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옛 농기구와 생활도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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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농원(금강송면 쌍전리)
옛 농기구는 조상들의 농업 예술작품이다.
우리 겨레는 옛날부터 농사를 소중히 여겼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이 그것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인류 문명의 이기가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은 먹지 않고 살 수 없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사람 두뇌를 대신한다지만, 동물인 사람은 컴퓨터 칩을 먹고 살 수 없다. 그래서 농업을 두고 생명산업이라고 한다. 그러니 농사야말로 하늘 아래 가장 중요한 바탕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아무리 농사를 잘 짓는 농사꾼이라도 맨손으로 농사를 지을 수는 없다. 거기에는 반드시 연장인 농기구가 있어야 한다. 오랜 옛날 신석기 시대에는 동물의 뼈나 나무, 돌 따위의 연장을 이용해 농기구로 썼다. 그 후 사람들이 쇠를 다루게 되면서부터 농기구는 능률과 생산 면에서 눈부시게 발달하였다. 우리 조상들도 이 땅에서 수천 년간 농사를 지어오면서 새로운 농기구를 창안하고 발달시켜 왔다. 이러한 농기구에는 조상들의 슬기와 애환이 담겨 있다.
옛날이야기 『팥죽할머니와 호랑이』가 그 대표적인 것이다. 팥죽할머니를 괴롭히는 호랑이를 알밤, 자라, 개똥, 송곳, 절구, 멍석, 지게가 모두 맛난 팥죽을 한 그릇씩 얻어먹고 할머니를 도와 호랑이를 통쾌하게 물리친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멍석이 둘둘 말아 버려 꼼짝 못하게 해놓은 호랑이를 지게가 연못에 내다 버리고 만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송곳, 절구, 지게, 멍석은 생활도구이자 농기구이기도 하다. 이 옛날이야기는 동지에 팥죽을 먹고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친다는 민속적(벽사) 의미, 백성을 괴롭히는 폭군(호랑이)이나 탐관오리들에게 민중들이 함께 저항한다는 상징성도 있다.
한편으로는 등장 사물들이 각자 역할을 분업 또는 협업하여 일을 능률적으로 처리한 사례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 농기구에는 우리말이 살아있고, 조상들의 순박한 마음, 슬기와 정서(해학, 풍자)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농업예술작품이다.
농부의 힘든 일 가래질 첫째로다
조선의 대표 실학자 정약용의 둘째 아들인 정학유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 나오는 삼월령의 일부이다. 농가월령가는 1년 열두 달 농가에서 할 일을 적어놓은 가사이다. 이 가사 문학에도 농기구가 등장한다.
여기에 보면 『농부의 힘든 일 가래질 첫째로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가래는 흙을 파헤치거나 떠서 던지는 농기구이다. 나무를 자루와 몸이 하나가 되도록 깎고 둥글넓적하게 생긴 몸의 끝에 쇠날을 끼워 만든다. 주로, 논을 평평하게 고르거나 갈 때 또는 밭이랑을 만들 때 쓰인다. 가래로 흙을 파헤치거나 퍼 옮기는 일을 가래질이라고 한다. 이는 최소 3인이 균형을 잘 맞춰 협업을 해야만 일의 능률이 오른다. 힘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가래의 방향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가래는 논밭과 집터 등을 고르기, 다지기, 파헤치기 등 긴요한 농기구였다.
『삼월은 모춘(暮春)이라 청명 곡우 절기로다. /춘일이 재양(載陽)하여 만물이 화창하니 /백화는 난만하고 새소리 각색이라. //당전의 쌍제비는 옛집을 찾아오고 /화간(花間)의 범나비는 분분히 날고 기니 /미물도 득시(得時)하여 자락(自樂)함이 사랑홉다. //한식날 성묘하니 백양나무 새잎 난다. /우로(雨露)에 감창(感愴)함을 주과로나 펴오리라. //농부의 힘든 일 가래질 첫째로다. /점심밥 풍비(豊備)하여 때맞추어 배불리소. //일꾼의 처자권속(妻子眷屬) 따라와 같이 먹세. /농촌의 후한 풍속 두곡(斗穀)을 아낄소냐. /물꼬를 깊이 치고 도랑 밟아 물을 막고// 한편에 모판하고 그나마 삶이 하니/ 날마다 두세 번씩 부지런히 살펴보소./약한 싹 세워낼 제, 어린아이 보호하듯//백곡 중 논농사가 범연(泛然)하고 못하리라. /포전(浦田)에 서속(黍粟)이요 산전에 두태(豆太)로다. //들깻모 일찍 붓고 삼농사도 하오리라. /좋은 씨 가리어서 그루를 상환(相換)하소. /보리밭 매어 놓고 뭇 논을 되어 두소(이하 생략)』
예부터 울진은 지형적으로 바다, 들, 산간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대체로 바다에서 해산물을 생산하고 논과 밭에서는 벼나 보리, 밀, 조, 기장, 콩, 팥, 채소, 과수 따위를 가꾸어 왔다.
이러한 농작물을 가꾸는 데에는 농기구와 같은 연장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앞서 말한『가래』의 경우 6, 70년대만 해도 농촌에서는 긴요한 농기구였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농기구는 농사일에 쓰이는 도구나 기구를 말하는 것으로, 인력용과 축력용으로 나뉘는데 주로 손과 발을 이용하는 기구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기계 동력을 이용한 경운기·양수기·탈곡기·트랙터·이앙기·콤바인, 드론과 같은 농기계가 급속 발달되어 예전에 수백 명이 해야 할 일 단숨에 해내기도 한다.
옛 농기구가 급속한 기계문명의 발달로 퇴락하고 사라지듯이 생활도구도 마찬가지다. 짚이나 풀, 목재용의 생활도구도 대부분 쇠나 플라스틱, 세라믹 등의 생활용기들에게 밀려나거나 거의 사라지고 있다.
울진에서도 선조들의 옛것에서 향토의 새로움을 찾고 그것을 지키려는 민간단체와 개인이 있다. 바로『울진박물관추진위원회』와『봉암농원』이다. 이 글에서는 사라져 가는 울진의 농기구와 생활도구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다만 도구의 구조, 유래, 용도 등은 지면상 간략히 기재 또는 생략했다.
울진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수집·보관 민속사료(일부)
울진 정체성을 추구하는 울진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울진박물관추진위원회』는 사라져 가는 울진의 옛것을 보전하여『울진의 정체성을 지키고, 후세들에게 전하자.』라는 일부 청장년들의 뜻이 모아져 1992년 초에 창립한 민간단체이다. 울진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임영수, 이하 추진위)는 울진의 민속사료를 울진군민들로부터 기증과 수집하여 수백 점을 보유하고 있다. 『울진박물관건립』을 위해 벌써 30년 가까이 노력 하고 있는 임영수 위원장은『울진에서 가장 향토적인 것은 조상들이 남겨놓은 삶의 문화(흔적)인 민속사료들이다. 따라서 후세들에게 울진의 정체성을 기리는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울진박물관은 반드시 건립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수집된 사료는 울진군에서 마련한 곳에 임시 보관하고 있다. 벌써 30여년이 경과되어 어떤 사료는 훼손·망실 등도 우려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사료 일부는 금강송면 소광리 소재 관광휴양시설인『금강송에쿠리움』에 전시되고 있다 한다.
봉암농원 물레방아
전통혼례식 의복(청색 단령), 관대 등
전통혼례식 족두리
짚신(짚새기) 전통 혼례식 신발(목화)
봉암농원의 농기구와 생활도구에 대해 설명하는 남명화 선생
산촌 주민의 애환이 담긴 봉암농원
울진에서 보기 드물게 개인적으로 선조들이 집안에서 쓰던 농기구와 생활도구 다수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봉암농원(울진군 금강송면 쌍전2길 363-11)이다.
이 봉암농원에는 전직 교장선생님이었던 남명화(73세)씨가 교직 퇴직 이후 녹색체험농장을 운영하면서 살고 있다.
봉암농원은 남명화씨의 할아버지(조부 남진학, 1905-1991)의 호『鳳菴봉암』에서 유래되었다. 봉암선생은 산간벽지에서도 한학에 대한 열정이 가득해 독학으로 공부했다고 한다.
1966년에는 성균관대학교 주최 전국시회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아 진사의 칭호도 받았다고 한다.
봉암농원 들머리에는『鳳菴南先生詩碑記』가 있다. 후손들이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집안을 일으켜 세워 오늘의 터전을 마련한 봉암 선생의 공덕을 기리고자 세웠다. 봉암농원은 자연풍광이 산골 분지형으로 농장 들머리에는 너래바위를 따라 계곡물이 사철로 흘러내리는 곳이다. 그리고 남명화 선생이 잘 가꾸어 놓은 농장이 있고, 봄철과 여름철에는 각가지 농작물과 들꽃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곳이다. 이곳 봉암농장에 가면 봄철 산나물 채취와 같은 자연녹색체험은 물론 사라져 가는 농기구와 민속용품들을 만나 볼 수 있다.
남선생은 『할아버지 때부터 쓰던 농기구와 생활도구들을 그대로 방치하거나 버리기보다 선조들의 삶의 애환이 있는 민속사료이기 때문에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그는 할아버지가 남긴 문집이나 옛것에서 주는 교훈을 알고, 오늘 후손들을 있게 한 그분께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봉암농원에서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100여 년쯤 되는 전통 혼례 물품인 혼례복, 관대. 족두리 등이다. 60~70년대만 해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전통혼례식 물품들이었다. 남선생은 아직도 그것을 고이 보관하고 있었다.

봉암농원 방앗간
향토색 짙은 울진 농기구들
여기에 소개하는 것은『울진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와『봉암농장』에서 보관하고 있는 울진 농기구와 생활도구이다. 농기구 분류 기준에 따라 몇 가지만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① 흙 다루는 농구 : 쟁기, 극젱이(후치), 따비, 괭이, 삽, 가래
<쟁기> 경운기가 나오기 전에 논밭을 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농기구였다. 20여년 전만 해도 소를 부려서 쟁기로 논밭을 가는 모습을 더러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거의 경운기나 트랙터를 이용한다. 지역에 따라 장글, 장기, 잠개, 보, 보장기라고도 했다. 후치는 사람이 앞에서 끄는 작은 쟁기이다.
② 거름 주는 농구 : 거름대, 쇠스랑, 삼태기, 똥장군, 똥바가지, 거름지게
③ 논을 삶는 농구 : 고무래, 번지, 써레
<써레와 번지> 논에 흙덩이를 부수고 삶는데 쓰는 농기구다. 칼로 썰 듯이 흙을 잘게 썬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모내기 때 논에 물을 대고 나서 논바닥이 물러지면 소를 부려서 써레질을 한다. 여기에 넓적한 판대기를 붙이면 번지가 된다. 번지는 써레질 후 논을 더욱 평평하게 고르기 위해 하는 작업이다. 요즈음은 이러한 작업을 주로 경운기나 트랙터가 한다.
④ 씨 뿌리거나 곡식 따위를 담는 농기구 : 다래끼
<다래끼>
⑤ 물대는 농기구 : 용두레, 맞두레
<맞두레> 두 사람이 마주 보고 물을 퍼 올릴 때 쓰는 두레박이다. 울진에서는 파래라고 한다.
⑥ 김매는 농기구 : 호미, 토씨
<호미> 씨앗을 넣는 것부터 농사짓는데 여러모로 쓰이는 농기구다. 요즈음도 잘 쓰는 농기구다. 모양도 세모꼴, 낫꼴, 보습꼴 등이 있다.
⑦ 거두는 농기구 : 탈곡기, 벼훑이, 그네, 도리깨, 키, 풍구, 넉가래
곡식에 섞여 있는 쭉정이, 티글, 먼지, 검불을 날려 보내고 돌도 골라내는데 쓰이던 농기구이다. 옛날에는 밤에 오줌을 싸는 아이한테 키를 씌워 이웃에 소금을 얻어오게 했다. 이웃집에서는 일부러 소금을 뿌려 쫓기도 했다. 아이가 얻어온 소금으로 밥을 지어주면 오줌을 싸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속설로 주술적 심리 효과를 주어 오줌을 싸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네> 벼 이삭을 훑어서 낟알을 떠는 농기구이다. 훑어내는 기구라 홀태라고도 한다. 그네는 조선 후기의 문신 서호수(徐浩修1736~99)가 편찬한 『해동농서』라는 책에 처음 이름이 나온다. 빗살은 처음에는 널빤지를 다듬어 만들었지만 일제 강점기 쇠붙이 빗살이 들어와 쓰이기 시작했다.
<도리깨> 보리, 콩, 팥 같은 곡식 낟알을 떨어내는 농기구다. 자루는 가볍고 단단한 나무로 만들고 내려치는 부분인 휘추리는 가늘고 질긴 물푸레나무로 만들었다.
<탈곡기>는 일제 강점기 때 들어 온 것으로 우리 농기구 중에서 처음으로 기계를 움직여 벼를 떨던 도구다. 울진에서는 아이들이 움직일 때 나는 소리에 이름을 붙여『와랑와랑』이라고 했다.
⑧ 찧거나 빻는 농기구 : 디딜방아, 물레방아, 연자방아
<디딜방아> 벼, 보리 같은 곡식을 넣어 껍질을 벗기고 밀과 콩을 찧어 고운 가루를 만들던 도구다. 방아다리를 발로 디뎌 곡식을 찧는다고 해 디딜방아라고 한다. 외다리방아와 양다리방아가 있다.
⑨ 갈무리 농기구 : 거적, 멍석, 발, 맷방석, 가마니, 나락뒤주
<멍석> 곡식을 펼쳐 널 때 바닥에 까는 자리를 멍석이라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잔치나 놀이판을 벌릴 때도 멍석을 깔았다. 명절 때는 윷놀이 판도 그려 놀았다. 보통 네모난 멍석도 있고 둥글게 생긴 도래 멍석(방석)도 있다.
⑩ 나르는 농기구 : 지게, 길마, 달구지, 발채
<지게> 짐을 담아 어깨에 메고 나르는 도구이다. 짐의 무게를 등 전체에 분산시켜 무거운 짐이라도 손쉽게 나르고, 받침대(지게작대기) 하나로 안정적으로 세워둘 수 있고, 산악지대가 많은 우리나라에서만 독특하게 발달한 과학적 수송 수단이다.
독일 기자 지그프리드 겐테의『한국견문록(1901)』에는 사람의 어깨 근육으로 힘을 적게 들이고 수월하게 짐을 운송하는 기구로서 조선인이 만든 탁월한 발명품이라 했다. 프랑스 민속학자 샤를르 바라(Charles Varat)는『양어깨와 등의 힘을 조화시킨 창의적이고 과학적인 운반기구이다.』라고 했다. 6·25 한국전쟁시 노무자들이 산꼭대기 진지까지 식량·탄환 따위의 보급물자를 지게에 지고 날라 주었다. 이를 보고 미군은 『에이 프레임(A frame : A자 모양의 틀)』이라고 했다. 이렇게 놀라운 보물과 같은 운반도구가 이제는 경운기, 트랙터, 화물차 등에 밀려 거의 사라졌다.

지게의 구조

울진바지게시장과 보부상(조형물)
<울진 바지게>
일제강점기 본격적으로 조선의 상권이 침탈되면서 보부상들은 쇠퇴하고, 강원도(현 경상북도) 울진지역의 경우 그 역할은『선질꾼』이 대신하였다. 선질꾼은『십이령』을 통해 울진과 봉화 지역의 물품을 교환하는 상인집단이었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지게는『제가지 지게』이지만, 선질꾼들은 울진의 험준한 산을 넘어 이동하였기 때문에 산길을 다니기에 편리한 『지게 가지가 없는 지게』를 주로 이용하였다. 가지가 있어도 짧았다고 한다. 바(밧줄, 노끈)를 매어 물건을 당겨 매어 고정시켰기에 바지게라고도하며, 이들을 바지게꾼이리고 했다. 쪽지게라는 이름도 있다. 쪽지게(틀이 하나뿐)는 가지가 없는 데서 유래한 것 같다. 대체로 지게꾼들이 앉아서 쉬는 것에 비해 선질꾼들은 서서 쉬기 때문에『선질꾼』이라 했다.『등금쟁이』는 등에 짐을 지고 장사를 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세 가지 별칭을 가진 셈이다. 선질꾼들은 울진과 봉화 지역의 주요 오일장을 오가며 장사를 하였다. 울진 지역에서 생산된 건어물을 비롯하여 각종 어물, 미역, 소금 등을 봉화 지역의 오일장에서 판매했으며, 봉화 지역에 생산된 농산물, 피륙 (옷감 등), 담배 등을 울진 지역의 오일장에 판매하였다. 선질꾼들이 취급했던 품목들은 다음과 같은 민요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역과 소금 어물 지고 춘양장을 언제가노 / / 한 평생을 넘던 고개 이 고개를 넘는구나 / 서울 가는 선비들도 이 고개를 쉬어 넘고 / 꼬불꼬불 열 두 고개 조물주도 야속하다 // 대마 담배 곡물 지고 흥부장을 언제가노 / 오나 가나 바지게는 한평생에 내 지겐가 / 오고 가는 원님들도 이 고개를 쉬어 넘고 / 꼬불꼬불 열 두 고개 언저 넘어 고향 가노 / (후렴)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 시그라기 우는 고개 내 고개를 언제 가노 <십이령 바지게꾼 놀이, 발굴자 전직 교장 이규형 : 열두고개 언제가노. 울진문화원. 2010> 』
<발채> 지게 위에 펼쳐 얹고 짐을 담는 소쿠리 같은 거다. 울진에서는 바지게, 바소쿠리라고 했다. 흔히 싸리나무로 만들었다.
<길마> 소등에 짐을 얹을 때 씌우는 틀이다. 울진에서는『지르매』라고도 했다.
⑪ 그 밖의 농기구 : 낫, 도끼, 갈퀴, 못줄, 숫돌, 메
<낫> 나무나 풀, 곡식 따위를 벨 때 쓰는 농기구다.
낫은 가짓수가 많고 쓰임이나 지방에 따라 생김새도 조금씩 다르다. 낫에는 조선낫과 왜낫이 있는데 흔히 우리가 말하는 낫은 조선낫이다. 조선낫은 대장간에서 쇠를 불에 달구어 두드려 만들었다. 그래서 날이 두껍고 단단하다. 슴베(칼, 호미, 낫 따위에서, 자루 속에 들어박히는 뾰족한 부분)가 길고 날이 단단해 억센 풀이나 나뭇가지를 치고 다듬는데 쓰인다.
왜낫은 조선낫보다 날이 얇고 슴베가 짧아 가벼워서 쓰기는 좋지만 날이 부러지기 쉬워 부드러운 곡식과 풀을 베는데 쓰인다.
⑫ 축산 농구 : 어리, 둥우리, 쇠죽바가지, 작두, 코뚜레, 워낭, 부리망
<작두> 집집짐승한테 먹일 짚이나 풀을 써는 농기구다. 손작두와 발작두가 있다. 작업을 할 때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구유> 울진에서는 소죽통, 여물통이라고도 한다. 소, 말, 돼지 같은 동물들에게 먹이를 담아주는 그릇이다. 흔히 굵은 소나무를 파서 만들었다. 우리 조상들은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귀한 동물로 여겨 겨울에는 따뜻한 쇠죽을 끓여 주기도 하고, 정월 대보름에는 찰밥을 해주기도 했다.
<쇠죽바가지> 쇠여물을 줄 때 쓰는 나무바가지이다. 울진에서는 여물바가지, 소죽바가지라고 했다.
<부리망> 소를 부릴 때 소가 곡식이나 풀을 뜯어 먹지 못하게 소 주둥이에 씌우는 도구로 새끼를 꼬아 그물처럼 엮어 만든다. 울진에서는 소머구리, 꺼럭지라고 한다.
지역 정체성 찾기는 풀뿌리 문화 발굴 보전부터
이제 인류문명은 하루가 다르게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우리는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과학기술 문명시대에 살고 있다. 예전에 비해 농업생산기구는 빠르게 발달하고 있다. 스마트 농업으로 드론이 농약을 치고 로봇이 농장을 관리하는 시대가 되었다. 의식주의 생활모습도 마찬가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치를 김장독에 저장했으나 지금은 김치냉장고에 둔다. 맷돌에 갈아 먹던 음식재료는 믹서기를 쓴다. 가마솥밥은 전기밭솥이 해준다. 냉방기(에어콘)는 부채를 대신하여 여름을 시원하게 해준다. 지금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그러한 일을 대신하는 시대로 발전하고 있다.
앞서 우리는 울진의 농기구와 생활도구들을 살펴보았다. 울진의 농기구와 생활도구의 모습과 구조는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의 보편적이다. 하지만 어떤 것은 울진의 자연환경에 맞게 제작된 것도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풀뿌리문화인 옛 농기구와 생활도구들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 울진의 옛 농기구와 생활도구는 울진 조상들의 슬기와 애환이 담긴 지역의 풀뿌리 문화자료이다. 질그릇인 옹기나 물동이 하나에도 우리 조상들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것이다. 흙, 짚풀이나 목재 등의 재료로 만든 친환경 도구보다 플라스틱 등이 모든 생활용구를 대신하는 시대다. 과연 지구환경을 위해 어느 것이 바람직한가는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우리는 가끔 자기의 정체성 운운한다. 우리가 몸 부대끼며 살고 있는 그 지역의 자연, 역사, 문화 등을 모르고서, 어떻게 지역의 정체성을 논할 것인가? 정체성의 일차적 복원은 지역 풀뿌리 문화를 발굴, 보전하여야 한다. 이러한 일은 문화관광자원으로서뿐만 아니라 차세대 교육 차원에서도 긴급한 사안이다. 옛것을 살리는 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창조이다. 그 복원적 창조는 울진의 풀뿌리 문화가 망실 훼손되고, 사라지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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