이야기로 ‘순갱로회(蒓羹鱸膾)’라는 고사가 널리 전해진다. 진(晉)나라의 재상이었던 장한(張翰)이 고향의 ‘순채국(蒓羹)과 농어회(鱸膾)’가 먹고 싶다며 벼슬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고사로서,《진서(晉書)》〈장한전(張翰傳)〉과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실려 있다.
진나라의 제왕 사마경(司馬冏)이 정권을 잡았을 때, 재상으로 임명된 장한은 난세의 어지러움을 한탄하면서 벼슬에서 물러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고향 사람 고영(顧榮)을 만나 심경을 토로했다.
“세상이 시끄러운데 재난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천하에 명성이 있는 자가 물러나기를 원한다 해도 정말로 어렵구먼. 나는 본래 산림 속의 사람으로서 세상에 바라는 것이 없다네. 그런데 자네는 미리 대비하기를 잘하고 생각을 깊이한 뒤에 지혜를 발휘하기 때문에 뛰어난 사람이라 할 수 있네.” 고영이 그의 손을 잡고 슬퍼하며 말했다.
“나 역시 그대와 남산의 고사리를 뜯고 삼강의 물을 마시기를 원할 뿐이라네.”
이윽고 장한은 가을바람이 불자 고향의 줄풀나물(菰菜), 순채국과 농어회를 떠올리며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인생살이라는 것이 마음에 맞는 것을 하는 것이 소중한데, 어찌하여 굳이 관직에 얽매여 고향을 떠나 수천 리 길을 떠돌아다니면서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을 바라겠는가?(人生貴得適志 何能羈宦數千里以要名爵)”라고 하고서, 그날로 말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후 그는 유유자적하며 인생을 즐기다 57살로 세상을 떠났다. 이 고사와 관련된 ‘순갱노회(蓴羹鱸膾)’라는 말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정을 이를 때 쓰는 성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천하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가장 어진 행동으로 칭송해 왔다.
주나라 건국에 큰 역할을 담당한 강태공이 그 공을 인정받아 주 무왕으로부터 제(齊) 땅에 봉해지니 제나라는 이때부터 제후국이 되었다. 그 후 강태공은 제나라를 강대국으로 키운 후 자신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자, 제나라를 떠나 다시 주나라로 돌아왔다. 나라를 일으키고 천하를 다스리는 권력을 가졌으며 백성들로부터 한없는 존경을 받으면서도 마지막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묻히려고 했던 그의 이런 행동을 두고 사람들은 ‘인(仁)’이라 여기고 감동을 받았다. 후세 사람들은《예기(禮記)》에 이 사실을 기록하여 그를 칭송했다. 주나라에서는 그의 5세손에 이르도록 천자의 예로 장례를 치러주었다.
어느 시대, 어떤 상황을 막론하고 인간은 출세를 위해 고향을 떠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크고 작은 성패(成敗)를 경험한 후에 세상살이의 무상(無常)함을 깨닫는 순간, 누구나 다시 고향을 그리워하며 다시 돌아갈 기회를 엿보게 되는 것이다.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제가 살던 굴을 향해 돌린다는 ‘수구초심(首丘初心)’처럼, 죽음을 앞두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이라 할 것이다.
북쪽에서 온 말은 북풍이 불면 귀를 쫑긋 세우고(胡馬依北風),
월나라 새는 남쪽 가지에만 둥지를 트누나(越鳥巢南枝).
중국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 양(梁)나라의 소통(蕭統)이 지은 《문선(文選)》에 실려 있는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 가운데, 첫 번째 시〈行行重行行〉에 나오는 구절이다. 오랑캐 땅에서 잡혀온 말은 북풍만 불어와도 귀를 쫑긋 세워 고향냄새를 그리워하고, 남쪽 월나라 새는 비록 남의 땅에 있어도 남쪽을 향한 나뭇가지에만 둥지를 튼다고 한다. 누가 지은 지 알 수는 없으나, 생이별하고 떠난 임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호마(胡馬)와 월조(越鳥)를 빌어 노래한 시로서, 고향을 그리는 안타까운 마음을 이렇게 표현해내고 있다. 누구나 고향이 그리우면 문득 고개를 들어 고향을 바라보게 되고, 부모형제가 보고 싶으면 눈을 지그시 감고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여행을 하다가 낯선 곳을 지나치면서 보는 창밖 풍경은 비록 나에게는 별 것 아닌 듯 여기지만,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은 애틋한 고향으로 마음속에 소중하게 새겨져 있는 법이다.
사람은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 한다. 고향은 나의 과거가 있는 곳이며, 정이 든 곳으로 공간, 시간, 마음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곳이다. 따라서 그리움, 잊을 수 없음, 타향에서 곧장 갈 수 없는 안타까움이라는 면은 공통적이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것이 생물학적인 탄생이라며, 고향이라는 장소에서 태어난 것은 지리학적인 탄생이다. 내가 태어난 시간과 장소가 동일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어머니와 고향은 하나가 된다. 고향, 그리고 어머니. 그 곳에는 어릴 적 그립고 소중한 추억들이 있고 기다림과 만남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다.
당(唐)나라 고종 때 명신 적인걸(狄仁傑)은 간신 내준신(來俊臣)의 모함으로 투옥되었다가 지방 병주(幷州)로 좌천되었다. 어느 날 적인걸이 타이항산(太行山)에 올라 주위를 돌아보니 한 조각 흰구름이 두둥실 떠 있었다. 그는 옆에 있는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 구름너머 먼 곳에 부모님이 계신데, 이렇게 바라만 뵐 뿐 찾아가 뵙지 못하여 슬프기 한이 없다.”고 말하면서, 오랫동안 구름을 바라보며 처연해 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그의 효심을 일러 ‘망운지정(望雲之情)’이라며 기렸다.
망운지정이란 구름을 바라보며 그리워한다는 뜻으로, 객지에 나온 자식이 고향의 부모를 그리는 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후일 그의 평판이 높다는 말을 들은 측천무후는 다시 그를 재상으로 등용하였고, 재상이 된 후 부패한 정치를 바로잡아 측천무후의 신임을 얻었다.《구당서(舊唐書)》에 보이는 내용이다.
요즈음 아이들을 ‘아파트 키즈’라 부른다. 고향이 없는 아이들이라는 뜻이다. ‘동구밖 과수원길’이 무슨 말인지, ‘원두막’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이다. 고개 넘어 다니던 등굣길의 추억도, 타이어표 검정고무신의 가슴 시린 기억도 이해하지 못한다. 눈을 감으면 드넓은 동해바다와 ‘푸른 하늘 은하수’가 끝없이 펼쳐진 밤하늘이 떠오르는 아버지의 추억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들이다. 훗날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때, 그들이 그리워하는 ‘고향’이라는 게 있을까? 있다면 과연 어떤 모습의 ‘고향’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출세하여 고향을 찾는, 이른 바 ‘금의환향(錦衣還鄕)’을 꿈꾼다. 그러나 굳이 출세한 모습이 아니라 하더라도, 정든 고향의 맛을 찾아 미련 없이 벼슬길을 버린 장한(張翰)의 고사처럼, 이번 가을 고향 찾는 길은 가족과 어머니와 함께 한 자리에서 우리 고향의 명물인 ‘울진대게’와 ‘고포미역’의 진한 국물을 다시 느끼고 싶다.
방금 창밖의 느티나무 위에 날아와 앉은 한 무리 까치 떼가 어쩐지 반갑게 느껴진다. 혹시나 어제 밤에 고향에서 날아온 새들이 아닐까 해서 말이다. 끝없이 펼쳐진 고향의 바다가 그리운 오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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