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마음과 태도를 돌아보다

울진향교 석전제 참례기
기사입력 2021.04.12 14:54  |  조회수 5,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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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향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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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향교 석전제 봉행을 알리는 현수막


울진향교, 춘기(2572)석전제 봉행하다.


아침부터 봄비가 보슬보슬 내린다. 울진읍 월성공원 둘레 소나무들은 봄비에 촉촉이 젖어 들어 봄기운을 머금고 푸르다. 그 산봉우리 아래, 앞으로는 남대천이 흐르고 남쪽 아늑한 곳에 자리 잡은 고색창연한 울진향교(66대 전교 노만성) 들머리에는 공기(孔紀) 2572년 음력 2월 8일(양 3월 20일) 석전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봄비에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대성전 뜰에는 배롱나무는 매끄럽고도 부드럽게, 언덕에는 원추리가 연녹색의 잎을 내밀며 봄비를 맞고 있었다. 석전제, 말로만 들어본 필자에게는 꽤나 낯선 제의식이라 그 절차와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10시부터 행사라 아침 일찍부터 관계자들은 부산하다. 이미 대성전에는 제물들이 정성스럽게 차려져 있었다. 정갈했다. 그와 함께 주요 제관들은 고풍스러운 의관을 갖추었고, 옥색 빛깔이 은은하게 도는 제복을 입은 장의들이 도열해 있었다. 참례자들도 대성전 뜰 아래 대기 중이었다. 헛기침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엄숙한 분위기였다. 석전제가 시작되자 대성전 계단을 오르는 제관들은 누구 하나도 함부로 성큼성큼 오르지 않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뎠다. 이 모습을 본 필자는 조선조 대유학자 율곡 선생이 논한 선비가 지녀야할 마음과 몸가짐으로 아홉 가지 태도인 구용구사(九容九思)를 생각게 하였다. 


유학의 본고장 중국에도 없는 독특한 문화 콘텐츠


석전제는 공자(孔子)를 비롯한 선성선현(先聖先賢)에게 제사 지내는 의식을 일컫는다. 유학의 본고장 중국에도 없는 독특한 전통문화 콘텐츠다. 그래서 석전제는 1986년 국가 중요무형 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됐으며, 전국 234개 향교에서 봄, 가을로 대성전 공자를 모시는 문묘에서 거행하고 있다. 울진 향교 석전제는 해마다 음력 2월, 8월 상정일에 향당에서 제례를 주관  봉행하다가 1970년 이후 향교 전교 주관으로 봉행하고 있다.

 

이날 울진향교 대성전에서는 노만성 전교와 전찬걸 울진 군수를 비롯한 지역유림 등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 되었다. 울진향교 관계자는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참석자를 많이 제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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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전제 봉행전 의관을 착용하는 제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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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헌관이 손을 씻는 관세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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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위에 술잔을 올리는 초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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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전제 봉행을 기다리는 울진 유림들

 

울진향교 석전제 주요 제관으로는 울진향교 전교(노만성), 초헌관(전찬걸 울진군수), 아헌관(박범수 한울원자력본부장), 종헌관(전태수 울진 유림), 분헌관은 사영길 유림, 엄경섭 유림, 집례(堂上執禮)는 정만교 유림, 대축은 홍덕표 유림, 당하집례 장태윤 총무책임장의가 맡았다. 이날 치러진 울진 향교 석전제 순서는 다음과 같다.

 

▶입취위(모든 참석자들이 정해진 자리로 나아가는 의식) ▶행전폐례(초헌관(初獻官)이 신위 전에 향을 피우고 폐백(幣帛)을 올리는 의식)▶행초헌례(초헌관이 신위 전에 첫 술잔을 올리고 대축(大祝)이 축문을 읽는 의식) ▶행아헌례(아헌관이 신위 전에 두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 ▶행종헌례(종헌관이 신위 전에 세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 ▶행분헌례(분헌관이 동서 22위 신위 전에 술잔을 올리는 의식) ▶행음복수조(초헌관이 음복 잔을 마시는 의식)▶철변두(축관과 집사가 제기를 거두고 촛불 등을 끄는 의식)▶행망예례(신을 떠나보내는 축문과 폐백을 묻는 의식)▶행예필(석전제를 마치는 의식)등으로 진행했다.


이날 제의는 모든 준비가 되고 대성전 앞에 참례자들이 도열을 하니 사회자격인 당상집례가 한문으로 된 홀기(식순)를 읽어 주면 모든 절차와 행동이 그에 따라 진행되었다. 먼저 홀기에 따라 알자(謁者)가 초헌관(初獻官), 아헌관(亞獻官), 종헌관(終獻官)과 분헌관(分獻官)을 정해진 자리로 안내하였다.  

 

자리 안내가 끝나자 축관이하 집사가 북향으로 절을 네 번 하고 찬인의 인도를 받아 손을 씻고 촛불을 켜고 신위를 열었다. 그다음 제의 주관자인 초헌관 이 홀을 꽂고 손을 씻은 후 향을 피우고 폐백을 올리는 전폐례(奠幣禮)를 시작으로 공자 등 네 분의 성인 위패 앞에 첫 번째 술잔을 올리고 대축관이 축문을 낭독하는 초헌례(初獻禮)를 했다. 

 

아헌관이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아헌례(亞獻禮)를 하고, 세 번째 술잔을 올리는 종헌례(終獻禮)를 했다. 또한, 동서(東西)종향위 22위 성현에게 마지막 술잔을 올리는 분헌례(分獻禮)를 했다. 이 과정에서 이어지는 하나하나의 행동 모두가 당상집례가 읽어 주는 홀기에 따르고 있으니 행동은 절제되고 분위기는 엄숙해졌다. 

 

이렇게 하여 헌관들이 향을 사르고 술잔을 올리는 순서가 끝나니 알자의 인도로 초헌관이 음복하는 곳에서 석전에 올렸던 술과 포(脯)를 받아 음복을 하고, 헌관과 참례자 모두가 사배(四拜)를 올렸다. 끝으로 축문을 땅에 묻는 망예례후 모든 참례 제집사자들이 대성전을 향해 4배하는 행예필(行禮畢) 등까지 2시간 넘게 엄숙한 가운데 정중하게 진행되었다.

 

이번 울진향교, 춘기(2572)석전대제 봉행에는 주요 제관을 비롯해 찬자 정만교 유림, 대축 홍덕표 유림, 알자 김명중, 찬인 권두진, 봉향 남세원, 봉로 김경하, 봉작 남계식, 전작 김용석, 장생 홍성대, 장찬 최중봉, 통알 이성균, 학생 이억섭, 사준 전경숙, 김귀남 관세 박순덕이 그 역할을 맡았다. 이는 춘기석전제 행사 전 임무를 부여하는 파임회의에서 결정한 역할분담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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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전제 봉행에 엎드려 절하는 제관과 유림들 

 

석전제 제수는 다르다?

 

이번 석전대제에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이 있었다. 다름 아닌 제상에 올려진 제물들이 모두 날 것이었고, 수저 등을 쓰지 않았다. 가정에서 지내는 제사 음식들과 너무나 달라 생경스러웠다. 고기는 날고기였고, 곡식이나 과실들도 생것이었다. 그것은 일반 가정의 제사에서 익힌 음식을 올리고, 숟가락과 젓가락 쓰는 것은 조상들을 살아생전의 예로 모시기 때문이지만, 석전제에 모셔지는 성현들은 신의 반열로 추모하니 숟가락이나 젓가락이 필요 없을 뿐 아니라 생것에서 기를 흠향할 수 있기에 날 것으로 올린다고 한다. 소위 유교 제찬에 관한 학자들의 설에 따르면 ①제사란 생기를 빌리고자 하는 것이므로 날 것을 제물로 써야 한다는 입장인 생설(生說) ②천자·제후의 예와 사·대부의 예는 분명 구분이 있으므로 날 것을 써서 안 되고 익힌 제물을 올려야 한다는 입장인 숙설(熟說), ③고례에 쓰던 날 것과 일상에 먹던 익힌 것을 함께 올린다는 입장의 생육병용설(生熟並用熟說)이 있다. 이 가운데 석전대제의 제물은 예기(禮記)에 지극히 공경하는 제사는 맛으로 지내는 것이 아니고 기(氣)와 냄새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에 생육을 올린다는 ①생설(生說)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 

 

그 밖에 조상들과 성현들을 가름하는 이러한 설명과는 달리 예전에는 제를 지낸 후 몫을 나누어 참례자들에게 배분하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익힌 음식은 오래지 않아 상하게 되니 먹을 것이 모자라던 시절, 더구나 고기 맛을 보기 어려운 참례자들을 배려하여 날 것으로 하였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제수의 상징성도 중요하지마는, 그보다 인류의 성현인 공자님의 가르침이 뜻하는 바를 깨닫고, 그 덕을 기리는 참례자들의 지극한 마음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울진향교 노만성 전교는 석전제의 의미에 대해『석전제는 해마다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丁자가 들어가는 초일)에 향교에서 치러지는 전통의식』이라며『선비의 고장 울진 유림들은 석전대제를 통해 전통 유교 문화를 계승하고 새로운 정신적 가치를 창출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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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문을 묻는 망예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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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전제에 차려진 제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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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전제를 마치고 제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에헴! 하루 선비가 되어보다.


조선시대 향교는 본래 지방의 교육적, 정치적, 문화적 기능을 담당하던 주요 기관이었다. 지금은 주로 문화기능인 석전제가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우리나라 석전제는 유학의 본고장인 중국이나 인접 일본에도 남아있지 않은 우리만의 참으로 독특한 문화 콘텐츠인 것이다. 왜냐하면 석전제는 일제강점기를 지나오면서도 훼손되지 않고 오늘에 이어진 우리 전통문화다. 공자의 나라이자 유학의 본산인 중국에서조차 문화혁명 등을 겪으며 원형을 잃어버려 우리나라 석전제의 가치는 더욱 소중해졌다. 그래서 이 독특한 문화콘텐츠를 과감히 현대적으로 재구조화하여 고품격 예술문화로 발전시켜야 한다. 다시 말해 유림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많이 참례하여 옛 성현인 공자님과 만남의 날, 진정한 삶의 길을 성찰하는 사색의 날, 선비문화체험 등, 그래서 다 같이  위대한 성인군자가 한번 되어보는 축제의 날로 승화시켰으면 어떨까 한다. 

 

어쨌든 필자에게는 마음의 준비 없이 울진향교 주관 석전제에 참례했지만, 어느새 “에헴” 하는 하루 선비가 되었다. 또한 온고지신[溫故知新]과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생각해보고, 나를 돌아보는 좋은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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