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대구지법 영덕지원 호적협의회 연수

기사입력 2016.08.30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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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대구지방법원(大邱地方法院) 영덕지원(盈德支院) 호적협의회(戶籍協議會)에서 경남 통영군(統營郡) 한산도(閑山島) 제승당(制勝堂)으로 연수를 떠나 기념 촬영한 것이다.
  
날자가 기록되어 있지 않아 정확한 사진 촬영 연도를 알 수 없지만, 인물들의 복색을 살펴보면 1960년대에 촬영된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사진 속 2열 우측에서 다섯 번째에 서 있는 고(故) 황국문(黃菊文)씨가 1960년대 온정면의 임명(任命) 면장(面長)을 역임했던 사실로 미루어볼 때 60년대 초에 촬영된 것으로 거의 확실시된다.
  
황국문씨는 이 사진을 제공한 황지성 백암온천호텔피닉스 회장의 부친으로, 온정면의회(溫井面議會) 의원(議員), 면의회 의장, 온정면 임명 면장과 선출직 면장 등을 역임했던 당대의 유력 인사이다.
사가들은 호적(戶籍)이 율령(律令)이 반포됐던 삼국시대에 처음 시행됐고, 고려시대에는 호적과 가적(家籍)에 속하는 가족과 신분 관계 등을 기록한 공문서로서 호적이라는 명칭이 처음 나타났다고 하지만, 공문서(公文書) 성격의 호적은 일제강점기에 시작됐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일본의 입김으로 한말(韓末)이던 1896년 9월 1일 칙령 61호로 ‘호구조사규칙(戶口調査規則)’이 공포됐고, 같은 해 9월 3일 내부령(內部令) 8호로 ‘호구조사세칙(戶口調査細則)’이 공포됐다.
  
그러나 이때까지의 호적은 대체적인 신분 관계를 반영한 계보(系譜) 체제를 중심으로 작성됐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제대로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1909년 3월에 법률 제6호로 「민적법(民籍法)」이 공포됐다.
  
민적법이 실시되면서 마침내 호적(戶籍)은 호구 조사의 수단이 아니라 집안(家)과 신분을 공시(公示)하거나 증명하는 공문서로 확정되었다.
  
특히 일제는 1894년 갑오개혁 이후의 호구조사 규칙에 따른 호구 조사 자료를 민적법을 제정한 이후에는 민적부(民籍簿)라는 형태로 경찰서 또는 경찰분서급 순사 주재소(巡査 駐在所)에 비치하면서 조선인들을 본격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23년 7월에 제정된 ‘조선호적령(朝鮮戶籍令)’에 따라 호적 업무의 감독권을 법원(法院)에 부여했고, 이를 바탕으로 광복 후인 1949년 9월에 「법원조직법(法院組織法)」이 만들어지면서 지금까지 법원이 호적에 관한 사무를 관장·감독하고 있다.


[울진뉴스]가 2014년 7월호에 소개했던 일제강점기 소화(昭和) 16년(1941년) 호적사무협의회 기념사진
「호적법(戶籍法)」은 구(舊) 법령 정리 사업의 하나로 기존에 시행되던 호적 관련 법령 및 규정 등을 폐지하고 1960년 1월에 제정되어 1995년 12월 9차 개정을 거쳐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총 8장 135조 및 부칙으로 되어 있는 호적법은 호적부의 작성 방법, 호적의 기재 사항과 기재 절차, 출생, 인지(認知), 입양, 파양(罷養), 혼인, 이혼, 친권과 후견, 사망과 실종, 호주 승계, 입적과 복적(復籍), 일가 창설, 분가, 국적의 취득과 상실, 개명, 전적(轉籍)과 취적(就籍)에 관한 신고 방법과 절차, 호적의 정정 방법, 호적 사건에 대한 불복 절차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호적에 관한 사무는 시·구청·읍·면장이 관장하고 여전히 그 업무는 해당 지역의 가정법원이 감독하며, 가정법원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지역은 지방법원장이 호적에 관한 업무를 감독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호적 등록과 수정, 말소 같은 업무는 시·군·구에 소속되어 있는 지방공무원이 담당했다.
  
호적 원본(原本)은 본적이 같은 지역일 경우에는 시·구청, 읍·면 지역일 경우에는 읍·면사무소에 비치하고, 부본(副本)은 해당 지역의 관할 법원에 비치했다.
1960년에 제정된 「호적법(戶籍法)」은 지난 2008년부터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시행되면서 폐지됐다.
  
이에 따라 호적의 모든 기록이 가족관계등록부로 옮겨졌지만, 기존 호적의 기록이 아예 없어진 것이 아니라 제적등본 또는 초본의 형태로 전환되어 시·군·구청·읍·면·동 주민센터 등에서 발급하고 있다.
  
이번호에 소개하는 사진은 호적 사무와 관련해 ‘관장’과 ‘감독’의 형태에 놓여있던 지방법원과 읍·면사무소의 장 또는 직원들이 호적사무협의회를 구성하고, 각종 회의 및 연수의 형식으로 업무 연계의 친밀도를 높여가던 당시 기록 사진으로서의 가치가 뛰어나다. 
  
[울진뉴스]는 지난 2014년 7월호에서 일제강점기인 소화(昭和) 16년(1941년) 울진면사무소 앞에서 호적사무협의회(戶籍事務協議會)에 참석한 행정 공무원과 경찰 등이 기념 촬영한 사진을 소개한 바 있다. 
(사진 제공. 황지성 백암온천호텔피닉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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