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乾達)들의 립서비스

기사입력 2016.01.0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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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만날 앉아서 립서비스만 하고, 경제 걱정만 하고, 민생이 어렵다고 하고, 자기 할 일은 안 하고, 이거는 말이 안 된다.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국회가 다른 이유를 들어 경제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직무유기이자 국민에 대한 도전이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경제 활성화와 관련된 주요 법안을 처리하지 않고 당파적 이익에만 매달려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허송세월하고 있는 국회를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던진 말이다.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거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을 일러 ‘건달(乾達)’이라고 한다. 즉,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려는 의욕 없이 무위도식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이들은 사회가 용인하는 수단과 방법으로 정직하게 살아가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허풍과 속임수로 자기 이득을 노리면서 힘들이지 않고 살아가려 한다. 또, 자신이나 자기집단의 이득에 직접 관계가 없는 일에는 무관심하다. 힘으로 폭행하여 남을 괴롭히는 일은 드물지만, 난잡한 욕설과 천박한 언사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곤 한다.

원래 건달이라는 말은 불교의 팔부중(八部衆)의 하나로 음악을 맡은 신, ‘건달바(乾闥波)’에서 유래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널리 전파될 때 의미의 정확성을 잃고 왜곡된 의미의 용어까지 전파하게 되었는데 건달바도 그 중의 하나이다.

입으로만 농사를 짓고 군대를 부리는 것(用兵)을 ‘설경(舌耕)’과 ‘설전(舌戰)’이라고 한다. 오늘날의 용어로 고쳐 이르자면 ‘립서비스’라고 할 것이다. 한비자는 설경과 설전을 일삼는 나라는 금방 망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금 나라 안의 백성 모두 정치를 말하고, 상앙의 《상군서(商君書)》와 관중의 《관자(管子)》를 집집마다 소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나라가 더욱 가난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입으로 농사짓는 자만 많을 뿐, 정작 손에 쟁기나 호미를 잡고 농사를 짓는 자는 적기 때문이다. 나라 안의 백성 모두가 군사를 말하고,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의 병서를 집집마다 소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군사력이 갈수록 약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입으로 용병하는 자만 많을 뿐, 정작 갑옷을 입고 전쟁터로 나가 싸우는 자는 적기 때문이다.”

그의 경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무한복지정책을 남발해 오다가 최근 국가부도 사태를 당한 치프라스의 그리스가 바로 그 증거다. 지출이 수입보다 많으면 이내 곳간이 바닥나고 결국 파산하기 마련이다. 수입원을 마련해 놓지도 않고 복지예산을 자꾸 늘려가려는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뻔하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무책임한 지도층과 공짜 맛을 즐기는 사람들 모두가, 말로만 선심을 뿌려대는 정치인들의 ‘설경’과 ‘설전’에 함몰된 탓이다.

관자는 ‘설경’과 ‘설전’을 극도로 경계했다. 그는 《관자(管子)》 〈치국〉 편‘에서 무엇보다 먼저 백성을 잘살게 만들어야 하는 ‘부민(富民)’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무릇 치국평천하의 길은 반드시 먼저 백성을 잘살게 만드는 ‘필선부민(必先富民)’에서 출발해야 한다. 백성이 잘살게 되면 다스리는 게 쉽지만, 백성이 가난하면 다스리는 것이 어렵다.”

그의 경제사상을 이른바 ‘부민주의’로 요약하는 이유다. 부민은 부국강병의 대전제에 해당한다. 이는 부민이 이뤄져야 부국이 가능하고 부국이 가능해야 강병이 실현된다는 지극히 간단한 이치에 기초해 있다.

공자가 천하유세에 나서면서 위나라에 도착했을 때, 모여든 수많은 사람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그는 수레를 몰고 있는 제자 염구(冉求)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백성이 참으로 많기도 하구나!” 염구가 물었다.
“백성이 이처럼 많으면 어찌해야 합니까?”
“우선 잘살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미 잘살게 되었으면 또 무엇을 해야 합니까?”
“가르쳐야 한다.”

공자사상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선부후교(先富後敎)’ 사상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공자는 생전에 학문과 덕행을 닦은 군자가 천하를 다스리는 새로운 세상이 오는 것을 고대했다. 공자의 학문을 ‘군자학(君子學)’으로 요약하는 이유다. 그가 염구의 질문에 정치를 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백성을 잘살게 만든 후에(富民), 백성을 가르쳐야 한다(敎民)라고 답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부민이 전제되지 않는 한 교민은 성공할 수 없다고 언급한 것으로, 《관자》 〈목민〉편에서 주장한 부민부국 사상과 완전히 일치한다.

“나라에 재물이 많고 풍성하면 먼 곳에 사는 사람도 찾아오고, 땅이 모두 개간되면 백성이 안정된 생업에 종사하며 머물 곳을 찾게 된다. 창고가 가득 차야 백성이 예절을 알고, 입고 먹을 것(衣食)이 풍족해야 영욕(榮辱)을 알게 된다.”

여기서 예절은 곧 예의염치를 말한다. 나라를 온전하게 하는 요체는 예의염치를 아는 것(知禮)에 있고, 그 아는 것의 핵심은 창고를 가득 채우는 것(實倉)에 있다는 것이다. 창고를 가득 채우는 것, 즉 경제대국만이 예의염치를 아는 문화대국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한 것이다.

이렇듯 믿음이 무기나 식량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무릇 윗사람이 되어 백성을 배불리 먹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지켜주기만 하면 백성도 그를 따르며, 부득이한 상황에 이르러서도 차라리 죽을지언정 윗사람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는 평소 윗사람이 그들의 안전과 식량을 충분히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공자가 ‘백성의 믿음(民信)’을 거론한 것은 국가패망의 위기에 직면했을 경우 군주가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여야만 그런 위기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하기 위한 것이다.

구한말 개화사상가 윤치호(尹致昊)는 무위도식을 자랑으로 삼는 조선의 양반들에 대해 ‘자기 손으로 하는 일이라곤 세수하는 것과 밥 먹는 것 뿐’이며, ‘항상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서 남의 동정을 받으려고만 하고 아랫사람에게 물건을 줄 때는 꼭 던져준다.’고 조롱하면서 비판했다. 즉, 이름만 양반일 뿐, 보여주는 행태라고는 건달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건달은 시대에 따라, 사회상황에 따라 그 생태를 달리하고 명칭도 달리해왔다. 정부가 수립되고 정당정치가 시행되자, 정치인이나 정당은 상대편의 기세를 꺾고 자신들이 내세우는 정책을 강행시키기 위해 이들을 고용하여 목적달성의 도구로 썼다. 그들에게 국민의 눈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이렇게 고용된 건달들은 정치권으로부터 이권취득, 범행묵인, 명목적 처벌 등으로 비호를 받았다.

오늘날에 와서는 이들의 폭력을 이용하려는 정치인은 없어졌으나, 대신 그들의 폭력성과 무위도식하는 행태는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 정치인들이 건달의 고용자에서 이제는 당사자로 변신하여 오히려 그들을 뽑아준 국민을 희롱하면서 갖가지 사회악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한심한 것은 이들이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한다면서도 정작 자신들이 하는 행태가 건달들이 하는 짓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4월 총선이 끝난 후에는 제발 다시는 이들의 립서비스를 들을 수 없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슴이 답답해서 창문을 열어젖히니 눈꽃송이 만개한 하얀 앞산이 달려온다. 시절이 하수상함을 아는지, 차가운 기운 속으로 대지(大地)도 점점 꽁꽁 얼어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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