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거대한 대륙의 땅 아프리카를 밟다

기사입력 2020.12.0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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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평해정보고 취업지원관 신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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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팀장 신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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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회관 준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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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교육 

1. 희망의 돛을 달고

멀리 아프리카 르완다(동부지역) 항구를 향해 우리 팀은 2010년 8월 초순에 12시간의 여정 끝에 수도 키갈리에 도착했다.

공항의 모습, 멀리 보이는 1,000여개의 언덕(구릉지대)으로 형성된 지형의 모습, 그리고 양철지붕으로 반짝이는 집들, 도로, 주위 경관, 우기와 건기로 나누어진 단조로운 기후변화와 낮과 밤의 온도 차에 의한 자연환경, 이 모든 것이 우리나라 60, 70년대의 시골 모습이 연상되며, 우리와 너무나 흡사한 면이 많은 것 같다. 새마을 운동의 경험 세대로서 자신감을 갖고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유숙소에서의 공동체 활동, 현지어학습, 오제이티 등의 프로그램에 의한 교육과정 1개월을 마치고 현지체험에 나섰다. 이곳의 생활문화, 풍습, 전통음식(메랑제)과 의상, 금융거래시장조사, 교통수단(마타투, 모토 등) 이용, 치안 상태, 종교활동, 현지 엑스포 박람회 등을 체험해 보았다. 비록, 과거 17년 전(1994. 4. 7) 제노사이드란 동족 간의 학살은 있었지만, 국민들의 생활 태도는 그것을 개의치 않은 것 같다. 특히, 놀란 것은 우리나라 새마을 조기청소와 비슷한 매월 우무간다를 실시하는 것을 보고 흐뭇했다. 르완다도 희망이 있고, 발전 가능성이 엿보이는 나라라고 판단했다. 일요일 날 깨끗한 복장으로 온 가족이 손을 잡고 교회에 가는 모습, 주위 환경이 너무나 깨끗한 거리, 환경미화원의 청소 광경, 출, 퇴근길 차를 타기 위해 서서 기다리는 풍경, 교통질서를 잘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이 밝아 보였다.

마을을 방문하기 위해 마타투(16인승 정도의 조그만 버스)와 모토(오토바이)를 타고 들어갔다. 마을 입구부터 반기는 어린아이들의 함성소리 아마쿠루 “코리아, 코리아”라고 목청껏 외치는 그들의 인사에 희망과 꿈을 안겨다 주었다. 이곳 마을은 농업으로 자급자족하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임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고, 또한 전기와 물 사정이 전무한 곳, 주위 생활환경 모습을 지켜볼 때 우선순위로 해결해야 할 문제임을 깨닫게 되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중국의 노신은 말했다.

2. 고통과 시련의 순간을 딛고

기만한 인생은 없는 것 같다. 인생은 참으로 힘들고 고통스럽다. 언어장벽과 외로움, 팀원 간의 마찰과 갈등, 도난과 분실, 식생활의 부적응, 현지인에 대한 절망감, 경제적인 어려움, 현지 문화(느림보문화)와 관습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점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좌절과 허탈감을 느꼈다. 그리고 손세주 대사님의 조언도 잊을 수 없다. 이 나라에서 “봉사자의 자세를 흩트리지 말고, 나라의 위상을 세우도록” 당부한 말씀. 또한, 관계기관 담당 실무자의 방문으로 인한 모든 사업계획이 확정되고, 분야별로 임무가 부여됨에 따라 사업 활동에 도전과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관계자의 위로와 격려의 한마디 “어떠한 어려움도 참고, 용기를 내어 르완다 땅에 새마을 정신을 꼭 심어주세요”라는 말을 통해 힘과 위안을 얻었다. 12월 주민결의대회와 기공식, 마을 축제를 필두로 사업 활동의 막을 올렸다. 제가 맡은 사업 분야는 새마을조직과 교육, 회관건립이었다. 그 세부적인 중점목표는 지게교육과 보급, 마을소식지 발간, 월 1회 새마을교육과 새마을위원회 조직, 그리고 회관 건립에 있었다. 특히, 대구 MBC 방송의 취재로 주민들의 태도가 변화되었다.

관망하던 자세에서 자발적인 참여로 사업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 자신의 이기적이고 욕망적인 감정과 생각, 마음을 비우고 소중한 내 자리를 지키기로 결심하였다. 바보처럼 살아온 지난날을 회복하는 심정으로 봉사자의 임무에 임하기로…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분류하였다. 그중에 제1단계인 생리적 욕구가 먼저 해결되어야만, 다음 단계인 안정적인 욕구로 넘어갈 수 있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의 우선적인 목표가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인 것 같았다. 빈곤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 기본정신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만 되겠다고 생각했다.

배정된 사업비를 가능한 마을을 위해 쓰기로 하고, 회관건립 인부들에게 노임 지급, 마을 공동기금 조성, 새마을 교육에 필요한 각종 물품 제작 등을 마을 사람에게 맡겼다. 그리고 내가 먼저 마을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무라호(현지 인사), 아마쿠루(일반적인 인사) 니메자로 그들이 인사를 받아준다. 점심시간 때 인부들과 나누어 먹는 감자와 고구마(이비라이와이비줌바), 구운 옥수수(이치고리), 또한 어렵고 힘든 단계의 공사를 끝내고 염소꼬치(부루세트)와 프리므스 한 병(현지 비어)으로 회포를 푸는 놀이마당은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다. 출, 퇴근 때마다 꼬마들의 함성, 세마(현지어 제 이름입니다)!, 세마! 하며 외치는 그 아이들이 모습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더욱더 힘을 얻게 되고 마을을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 안에서 연합하면, 모든 힘든 일도 쉽고 행복할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을 주자. 베풀자. 곡선으로 직선을 그리는 조화로운 삶을 보여주자. 이것이 나의 신념이다.

3. 새로운 삶의 목표를 향해

목표를 세우면 목표가 나를 이끈다고 했다. 이곳에서 뼈저리게 느낀 두 가지 목표가 있다. 첫째는, 10년 후에는 반드시 영어를 능숙, 능란하게 구사하는 것. 둘째는, 중도 포기한 학문의 꽃인 박사학위를 갖는 것이다. 언젠가 이곳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하고 싶어 찾아갔더니, 이상안 부장님의 충고 한마디가 생각난다. “영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뭘 하지, 창피당하지 않게 그만두라는 말씀” “영어를 밥 먹듯이 공부해라”고 조언을 받은 적이 있다. 10년 후에는 이 땅을 반드시 밟을 것이라는 결심을 다지고,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을 할 것이다. 능력이란 가만히 있는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형성돤다고 했다. 그리고 최종학위를 얻는 것이다. 대학원 시절 내가 꿈꾸던 목표였다. 인생에는 때와 시기가 있다고 했지만, 주저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과거 학창 시절 재수의 경험이 있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합격했다. 인생은 언제 어느 순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와 힘을 얻어 목표를 향해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매스컴을 통해 히말라야 슈바이쳐 강원희 박사 부부의 의료봉사활동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노년의 나이에도 사랑의 의술을 전하는 그분의 인생 철학을 보며, 나도 그러한 꿈을 이루기 위해 르완다에 재도전의 화살을 던지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이곳 새마을사업 활동에도 내가 계획한 꿈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4개월 만의 진통 끝에 창간된 마을소식지 발간이고 두 번째는, 70여 가구에 보급된 지게교육이고 마지막으로, 사업의 꽃인 회관 건립이다. 6개월간의 공사 끝에 드디어 2011년 6월 14일 새마을회관의 모습이 드러났다. 주민들의 땀과 노력,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라 생각된다. 마을회관 준공식은 주 르완다 이헌 대사님을 비롯한 내외귀빈 다수와 많은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전 10시부터 약 3시간 동안 성대히 치러졌다. 또한, 르완다 TV 방송국에서의 취재 방영과 지역 매스컴을 통해 키가라마 마을이 르완다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날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온 마을주민들이 흥겨운 잔치 한 마당이 되었다.

돌이켜 보건대, 매월 정기 새마을 교육, 주민 대상 영화상영, 회관준공기념 지게경진대회, 주민노래자랑대회, 회관 준공식, 마을 축제 한마당, 매주 마을 위원회 회의, 현지 마을 지도자 새마을교육 연수생 10명 환송회 등을 계기로, 마을 사람들과 공동체가 형성되고, 화합의 장이 되었던 것 같다. 이제 키가라마 마을 새마을회관 광장 앞에 태극기와 새마을기가 게양대에서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새마을기를 꽂고 나니 가슴이 뭉클해지고,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단념하지 않고 열심히 맡은바 임무에 충실하며, 모든 사업을 잘 마무리 해준 팀원 여러분에게 뜨거운 감사의 찬사를 보낸다.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고, 수고하였습니다. 특히, 코이카 이상안 부장님 저희를 잘 지도해 주시고 격려와 위안으로 도와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신영섭 코이카 시니어 회장님과 회원님, 현지 선교사님, 현지 코이카 단원 여러분의 따뜻한 위로와 조언의 말씀도 너무 고맙습니다.

아프리카 르완다 키가라마 마을주민들이, 6명의 새마을봉사단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 날이 오기까지, 우리 팀원들은 고국을 향해 닻을 올린다. 떠나보내는 마음 아쉬운 듯 마을주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인생이라는 항해를 위하여, 이제 새마을 제1호선은 고국을 향해 떠난다.

아마쿠루 키가라마여, 안녕!
마을의 발전된 모습을 보러 10년 후에는 온 가족이 함께 오기로 약속하며 국기 게양대 밑에 타임캡슐을 묻었다.
무라코제 찬네(감사합니다)                               
                       
4. 마무리

인생에서 정말 의미 있는 사건이며 함께 동행한 그 당시 대학생들이 정말 고마웠다.

봉사라는 것이 근면, 성실, 인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자신의 마음가짐과 자세가 남을 배려하는 마음부터 우러나와야 되겠다는 신념이다. 국격 향상과 나 자신의 보람이 후대에 전해지길 기대하면서 해외 저개국에 대한민국을 빛낼 자신의 재능을 기부해 보자. 올해가 딱 10년 되는 해인데, 올해는 꼭 가봐야 되겠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여의치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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