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古典) 속에 길이 있다

기사입력 2015.02.2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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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예로부터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할 때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하여 4가지 덕목을 중시했다. 신언서판이란 당나라 때 관리를 등용하는 시험에서 인물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던 몸(體貌), 말씨(言辯), 글씨(筆跡), 판단력(文理)의 네 가지를 말한다.

신(身)이란, 사람의 풍채와 용모를 뜻하는 말로 바로 첫인상이다.  부드러운 미소, 밝은 표정, 은은한 눈빛은 ‘얼굴로 보여주는 이력서’나 다름없다. 아무리 신분이 높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첫눈에 풍채와 용모가 뛰어나지 못했을 경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되기 쉽다. 그래서 신은 풍위(豊偉), 즉 풍모와 품위가 요구되었다.

언(言)이란, 사람이 말로 구사하는 용어와 표현력을 이르는 말이다. 사람을 처음 대했을 때 아무리 뜻이 깊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도 말에 조리가 없고, 말이 분명하지 못했을 경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되기 쉽다. 제대로 된 발성과 또렷한 말씨는 리더십의 첫 단추이기도 하다. 말을 잘못해서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구설수라고 하거니와 그 정도가 심하면 화(禍)를 당할 수도 있다. 말은 그만큼 무섭다.

서(書)는, 그 사람의 지식과 지혜 수준을 가늠하는 것으로 문(文)이라고도 했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인문적 교양을 품고 있는지를 글씨와 문장력으로 시험하였다.

판(判)이란,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알아내는 판단력(文理), 즉 상황판단 능력을 말한다. 경중완급과 전후좌우를 잘 살펴 치우치지 않게 결론을 내리며, 거기에 적절한 제목을 붙이고 일목요연하게 기술하는 지로 등급을 판정하였다. 사람이 아무리 체모(體貌)가 뛰어나고, 말을 잘하고, 글씨에 능해도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능력이 없으면, 그 인물됨이 출중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이, 나라에서는 과거시험과 면접을 통해 이상 네 가지 조건을 이를 모두 갖춘 사람을 으뜸으로 하고 거기에 덕행, 재능, 노효(勞效)의 실적을 감안한 다음에 관리로 등용을 결정하였다. 따라서 선비사회에서는 이러한 완성된 인물이 되기 위해 스스로 부단하게 노력해왔고 후학들에게는 끊임없이 인성을 제대로 갖춘 인물이 되기를 요구하며 담금질을 계속해왔다. 그래서 항상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나태한 순간이 올 때마다 스스로 경계하기 위해 좋은 글귀를 앉는 자리 오른쪽에 두고 암송하며 담금질을 계속했다. 이 글귀를 바로 좌우명(座右銘)이라 했다.

'일을 할 때는 반드시 처음에 잘 도모하고, 말을 할 때는 반드시 행함을 고려한다(作事必謀始出言必顧行)‘
무슨 일이나 말이든 함부로 하지 말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말로서, 송(宋)나라 유학자 장사숙(張思叔)의 좌우명 가운데 한 가지이다. 장사숙은 중국 송(宋)나라 때의 대유학자 정이(程頤)의 제자로, 항상 14가지 좌우명을 마음에 두고 실천할 수 있도록 힘썼다.

“모든 말은 반드시 성실하고 신의 있게 하고(凡語必忠信), 모든 행동은 반드시 돈독하고 공손하게 한다(凡行必篤敬). 음식은 반드시 삼가고 절제하여 먹으며(飮食必愼節), 글씨는 반드시 해서로 정확하게 쓴다(字畵必楷正). 용모는 반드시 단정하게 하고(容貌必端莊), 의관은 반드시 엄숙하게 가지런하게 한다(衣冠必肅整). 걸음걸이는 반드시 편안하고 정중하게 하고(步履必安詳), 머무는 곳은 반드시 바르고 고요하게 한다(居處必正靜).
일을 할 때는 반드시 처음에 잘 도모하고(作事必謀始), 말을 할 때는 반드시 행함을 고려한다(出言必顧行). 떳떳한 덕은 반드시 지키고(常德必固持), 승낙할 때는 반드시 신중하게 응한다(然諾必重應). 선한 것을 보기를 나에게서 나온 것처럼 하고(見善如己出), 악한 것을 보기를 내 몸의 병과 같이 한다(見惡如己病). 이 열 네 가지는 내가 모두 깊이 살피지 못하여 글로 적어 자리 한 구석에 붙여 놓고 아침저녁으로 보고 경계로 삼으려 한다.”
그의 좌우명은《송명신언행록(宋名臣言行錄)》에 실려 있다. 또한 모든 사람이 귀감으로 삼을 만한 것이어서 옛날 선비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수신서(修身書)인 《소학(小學)》〈가언(嘉言)〉편과 《명심보감(明心寶鑑)》〈입교(立敎)〉편에도 실려 있다.

이와 같이, 선비들이 반성의 자료로 삼는 격언이나 경구(警句)였던 좌우명은 원래는 문장(文章)이 아니라 술독을 사용했다.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하나였던 제(齊)나라 환공이 죽자, 제나라는 그를 기리는 묘당(廟堂)을 세우고 각종 제기(祭器)를 진열해 놓았는데 그 중에 이상한 술독이 한 개 포함되어 있었다. 보통의 다른 술 항아리와는 달리 술이 들어있지 않고 텅 비어있을 때는 기울어져 있다가, 술을 반쯤 담으면 바로 섰다가, 독에 술을 가득 채우면 다시 엎어지는 술독이었다.

하루는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그 묘당을 찾았는데 박식했던 공자도 진열된 제기 가운데 그 술독만은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담당 관리를 불러 그 용도를 듣고 나서야 그는 무릎을 쳤다.

“아! 저것이 그 옛날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항상 의자 오른쪽에 두고 가득 차는 것을 경계했다고 하던 바로 그 술독이로구나!”
그는 제자들에게 물을 길어와 그 술독을 채워보도록 했다. 과연 비스듬히 세워져 있던 술독이 물이 차오름에 따라 바로 서더니만 가득 채우려고 하자 다시 처음에 기울어져 있던 대로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공자가 말했다.

“너희들은 보았느냐? 공부도 이와 같은 것이다. 다 배웠다고 교만을 부리는 자는 반드시 화를 당하게 되는 법이니라.” 집에 돌아온 그는 제자들에게 시켜 똑같은 술독을 만들어 항상 의자 오른쪽에 두고는 스스로를 가다듬었다고 한다.

자리 오른쪽에 두고 항상 자신을 돌아보는 경계의 상징으로 삼는다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이렇게 하는 내용을 담은 글귀를 ‘좌우명’이라고 처음으로 이름 지은 사람한 사람은 후한(後漢) 말 학자 최원(崔瑗)이다. 그 역시 공자처럼 자기가 공부하는 자리 오른쪽에 자신의 행실을 돌아보는 글귀를 적어 놓고 매일 반성의 기회로 삼았는데, 양(梁)나라 소명태자(昭明太子)가 지은《문선(文選)》에 실려 있는 그의 좌우명은 다음과 같다.
‘남의 허물을 말하지 말고, 나의 장점을 말하지 말라(無道人之短 無說己之長). 남에게 베풀었으면 생각하지 말고, 은혜를 입었으면 잊지를 말라(施人愼勿念 受施愼勿忘). 어리석음을 지켜 성인의 착함을 지니고(守愚聖所臧), 말을 삼가고(愼言), 음식을 절제하여(節飮食), 만족할 줄 알아 상서롭지 못함을 이겨 내어라(知足勝不祥).’
신언서판 능력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단기 속성 학원에서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짧은 기간에 몇 십 권의 책을 읽었다고 지혜가 쑥쑥 자라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두고두고 쌓아온 인격적 내공이 신언서판으로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것이다. 뜻을 세우고 자세를 갖추고 제대로 배워야 한다.

“청동을 거울로 삼으면 의관을 바르게 할 수 있고(以銅爲鏡 可以正衣冠), 옛것을 거울로 삼으면 흥망을 알 수 있으며(以古爲鏡 可知興替),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득실을 밝힐 수 있다(以人爲鏡可以明得失).” 유명한 당(唐) 태종의 거울론이다. 옛 것을 거울로 삼는 데는 예로부터 고전(古典)을 가까이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는 뜻으로 자리 오른쪽에 좋은 글귀 하나라도 걸어 놓자. 그리고 고전(古典)을 가까이 하라. 단언하건대, 그 속에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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