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殷)나라의 거울

기사입력 2018.10.1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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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경민대 교수)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는 종이호랑이의 민낯을 드러내면서 서양 열강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일본마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며 한반도와 오키나와, 대만 등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자, 청나라 내부에서는 위기의식이 팽배해졌고 비로소 자기반성과 함께 자강(自强) 운동이 일어났다. 양무운동의 결과로 신식 군대인 북양군과 북양함대를 갖춘 청나라는 한반도를 장악해 조선에 대한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회복하고 일본의 대륙 진출을 저지하려 했다. 일본 역시 정한론을 내세워 대륙 진출을 위해 한반도로 나아가려 했다.

마침내 1894년 7월, 한반도의 여름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동아시아 세계 질서의 중심이었던 청나라와 신흥 강대국으로 부상하던 일본이 조선정부가 요청한 동학농민운동 진압을 명분으로 한반도에서의 주도권을 놓고 격돌했다. 이것이 바로 청일전쟁이다. 두 나라의 전쟁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두 나라 군대가 충돌하는 곳마다 수많은 인적, 물적 피해를 입은 쪽은 대부분 조선의 백성들이었다. 조선정부의 입장은 철저하게 무시되었고, 영문을 모르는 백성들은 하소연할 곳조차 없었다. 일본군은 경복궁을 공격해 친일 내각을 세웠고, 조선의 군인들은 무능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청나라와 일본 양측에 모두 참가해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가슴 아픈 상황이 벌어졌다.

청일전쟁이 터진 지 120여 년이 지난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다. 남북은 판문점선언으로 한반도 화해분위기를 띄우고 있지만, 북한이 약속한 비핵화가 진척되지 않으면서 남북 관계도 정체 기미를 보이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군사력 증강을 멈추지 않고 미국과 러시아도 한반도 정세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오히려 우리 정부는 발 빠르게 대북확성기를 철거하고 복무기간 단축과 병력 감축을 논하는 등, 군사력 축소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북한은 조용하고 주변 강대국들도 호시탐탐 때를 노리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마치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듯한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안보는 우리 스스로가 지킨다는 의지가 확고할 때에만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속담에 말하기를, 앞에 가는 수레가 엎어지면 뒤를 따르는 수레에 경계가 된다(前車覆後車誡)고 하였다. 하나라와 은나라, 주나라가 모두 오래도록 번영하였는데, 그 이유는 지난날의 교훈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서(漢書)》 〈가의전(賈誼傳)〉에 실린 이야기이다.

한(漢) 문제(文帝) 때 가의라는 사람이 있었다. 대단한 수재로 18세 때부터 그 재능이 알려져. 20세에 박사가 되었고, 다음 해에 태중대부(太中大夫)가 되었다. 그는 자주 정국 운영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였는데, 위의 글은 그런 글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진(秦)나라는 너무 일찍 망했다. 왜 망하였는지는 그 수레바퀴의 자국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뒤를 따르는 수레가 그 바퀴 자국을 피하지 않는다면 곧 엎어지고 말 것이다(前車覆 後車戒). 그러므로 나라의 존망과 다스림과 혼란의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앞에 가는 수레가 엎어진 것을 보면, 뒤를 따르는 수레는 반드시 그것을 교훈으로 삼아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일러준 것이다.

나라 안에 만연한 부패와 탐관오리를 척결하라는 동학농민군의 소리에 정부는 들어주는 시늉만하면서 기만했다. 권력자들의 기득권 지키기에만 몰두하던 무능했던 정부는 주변국의 군사력을 이용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나라는 망국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지난 정부의 부패와 무능함을 파헤쳐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어떤 경우에도 국익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원칙만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한반도 주변 상황은 한 치 앞도 예단할 수 없는 상황임에랴.

“은나라의 거울은 먼 데 있지 않다(殷鑑不遠). 바로 앞의 왕조인 하나라에 있다(在夏后之世).” 《시경(詩經)》 〈대아편(大雅篇)〉에도 실린 이 말은 나라를 망친 선례(先例)는 바로 전 왕조에 있다는 뜻이다. 적폐를 청산해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게 이 정부의 구호였다. 백성들의 기대와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려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현대판 동학농민군은 도처에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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