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모시기와 식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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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 전국시대의 제후들은 인재를 모으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유명했던 사람이 바로 제(濟)나라의 맹상군(孟嘗君)이었다. 맹상군(孟嘗君)은 현사(賢士)들을 초빙하기를 좋아했는데 그를 따르는 식객들의 수가 어느덧 3,0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맹상군이 진(秦)나라에 사신으로 들어갔다가 소왕(昭王)에게 잡혀 죽임을 당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맹상군은 서둘러 사람을 시켜 소왕이 가장 총애하는 여인에게 뇌물을 보내 석방운동을 했지만, 그 여인이 요구하는 물건은 맹상군이 가진 호백구(狐白裘)였다.
호백구란 여우 겨드랑이에 난 흰털만을 모아 만든 가죽옷을 일컫는 것으로 한 벌을 만드는데 천 여 마리나 되는 여우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값도 천금이나 되는 천하에 오직 하나뿐인 진기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당시 호백구는 맹상군이 소유한 단 한 벌밖에 없었는데 진나라에 들어와서 이미 소왕에게 예물로 바쳤기 때문에 맹상군에게 또 호백구가 있을 리 없었다.
맹상군은 크게 근심하여 수행했던 식객들에게 좋은 방법을 물었으나 모두 묵묵부답이었다. 그런데 식객들 가운데 제일 말석에 개의 흉내를 내어 도둑질을 잘하는 자가 있어, 밤에 궁중의 보물창고에 들어가 전날 소왕에게 바쳤던 호백구를 훔쳐 왔고 이를 다시 그 총희에게 뇌물로 주고 겨우 감옥을 나올 수 있었다.
맹상군은 옥에서 풀려나자 즉시 말을 몰아 밤중에 관(關)에 겨우 도착했으나 관문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왜냐 하면 당시 진나라의 법에는 새벽이 되어 닭이 울어야 관문을 열도록 되어 있었다.
맹상군은 뒤쫓아 오는 진나라 군사들이 염려가 되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마침 식객 가운데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자가 있어 그가 닭 울음소리를 흉내 내자 그 소리를 듣고 마을의 닭들이 모두 울었다. 비로소 관문은 열리고 맹상군은 진나라를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바로 그 유명한 계명구도(鷄鳴狗盜)의 고사(故事)이다.
요즈음 정가에는 갑자기 사람 모셔오기가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원로인 누구는 유력한 후보 진영에 가담했다는 기사가 나오기 무섭게 상대 진영에서도 또 다른 사람을 모셔다 놓고 맞불을 놓고 있다. 이쪽저쪽에 눈치를 보면서 몸값을 올리는 사람도 늘어났다.
세상의 흐름이 이러하다보니 우리 지역정가 주변에도 벌써 줄서기가 한창이다. 누구는 누구를 만나 악수를 했다느니 유력인사에게 눈도장을 받았다느니 그럴 듯한 입소문이 무성하다. 원하든 원치 않든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제 발로 걸어서 현대판 식객(食客)이 되었다.
식객이란 무엇인가. 모시는 주군(主君)을 위해 계책을 내고 처세를 바로 하도록 해서 천하를 손에 넣을 수 있도록 음지에서 주군의 일거수일투족을 도우는 사람들이 아닌가.
이 맘 때만 되면 나는 가끔 춘추 전국시대를 연상하곤 했다. 각 유력후보들마다 민심을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에서, 저마다 사슴을 쫓아 이합집산을 하던 춘추 전국시대 군웅들이 생각났던 것이다. 결국은 한 사람만이 그 사슴을 잡는다. 이 과정에서 승자는 살아남고 패자는 사라진다. 패자는 다음 선거 때까지 절치부심하면서 재기를 도모한다. 냉혹하고 비정한 승부의 세계인 셈이다.
맹상군은 평소 식객들 사이에서 하찮은 재주를 가지고 업신여김을 받는 사람이라도, 때가 되면 반드시 그 재주를 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3,000여 명이나 되는 많은 식객들 중에 맹상군의 눈에 들어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편 사람이 몇이나 되었겠는가.
천하를 놀라게 할 만한 재주와 능력을 갖추었으면서도 기회를 잡지 못하고 끝내는 재야에 묻혀 버린 인재들이 고금을 통해 보면 어디 한 둘이었으랴.평소에 남들보다 못한 재주 때문에 주위의 업신여김을 받아 오다가 위급한 상황에 처한 맹상군을 위해 호백구를 다시 훔치고 온 동네 닭들을 깨워 성문을 열게 했던 그 식객처럼, 비록 하찮은 재주를 가지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호백구를 훔치고 닭 울음소리라도 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