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장(更張)을 해야 하는 이유

기사입력 2017.01.2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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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고종 31년(1894) 봄 전라도 고부에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동진강의 수리시설을 이용해서 농사를 짓고 있던 농민들이, 탐관오리인 군수의 가혹한 수탈에 항거하면서 일으킨 작은 사건이 불씨가 되었다. 농민들은 탐관오리의 처벌과 정부의 악법 폐지를 조건으로 내세워 전라도를 휩쓸고 전주성(全州城)을 점거하였다.

이어 동학농민군과 정부군과의 강화가 성립되고 농민들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면서 군국기무처라는 기구를 신설하여 청나라에 대한 전통적인 사대정책을 반대하고 서양과 일본의 문물을 모델로 하는 혁신적인 반봉건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 기구에서는 그 해 연말까지 약 208건에 달하는 개혁안을 만들어 시행할 정도로 의욕적이었다.
이른 바 갑오경장(甲午更張)이라고 부르는 이 개혁은 구질서에 종지부를 찍고 근대국가의 모습을 갖추어 보려는 노력의 발단으로서, 정치·경제·사회 등의 모든 제도에 대한 근대적인 개혁이었다. 갑오개혁은 조선사회에 있어서 근대적인 개혁 요구를 반영한 획기적인 개혁으로서, 일본의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나 청나라 말기의 무술변법(戊戌變法)에 대비되는 우리나라 근대화의 중요한 역사적 기점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약 19개월 동안 지속되어온 갑오개혁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중도에서 좌절되고 말았다. 그 시의성(時宜性)과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추진세력이 일본의 영향력에 의존하여 일본의 군사력을 배후로 삼아 진행되었기 때문에 반일·반침략을 우선시했던 백성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그리고 백성들의 여론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일본의 강요에 따라 움직이는 등, 외세 의존적인 태도 때문에 백성들로부터 지지를 끌어내지 못하고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경장(更張)’이라는 '거문고의 줄을 바꾸어 매다'라는 뜻의 ‘해현경장(解弦更張)’을 줄인 말로, 원래의 의미는 가야금의 느슨해진 줄을 다시 팽팽하게 당겨 음을 조율한다는 뜻이다. 이는 느슨해진 것을 긴장하도록 다시 고치거나 기강이 흐트러진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군사적 제도 등을 기존체제의 틀 속에서 다시 새롭게 개혁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 한(漢)나라 때 무제(武帝)가 널리 인재를 등용하려 하자, 동중서(董仲舒)가 올린 〈현량대책(賢良對策)〉이라는 글에서 유래한 고사성어이다. 이때의 ‘갑오경장(甲午更張)’이라는 명칭도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그동안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국가의 시스템을 개조하자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국민 모두가 총체적으로 안전 불감증에 걸린 상태라는 진단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저마다 갖가지의 방법으로 국가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구조를 바꾸고 사람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고 처방을 내놓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제시하는 처방전의 끝머리에 늘 그 적임자가 바로 자기뿐이라는 데에 이르면 그 속마음을 의심하게 된다.

개혁은 말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법과 제도로 정착돼야 완성된다. 인물의 교체는 그 다음이다. 그러므로 대통령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에 우선 집중하자는 얘기는 너무나 근시안적이고 편협하며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다. 개혁의 화신이나 되는 양 자신이 집권하면 모든 개혁이 다 이뤄질 것처럼 말하는 건 국민을 속이는 궤변에 불과하다. 역대 어느 대통령치고 선거공약에서 국민들에게 무릉도원으로 안내하겠다는 식의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가? 대통령 되고 나서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린 건 모두가 안다. 뒷간 갈 때와 올 때가 다른 법이다.

국가시스템을 개조하는 첩경은 기본과 원칙이 바로 선 나라를 만드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는 정직(正直), 정의(正義), 정도(正道), 즉 3정(三正)의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 이를테면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식의 황금만능주의 인식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한 기본과 원칙은 한낱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국가 개조는 엄정한 국가기강 확립과 공정한 인사제도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이런 기본적인 도덕률도 없는 사람들을 우리는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모시며 살고 있다.

대통령만 책임이 있다고 정치인들 모두 손가락질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국가의 안전을 망라하는 법체계에 문재가 있다고 지적하고 법이 잘못되었으니 지금 당장 법을 고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법을 만든 이들이 누구인가? 잘못된 법이라고 지적하는 그들이 만든 법이 아닌가. 남을 공격하는 데는 이렇게 단합이 잘되는데, 왜 국정을 운영하는 데는 그렇게도 손발이 안 맞을까? 왜 모든 사건들이 우리 정치인들이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자기반성의 목소리를 내고 국민들에게 사죄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가.

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혜문왕은 인상여와 염파라는 신하를 두었다. 대장군 염파는 자신보다 나이도 어린 인상여가 더 높은 지위인 상경(上卿)에 임명된 것에 불만을 품고, “나는 성을 공격하고 들에서 싸워 큰 공을 세웠다. 인상여는 입을 놀린 일밖에 한 일이 없는데 나보다 윗자리에 앉다니. 내 어찌 그런 자 밑에 있을 수 있겠는가. 언제고 그를 만나면 반드시 망신을 주고 말리라.”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이 말을 듣고 나서부터 인상여는 일부러 염파를 피하였다. 그러자 인상여가 염파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염파는 이를 알고 득의양양하였다. 인상여는 이에 대하여 “나는 진나라 왕의 위세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인데, 어찌 염파를 두려워하겠는가? 지금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침범하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염파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두 호랑이가 싸우게 된다면 어느 한 쪽은 다치거나 죽기 마련이다. 내가 염파를 피해 다니는 이유는 나라의 위급함이 먼저이고 사사로운 일은 나중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염파가 이 말을 전해 듣고는 잘못을 깨우쳐 '웃통을 벗고 가시나무를 등에 지고(肉袒負荊)' 인상여를 찾아가 “비천한 놈이 장군의 넓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였으니 벌을 주십시오.”라고 사죄하였다. 인상여는 염파를 환대하였고, 이로부터 두 사람은 생사를 같이하는 '문경지교'를 맺게 되었다. 이 고사는 《사기》의 〈염파인상여열전〉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부형청죄(負荊請罪)는 남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사회적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김영란법을 만들었으나 입법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부분은 빠져버렸다. 정치인들이 권력층과 국회의원, 판·검사, 주요 고위공직자들을 대상에서 빼버린 것이다. 이런 부패방지법이 국가 개조에 무슨 큰 도움이 되겠는가. 그동안 부패의 온상이 되어왔던 지도층이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겠다는 다짐과 자기희생이 없는 법이 무슨 효험이 있겠는가. 가시나무를 등에 지고 국민들에게 죄를 청하는 정치인을 기대하는 건 정말 디개할 수 없는 일이까?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고, 지도자상도 바뀌었다. 개혁입법을 해야 할 골든타임이 흘러가고 있다. 촛불 민심은 나라를 바꾸라는 것이었다. 이제 국회가 화답할 차례다. 공자도《논어》〈위령공편(衛靈公篇)〉에서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이것을 잘못이라 한다(過而不改 是謂過矣)”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허물이 있게 마련이며, 그 허물을 하나하나 고쳐나가 허물을 없게 하는 일이 도리라는 뜻이다. 지금 당장 우리가 제대로 된 경장(更張)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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