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루(鄙陋)한 충성
기사입력 2017.05.0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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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학의 교범’으로 불리는《한비자(韓非子)》의 ‘열 가지 허물’편에 이런 고사가 실려 있다. 정(鄭)나라가 진(晉)나라를 배신하고 초(楚)나라와 동맹을 맺자, 진여공(晉厲公)이 군사를 이끌고 정나라를 쳐들어갔다.
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다급해진 정나라가 초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자, 초공왕(楚共王)은 원병을 보내 진나라 군대와 언릉(鄢陵)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전투가 한창일 때 장군 자반(子反)이 목이 말라 마실 것을 찾았다.
시종 곡양(谷陽)이 술을 한 잔 가져와 바쳤다. 자반이 말했다. “이건 술이 아닌가? 물려라.” 그러자 곡양이 말했다. “술이 아닙니다.” 이에 그는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자반은 평소 술을 무척 좋아했다. 일단 한 잔 들어가면 끝을 봐야 할 만큼 술을 좋아하는 그는 끝내 취해버렸다. 이 전투에서 초나라는 패하고 공왕은 화살에 한쪽 눈을 잃었다.
전열을 가다듬은 초공왕이 역습을 하기 위해 장군 자반을 불렀다. 그러나 술이 덜 깬 그가 “가슴이 아프다”며 출전이 어렵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다급해진 공왕은 말을 몰아 자반의 막사를 직접 찾았다. 막사 안에 술 냄새가 진동하자 공왕은 말없이 되돌아왔다.
공왕이 말했다. “이번 전쟁에서 내가 부상당해 믿을 자는 자반뿐이었다. 그런데 장군으로 전투를 지휘하는 자가 저렇게 취한 것은 스스로 나라의 사직을 망각하고 백성들을 가엾게 여기지 않는 행동이다. 이제 다시 싸울 기력도 없도다.” 그러고는 군대를 철수시키고 환궁했다. 공왕은 자반의 목을 베어 저잣거리에 내걸었다.
한비자는 “곡양이 물 대신에 술을 바친 것은 결코 자반을 미워해서 그런 게 아니다. 그를 충심으로 모셨기 때문이다”고 부연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의 ‘비루한 충성’이 ‘바른 충성’을 해쳐 오히려 상관인 자반을 죽게 만들고 나라를 망하게 했다고 폄하했다. 부하의 잘못된 충성이 빚어낸 참극을 지적한 것이다.
조조가 임종에 이르자 사마의에게 아들 조비와 사직을 부탁했다. 이를 계기로 위(魏)나라는 사마씨 일족이 전권을 장악했다. 사마씨 일족은 정치적 감각이 뛰어났고 지략도 남들을 능가했다. 더구나 이들에게는 가충(賈充)이라는 뛰어난 참모가 있었다.
사마의의 뒤를 이은 사마소가 권력을 농단하자 황제 조모는 직접 황궁의 숙위, 노복, 시종 등 3백여 명을 이끌고 사마소를 제거하기 위해 그의 처소로 향했다. 갑작스런 기습에 놀란 가충이 부하들을 급히 모아 황제의 군대를 막아섰다. 사마소의 병사들은 황제가 직접 이끌고 온 군대를 보자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며 머뭇거렸다. 부하인 성제(成濟)라는 자가 가충에게 물었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가충이 꾸짖었다. “사마공께서 그동안 너희를 먹이고 키워 오신 것은 오늘 같은 날을 위해서였다. 물을 것이 뭐가 있느냐?” 이 말을 들은 성제는 곧바로 창을 잡고 황제 조모를 찔러 죽였다. 사마소는 그 소식을 듣고 짐짓 놀라는 척하며 통곡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고는 문무관원을 모두 모아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 잡아떼고는 황제를 시해한 부하 성제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웠다. 성제의 일족은 반역이라는 죄명을 쓰고 멸문지화를 당했다. 과잉충성이 빚어낸 결과였다. 사마소와 가충은 성제를 희생시키고 정치적으로 살아남았다.
과잉충성이란 권력이 있는 자의 부하들이 ‘충성’을 명분으로 하여, 모시는 자로부터 직접적으로 명령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리 예단하여 극단적인 행동을 저지르는 것을 뜻한다. 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는 독재자의 부하들이 저지르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권위적인 지도자가 속한 집단일수록 과잉충성의 정도가 강해진다. 때로는 권력자가 직접 지시를 해놓고 일이 커지게 되면, 부하를 희생시키고 꼬리를 자르면서 부하들의 과잉충성이라고 잡아떼는 경우도 허다하다.
권력자는 부하들에게 충성심을 요구한다. 여러 부하에게 충성심을 경쟁시키는 보스도 있고, 또 보스의 그런 성향을 이용하는 부하도 있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권력자들은 평소에 사소한 과잉충성 사례를 흐뭇하게 받아주면서 총애하고, 약간이라도 자신의 심기에 어긋나는 일이 있으면 분노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부하들로 하여금 이런 짓을 하도록 유도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문제는 단맛과 쓴맛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복잡하듯이, 충성이 권력자에게 반드시 좋은 결과를 몰고 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과잉 충성이 몰고 온 역풍은 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마르코스에게 과잉 충성으로 나타난 마닐라 공항에서의 아키노 암살은 결국 마르코스 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말레이 공항에서 일어난 김정남 암살도 김정은을 향한 과잉 충성 경쟁이 빚은 사건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조직과 권력자의 운명은 배신뿐만 아니라 과잉 충성에 의해서도 위협받는다. 김정은 정권의 최후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는 이유이다. 자기관리가 잘 되는 권력자만이 충성의 적절성을 높여 권력의 지속 가능성을 높인다.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는 ‘사일로(Silo) 충성’이라는 말이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곤 한다. 사일로는 농장에서 곡식을 저장해두는 원통형의 저장고를 말한다. ‘사일로 효과(silo effect)’는 기업이나 조직에서 각 부서들이 사일로처럼 담을 쌓고 자기 부서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현상을 말한다. 자기 부서의 이익관리에만 치중하게 되면 조직 내에서 협업이나 소통에는 소홀하게 되는데, 이는 결국 기업 전체적인 경쟁력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과거 전자 산업계를 호령했던 소니가 침체의 늪에 빠져 좀처럼 재기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사일로 문화가 지적되었다. 이윤을 독점하려는 사업부서들의 이기주의 때문에 기술이 공유되기 어려워졌고, 사업부서 사이의 시너지도 없어 오히려 기술력만 쇠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사일로 충성이라는 용어는 백악관 직원들이 대통령이나 국가라는 보다 넓은 범위의 목표에 충성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근무하는 부서의 직속상관에게만 충성하는 정치 용어로 워싱턴 정가에 정착된 것이다. 즉, 두목의 말이라면 금방이라도 죽는 시늉을 하는 뒷골목 주먹패들의 비루한 충성인 셈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이런 비루한 충성심으로 무장한 무리들이 대로를 활보하고 있다. 국익은 뒷전이고 사사건건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해가며 줏대 없이 갈지자 행보를 보이는 대권욕에 눈먼 대선 후보들과, 이들을 추종하며 우리 당, 우리 후보를 비판이라도 하는 사람에게는 사정없이 손가락질을 해대는 비루한 충성파들이 넘쳐나는 선거판도 그러하다. 진정한 지도자라면 한쪽의 지지만을 등에 업고 거기에 편승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은 상대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존중하며 국익을 위해 고민하는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
국민과 국가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대통령만 바라보며 호시탐탐 자신의 이익만을 탐해왔던 무리들이 법 앞에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국민 모두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에 살면서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롤러코스트에 올라탄 느낌이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것도 모자라 비루한 충성이 넘쳐나는 세상이 숨 가쁘도록 어지럽고 혼란스럽다.
우리 민족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시련의 계절이다. 그래도 때가 되면 척박한 땅에서도 싹을 틔우는 대지의 힘을 믿듯이, 힘든 고비마다 국난의 시련을 이겨내고 면면히 이어온 민족의 위대한 역량은 오늘의 이 시련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리라고 믿는다. 봄 같지 않은 계절이지만 그래도 대지는 빠르게 푸른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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