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놀이

기사입력 2015.03.3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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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중국 춘추시대의 초(楚)나라는 여러 제후국 가운데 강대국에 속하였다. 초나라 장왕(莊王)은 신주(申舟)라는 신하를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파견하였는데, 제나라로 가려면 송(宋)나라 땅을 거쳐야만 하였다. 당시에는 사신이 다른 나라의 영토를 지나가려면 미리 그 나라에 알리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장왕은 자기 나라의 국력이 강하다는 것을 믿고 이 절차를 무시하였다.

송나라에서는 초나라 장왕의 행위가 자신들을 모욕하는 것이라 여기고 송나라 영토에 무단으로 진입한 신주를 붙잡아 죽였다. 이 소식을 들은 장왕은 격노하여 즉시 군대를 일으켜 송나라를 공격하였으나, 미리 대비하고 있던 송나라의 저항이 예상외로 완강하여 전쟁이 길어지게 되었다. 대치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아무래도 군사력이 약했던 송나라에서는 이웃 진(晉)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대부(大夫) 악영제를 사신으로 보냈다.

진나라 경공(景公)이 구원병을 보낼 뜻을 내비치자, 대부 백종(伯宗)이 나서서 말했다.
“옛말에 이르기를, 말채찍이 길기는 하지만 말의 배에까지 미칠 수는 없다고 하였습니다(古人有言曰, 雖鞭之長, 不及馬腹). 지금은 하늘이 초나라를 돕고 있는 때이니 싸워서는 안 됩니다. 비록 우리 진나라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하늘을 거스를 수야 있겠습니까?”

결국 진나라는 대부 해양(解揚)을 송나라로 보내 말로만 위로하였을 뿐, 구원병을 보내지는 않았다. 이 고사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선공(宣公) 15년〉 조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편장막급(鞭長莫及)’이라는 말은, ‘능력이 미치지 못하거나 능력이 있더라도 모든 면을 주도면밀하게 고려하여 대처하기는 어려운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어린이집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지난 3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이에 대해 학부모단체 등에서 강력 반발하고 비난 여론이 일자 여야 지도부는 사과의 뜻과 함께 법안 재추진 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이 같은 정치권의 행태는 무책임의 극치이며, 정치권이 과연 아동학대 근절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하게 한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헌법기관으로 양심에 따라 법안에 찬반 의사를 밝힐 권한이 있다. 그러나 한동안 유보돼 온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가 재추진된 것은 지난 1월 인천 어린이집 아동학대 동영상 공개 이후다. 보육교사의 인권 침해 우려보다 어린이와 학부모 보호가 우선돼야 하며, 이를 위해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가 최소한의 대책이라는 데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데 따른 것이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은 이런 국민의 뜻을 받들었어야 했다. 특히 이번 법안 부결로 어린이집 원장과 보육교사 인성교육 강화 등 다른 아동학대 방지 대책마저 모조리 허공에 떠 버린 것은 더 큰 문제다. 일각에서는 선거 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어린이집 관련 단체의 로비 혹은 압력에 국회의원이 눈치보기를 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즉, 표를 의식해 눈치만 보다가 도와주는 척 시늉만 했다는 비난이 들끓고 있다. 입만 열면 ‘국리민복’을 외치는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범순인(范純仁)은 송나라 때의 명재상 범중엄(范仲淹)의 아들로, 주변사람들이 그의 행적을 물을 때마다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평생 배운 것은 오직 충성과 용서(忠恕)라는 두 글자뿐이니, 일생토록 써도 다함이 없다. 조정에서 임금을 섬길 때나, 동료들을 대할 때나, 종족(宗族)과 친목을 다질 때나 나는 잠시도 충서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또, 자식과 형제들에게 훈계할 때는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남을 나무라는 데는 총명하고, 아무리 총명한 사람일지라도 자신을 용서하는 데는 어리석다. 너희들은 항상 남을 나무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나무라고,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도록 하여라. 이렇게 하면 성현의 지위에 이르지 못함을 근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人雖至愚, 責人則明, 雖有聰明, 恕己則昏. 爾曹但常以責人之心責己, 恕己之心恕人, 不患不到聖賢地位也).”라고 말하였다.

그의 말에서 유래한 ‘지우책인명(至愚責人明)’이란 바로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도 남을 나무라는 데는 총명하다’라는 뜻으로, 자신의 허물은 덮어두고 남의 탓만 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오늘날 회자되고 있다.

이 고사는 송나라 때 주자(朱子)가 엮은《송명신언행록(宋名臣言行錄)》에 실려 있으며, 우리나라의 수신서(修身書)인《명심보감(明心寶鑑)》〈존심(存心)〉편에도 실려 있다. 우리나라 속담 가운데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라는 말과 의미가 비슷하다.

춘추시대 노(魯)나라 애공(哀公) 때 맹무백(孟武伯)이라는 대신이 있었다. 맹무백은 항상 잘난 체하고 말이 많은데다가 자신이 한 말을 잘 지키지 않는 신용 없는 사람이었으므로, 애공은 평소 그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 반대로 곽중(郭重)은 행실이 바르고 약속을 잘 지켜서 애공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이 때문에 맹무백은 평소 곽중을 늘 시기하고 질투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애공이 연회를 베풀어 여러 신하들을 초대하였는데, 그 자리에 맹무백과 곽중 두 사람 모두 참석하였다. 곽중은 체구가 매우 뚱뚱했기 때문에 평소 맹무백으로부터 놀림을 많이 당해왔는데, 그날도 맹무백은 그에게 모욕을 줄 생각으로 곽중을 향해 큰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평소 무엇을 먹고 지내길래 그렇게 살이 찌셨소?”하고 물었다. 곽중이 대답하려고 하자 옆에서 그 말을 들은 애공이 끼어들어 곽중을 대신하여 대답하였다.
 “평소 식언을 하도 많이 하니 살이 찌지 않을 수 있겠소?(是食言多矣, 能無肥乎)”.
애공의 말을 들은 맹무백은 애공이 자신을 빗대어 말한 것임을 알고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이 고사는 《춘추좌씨전》의 〈애공(哀公) 25년〉 조(條)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식언이비(食言而肥) ’라는 말은 ‘식언으로 살이 찌다’라는 뜻으로, ‘자신이 한 말이나 약속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고 신용 없이 거짓말이나 흰소리를 늘어놓는 사람 또는 그러한 행위’를 풍자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서울대 신입생 입학식에서 했던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의 축사가 온라인상에서 널리 퍼지면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김 교수는 축사에서 드라마 ‘미생’에 나온 ‘사업놀이’라는 용어를 예로 들면서, 우리 사회의 리더들이 진짜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고 그저 열심히 하는 흉내만 내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사회가 심각한 교착상태에 빠져 있음을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지적하였다.

“정치인들은 나라의 분열을 걱정한다면서 실은 자기 재선을 위해 국민을 이념으로 지역으로 갈라놓고 갈등을 이용하는 ‘정파놀이’를, 관료들은 공익을 도모한다면서 실은 자기 예산과 영향력을 확대시키기 위해 나라의 시스템을 비효율로 몰아넣는 ‘규제놀이’를, 대기업은 국가경제에 이바지한다면서 ‘단가후려치기’, ‘사람과 기술 빼앗기’ 등 각종 불공정한 관행으로 시장을 황폐화시키는 ‘갑질놀이’를, 일부 고용주들은 취업난을 악용해 ‘열정페이’다 뭐다 해서 청년 구직자의 노동을 약탈하는 ‘착취놀이’를, 저를 비롯한 교수들은 이러한 현실적 문제를 수수방관하며 자기 연구실적만 채우는 ‘논문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런 문제를 풀어나갈 리더십이 나라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며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 바, 오늘날 스스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과연 자기 자신들이 지금 정말 국리민복을 위해 성실하게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행동하는 것일까? 저들이 국민을 우습게 알고 저렇듯 ‘사업놀이’에 재미 들어 하면서 나날이 살이 찌는 모습을 우리는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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