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농부의 四季

최부열·최웅열 형제의 벼농사 이야기
기사입력 2022.04.2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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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이 보약이다.(2021. 삼광벼 햅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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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가 익어가는 들판

 

한국인은 밥심으로 살아간다?

우리는 예로부터 여러 가지 식재료가 있지만, 주식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이 대체로 높았다. 우리가 건강한 아이들을 보고 가끔 『아이구, 우리 쌀강아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건 쌀을 먹어 통통하고 건강하다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살가운 애정 표현이기도 하다. 한편 『쌀』을 경상도 사투리로 『살』이라고도 한다. 발음도 비슷하지만, 그 의미도 깊다. 우리는 쌀밥을 먹어야 건강한 살(몸)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쌀은 살이요, 쌀은 곧 우리 몸체라고 한다면 지나친 언사일까? 그리고 우리는 쌀을 오곡에서 으뜸으로 여겼다. 우리 겨레 식문화는 주류가 쌀 문화라고도 할 수 있다. 쌀은 단순 가공인 밥부터 여러 가지로 변신을 한다. 이를테면 우리의 떡을 보면 알 수 있다. 낟알이 하나하나 홀로이지만 쌀이 물과 합쳐져 익히는 순간 따뜻한 밥으로 변신한다. 떡은 밥이 한군데 모여 뭉쳐져 차지고 쫀득한 떡으로 다시 변신한 것이다. 쌀로 만든 막걸리 등도 마찬가지다. 우리 고유의 제의행사나 제사상에 밥과 떡, 술은 필수였다. 

 

우리는 또 흔히 밥이 보약이라고 한다. 밥을 잘 먹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데 가장 좋은 보약이라는 뜻이렷다. 현대에 들어 한국인은 예전보다 식생활 문화가 많이 바뀌어 서구화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아직도 밥이 보약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밥을 중요하게 여겼는지는 밥에 대한 존대 표현을 보면 알 수 있다. 바로 『진지』라는 말이다. 안부를 물을 때도 진지는 드셨느냐, 밥은 먹었냐고 묻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래서 『밥이 보약이다』라고 할 정도로 쌀밥을 최상으로 쳤다. 불과 40여 년 전 만 해도 해도 서민들은 일상식사에서 쌀밥에 고깃국으로 배불리 먹는 거였다. 오늘날같이 식재료가 풍요로운 시대 『밥이 없으면, 라면이나 스파게티 먹으면 되잖아요.』 하는 요즘 세대들에겐 배고픔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래서 『빵 없으면 과자 먹으면 되지요.』 하는 따위의 상식 밖의 말들은 세상을 물정을 모르는 세태나 실천력 없는 탁상공론을 풍자하는 말이기도 하다. 

 

어쨌든 필자에게는 『한국인의 뱃심과 그 에너지는 밥심이다.』라고 생각한다. 특히 6070세대들은 쌀밥을 먹어야 든든한 한 끼 식사를 한 것 같다. 아마 감성적으론 배고픈 시절의 추억 반추이고, 또 하나는 영양학적으로 쌀밥 특유의 찰진 성분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오곡 중 쌀을 가장 으뜸으로 치는 식량이라고 여겼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식생활 문화역사에서 쌀이 차지하는 부분은 절대 작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쌀을 가공하여 여러 가지 식품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주식으로 쌀을 단순히 익혀 먹는 밥 문화가 변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쌀을 먹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부터 쌀을 먹었을까? 농업의 역사를 보면 인도는 BC 7,000-5,000년대에, 중국은 BC 5,000년에 벼를 재배했다고 한다. 한국에는 기원전 2,000년경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 2003년 밀양시 산외면의 금천리 부산-대구 고속도로 공사현장에서 5천여 평 규모의 논터와 물을 대는 보가 발견된 것이다. 이 유적에서 벼농사에 필수적인 물을 가둬놓는 둑으로 사용했을 말뚝과 그물 모양의 나무들, 여기에서 물을 끌어들인 수로가 발견되었다. 이러한 고고학적 사실로 학자들은 우리나라에서 벼농사를 시작한 것은 기원전 약 3천 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것 또한 한반도에서 물을 이용한 논농사를 집단으로 짓기 시작한 연대이지, 실제로 야생 벼를 밭농사 형태로 재배하여 쌀을 먹기 시작한 것은 더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이런 추정은 1998년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 『오창과학산업단지 터』에서 1만3천 년 전의 『탄화 볍씨』 59개가 발굴되었다. 『소로리 볍씨』는 2000년 말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로 인정받았다. 중국의 볍씨보다 무려 4천5백 년이 앞섰고, 5천 년 전 인도 갠지스강 유역에서 재배된 벼의 유전정보와 70% 정도 비슷하다고 한다. 다시 말해 1만 5천 년 전에 이미 한반도에서 벼농사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연대이다. 따라서 고고학계에서도 소로리 볍씨 발견으로 벼농사의 기원이 중국이 아닌 한국으로 인정, 정설이 되었다. 


쌀밥을 먹게 해 준 고마운 볍씨 『통일벼』 

통일벼! 70년대의 우리나라 벼 품종 중 으뜸 다수확 품종이었다. 일명 IR667이다. 

1960년대 후반 식량 자급을 위해 우리나라 농업전문가들이 필리핀에 있는 유엔산하『국제미작연구소』(Intermational Rice Resarch Institute)에 파견되어 개발한 다수확 신품종이 IR667이다. 이 연구소의 앞머리 글자를 따서 667번째 개발한 볍씨라는 의미이다. 통일벼는 당시 어떤 품종보다 단위당 생산량이 월등했으나 농가에서는 심기를 꺼리고 하였다. 왜냐하면, 밥맛이 종래에 주로 심던 육백도 등 다른 품종에 비교해서 덜했다. 최대 단점은 벼알의 탈립성 때문이었다. 수확기에 낟알이 잘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에서 통일벼를 전 농가에 보급하기 위해 공무원들이 마을마다 다니면서 독려하기도 했다. 통일벼 보급도 군사 작전하듯이 시행되었다고나 할까. 어쨌든 통일벼 보급으로 단위 면적당 쌀 생산량이 획기적으로 달성되어 이른바 녹색혁명, 우리나라 주곡 자급이 되었다. 전 국민이 쌀밥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통계상으로도 확인해 보면 이 결과 단보당 쌀 수확량이 386㎏으로 일반 벼의 329㎏보다 17%나 증산되어 1973년에는 대망의 3,000만 섬 풍작을 이룩했다고 한다. 이어 1975년에는 3,242만 섬, 76년 3,596만 섬, 77년에는 4,170만 섬으로 단군 이래 처음으로 쌀 자급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농업역사에서 녹색혁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필자는 당시 울진농업고등학교에 다녔다. 보통작물 교과 시험 문제에 통일벼에 관한 주관식 문제가 출제되기도 했다. 이를테면 IR667은 어떤 품종을 교배하여 개발한 벼 품종인가? 또는 IR667은 또 다른 이름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개발했는가 등이다. 정답은 『1967년 자포니카(일본계)와 인디카(인도계)를 교배하고, 필리핀에 있는 유엔 산하 미작연구소(IRRI)가 개발한 IR8을 다시 교배시켜 신품종을 개발해 냈다. 바로 통일벼이다.』라고 썼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은 여러 품종이 개발되었지만, 당시 통일벼는 정부의 혼분식 장려 시기에 쌀밥을 자주 먹게 해 준 고마운 볍씨였다. 지금은 벼 종자만 해도 지역 특성에 맞는 여러 수십 종이 개발되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곡은 사람이나 동물이 식용하는 곡식을 이름한다. 즉 다섯 가지 곡물 또는 모든 곡물을 총칭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쌀·보리·콩·조·기장을 오곡이라 한다. 이 오곡 가운데 우리 민족의 주식은 대체로 쌀이다. 

 

2020년 현재 우리나라 쌀 생산량은 350만7천 톤이다. 2020년 우리나라 1인당 쌀 소비량은 약 60㎏ 정도라고 한다. 즉, 5천만 명 전 국민이 다 먹고도 남을 양을 생산했다는 이야기다. 올해 2021년도에도 벼농사는 대풍이 되었다. 어쨌든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처럼 해마다 대풍이 되었으면 좋겠다.


벼농사를 으뜸 농사로 여기는 최씨 형제 

울진은 바닷가 마을(해촌), 들마을(농촌), 산간마을(산촌)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지형이라 철마다 생산물이 다르게 나타나는 독특한 지역이다. 그래서 울진 해촌의 가을은 바다에서 오고, 산촌의 가을은 산에서 오고, 농촌의 가을은 들에서 온다고 한다. 지역적 생산물로 말하자면 가을 바다에는 오징어, 방어 등이 잡혀 풍어를 구가했고, 산촌에는 울진 황금 송이 등 버섯과 산나물, 약초가 짭짤한 소득을 주민들에게 안겨 주었다. 옛날 어른들의 말로는 다른 지역보다 흉년이 들어도 산과 들, 바다에 먹을거리가 많아 큰 탈 없이 지나가곤 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 옛이야기로 되었지만 어쩌면 복 받은 동네라고 할까요. 

가을 황금 들녘의 오곡은 농촌 사람들의 곳간을 채워주었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고 그 오곡 중 으뜸이 쌀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평생 벼농사를 지어온 농민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그 주인공은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 최부열(68), 최웅열(58) 형제이다. 최웅열씨는 현재 『사)한국농업경영인울진군연합회장』으로 활동 중인 농촌지도자이기도 하다. 이들이야말로 농사를 천부적 직업으로 여기고, 農者天下之大本을 실천하는 농사꾼이다. 더구나 그들은 농사 가운데서도 벼농사를 으뜸 농사로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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볍씨 소독 작업(좌), 볍씨가 싹이 튼 모습(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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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다 싹이튼 모를 놓는 녹화장 작업(못자리)(좌), 노음초 아이들이 근남 섬마실들에서 손모내기를 하고 있다.(2021. 05. 29.)(우)


모 농사가 반 농사다.

『아무리 기계라도 결국 사람 손이 가야 되지?』 충실한 모를 키우기 위해서는 볍씨 고르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모 농사가 반 농사다. 모든 농작물에 있어 모가 충실해야 잘 자라서 다수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볍 씨는 대체로 1마지기(200평) 기준으로 5㎏ 정도 든다고 한다. 충실한 볍씨를 기르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이 『염수선(소금물고르기)』이다. 4월 초에 한다. 볍씨를 고를 때는 소금물에 담가 위로 떠오르는 것은 건져내고 가라앉은 볍씨만 이용한다. 위로 떠오르는 볍씨는 속이 차지 않아서 가벼운 볍씨는 건져낸다. 이는 싹이 터도 충실한 모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소금물의 농도는 달걀을 띄웠을 때 그 표면이 500원짜리 동전 크기만큼 위로 올라오는 정도가 알맞다. 하지만 최씨 형제들은 이 과정을 생략한다. 왜냐하면, 요즘은 벼 품종이 쭉정이가 거의 없어 충실하기 때문이란다. 


대신에 열탕 소독은 철저히 한다. 아침부터 두 형제는 볍씨 소독으로 육묘공장에서 바쁘다. 볍씨는 소독약으로 약 이틀 동안 소독물에 잠가 두었다가 발아시킨다. 

먼저 볍씨를 15㎏씩 양파 자루에 담아, 모 상자에 뿌리기 열흘 전에 섭씨 60도에서 7~10분간 열탕 소독을 한다. 열탕 소독을 하여 키다리병 등 병해충을 예방할 수 있다. 열탕 소독이 끝나면 바로 찬물에 담근다. 이렇게 해야 볍씨에 들어 있던 발아 억제 물질이 빠져나간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볍씨 자루를 발아기에 넣어둔다. 2-3일이면 싹이 튼다. 싹이 튼 볍씨는 바람에 살짝 말린다. 건강한 모를 기르기 위해서다. 최씨 형제들이 하는 벼 품종은 일반벼로 삼광벼는 전체 논면적의 80%를 심고, 20%는 찰벼로 백옥찰을 심는다. 일부 기능성 벼로 향미, 향찰, 흑미 등을 심는다.

 

논에다 모판 내어 모 기르기

 

모 상자에는 아래 상토 깔기→볍씨 뿌리기→복토하기→물 뿌리기 순으로 파종 작업이 진행된다. 

모 상자에서 모가 어느 정도 자라면 못자리에 내어야 한다. 논을 정비한 못자리에 싹이 튼 모상자를 깔고 그 위에 부직포를 덮는다. 그리고 모내기 때까지 물관리를 한다.

오늘은 싹 틔운 벼 육묘 상자를 녹화장(논)에다 못자리를 설치하는 날이다.

육묘 논에는 동네 주민들이 10여 명이 일을 거들고 있다. 


손 모내기는 까마득한 옛날이야기

못자리를 설치한 후 본잎이 2~3장 나오면 그때 모내기를 한다. 울진에서는 5월 말이나 늦으도 6월 초가 되면 모내기를 다 마친다. 모내기할 때는 물을 얕게 댄 후 모춤을 가지런히 맞추어서 2~3cm 깊이로 얕게 심어야 새 뿌리가 빨리 내리고 새끼를 많이 치게 된다. 보통 포기당 3~4개의 모를 심는다. 모내기는 줄 맞추는 것이 중요한데 모심는 사람인 모잽이들의 속도를 맞춰서 못 줄을 옮겨야 한다. 

 

올해 근남면 노음초등학교의 농촌체험 프로그램 중 하나가 모내기 체험이었다. 그래서 5, 6학년 아이들 20여 명이 와서 필자의 논에 손 모내기를 한 바 있다. 처음에는 서툴고 모 줄이 바로 되지 않아 삐뚤했으나 시간이 흐르자 제법 손놀림이 좋아 반나절이 되어 150여 평 정도를 거의 심었다. 

 

하지만 손 모내기는 이제 옛말이 되었다. 기계화된 이앙기가 대신한다. 매화 최씨 형제는 하루 5000여 평 이상을 기계 모 이앙을 한다. 그래서 이제는 한동네 사람들이 공동으로 모를 심고 모내기 밥 먹는 시절은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최씨 형제는 앞으로 인공지능 시대 논농사는 로봇이 짓지 않을까 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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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열씨가 벼이삭 출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좌), 최씨 형제가 이앙기로 모를 심고 있다(우)


최씨 형제가 말하는 벼농사에서 중요한 3가지 

최부열(68)씨는 평생 벼농사만 지어서 벼농사 전문가라 할 수 있다. 벼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 핵심은 첫째 물관리 잘하기, 둘째 비료 알맞게 치기, 셋째 농약 제때 치기라고 강조했다.

 

<벼는 물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모내기한 뒤에는 논에 물을 대준다. 이것은 보온이나 양분의 공급, 잡초방제 등의 효과가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물을 대면 뿌리가 약해지거나 가지치기가 잘되지 않는다. 따라서 벼의 생육기에 맞추어서 물관리를 알맞게 해야 한다. 보통 모내기를 한 뒤 모 뿌리가 잘 내릴 때까지 7∼10일간은 10㎝ 정도의 깊이로 물을 대고, 가지치기(분얼)가 시작되면 물 깊이를 3㎝ 정도로 하여 가지치기를 촉진시킨다. 특히 최고 가지치기가 지난 뒤에는 일시적으로 물을 빼고 논바닥을 말리는 것이 좋다. 바로 중간물떼기이다. 모를 심은 후 30~35일 사이에는 논바닥이 갈라질 정도로 중간물떼기를 꼭 해야 한다. 벼의 일생에서 물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시기는 이때뿐인데, 중간물떼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벼가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여 수확기에 쓰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벼 새끼치기를 더 촉진시키려는 욕심 때문에 물떼기를 못하는 경우가 많으나, 이 시기는 헛새끼치는 시기이므로 과감히 물꼬를 떼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린 이삭이 분화하는 시기부터 물을 충분히 대고, 출수 전후 20여일 간은 물을 다소 깊게 대준다. 벼알이 여물어가는 기간에는 물을 얕게 대고, 출수 후 30∼35일 무렵에는 물을 완전히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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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억 5천만년 전 살아있는 화석 생물 긴꼬리투구새우(근남 섬마실들. 2021. 6.)

 

<비료 욕심내지 말자> 

벼농사에서 비료 치기는 모심기 전 밑 비료 치기, 가지치기 비료(모내기 후 15일 전후), 이삭거름 주기(모내기 후 60일쯤, 또는 출수 전 25일 전후)가 있다. 요즈음은 모심기할 때 딱 한 번으로 비료 치기를 끝내는 농가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비료를 너무 쳐서 벼농사에서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테면 시골 정서상 옆집 논과 비교해서 모심기가 끝나고 모가 노랗거나 성장이 시원찮으면 비료를 과다하게 주는 경우가 있다. 과다한 비료 시용(비료를 뿌리는 일)으로 벼농사 후기에 접어들면 이른바 『도복(벼 쓰러짐)』이 되어 벼가 논바닥에 쓰러져 수확량에 영향을 주게 된다. 또한, 과다한 비료 시용은 쌀의 단백질 함량을 높여서 밥맛을 떨어뜨리고, 문고병과 도열병 등 각종 병해충 발생을 조장하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비료 욕심내지 말자』이다. 최근 농업 당국에서는 친환경농업을 권장 유인하고자 볏짚 환원 정책을 펴고 있다. 추수 후 볏짚을 사료용으로 대체 말고, 콤바인 작업 시 바로 논에다 썰어 넣기를 권장하고 있다. 볏짚은 자연 유기물 퇴비이다. 이는 화학 비료 과다 시용으로 논이 산성화됨을 막기 위함이다. 


<농약은 제때 치되 과용 말자>

요즈음은 예전보다 농약을 거의 치지 않는다. 대부분 한 번으로 끝낸다. 병충해가 발생해서 농약을 칠 경우, 올바른 농약 사용법을 알고 쳐야 한다.

그래서 꼭 필요한 곳에 필요한 농약만 적기에 치기, 아무리 우수한 농약이라도 반드시 적용약제를 선택해서 방제해야 한다. 과다한 용량을 억제하고 반드시 적량 살포해야 한다. 이제는 농약 치기도 사람이 하지 않는다. 드론이 농약 치는 시대가 되었다. 

또 하나는 매화들이나 근남 섬마실 논에는 제초 농약을 치지 않은 결과 살아 있는 화석 생물인 『긴꼬리투구새우』가 나타나기도 했다. 긴꼬리투구새우는 3억 5천만 년 전 화석 생물이다. 현재는 환경영향평가 지표 생물이기도 하다. 환경부가 멸종위기생물 2급으로 지정했지만, 친환경 농가의 증가로 개체 수가 늘면서 2012년 5월 멸종 위기종에서 해제됐다. 이 새우는 웅덩이나 논에 서식하며 다리로 흙을 휘젓고 다녀 잡초의 성장을 억제하고, 유충을 잡아먹어 농사에 유용한 생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여름 들판에 잠자리가 떼 지어 나르고, 초가을 들판에 나가면 메뚜기들도 꽤 많이 만날 수 있다. 농촌에서 오염원이 줄어들고, 비료, 농약 등을 적게 치는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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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으로 농약을 치고있다.(근남 섬마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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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웅열씨가 콤바인으로 추수하고 있다(매화들)

 

요즈음은 정미소 운영에 바쁘다. 

벼 베는 시기는 재배조건에 따라 다르나, 대체로 북부지방에서는 9월 하순부터, 중부지방에서는 10월 초순부터, 남부지방에서는 10월 중순부터 하순까지이다. 울진지방은 10월 중순부터 10월 말이면 추수가 모두 끝난다. 

 

요 며칠 전 취재를 갔더니 벼 가마를 실은 작은 트럭들이 정미소를 드나들었다. 농민들은 수확한 벼를 일부는 수매하기도 하고 농협에 팔기도 한다. 수매하지 않고 찧은 쌀은 주식으로 이용되고 일부는 동기 간에 나눠주기도 하고,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한다. 최씨 형제가 운영하는 정미소는 할아버지 대부터 3대째를 이어져 왔다. 예전에 기계 소리가 탕탕한다 해서 탕탕방아라 했다. 탕탕방아 나락 찧은 기계로부터 지금은 최신 시설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지금의 도정시설은 약 20년 전에 신설했다. 최씨 형제 정미소에서는 매화면 벼 농가부터 근남면 일부 농가까지 이곳 정미소에서 벼를 찧고 있다. 추수 후 2개월은 벼 찧는 정미소 운영으로 바쁘다.

 

막 수확한 벼는 20~25% 정도의 수분을 가지고 있다. 탈곡기로 수확한 벼는 바로 건조장으로 직행한다. 이듬해 뿌릴 볍씨는 잘 말려서 수분율을 15% 이하로 떨어뜨려 보관한다.

탈곡 후 충분히 잘 말린 볍씨는 3년 정도 보관이 가능한데, 발아율은 50% 정도로 떨어지기 때문에 종자를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해서는 밀봉해서 냉동실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한편 정미소를 운영하는 최씨 형제는 매화면 일대의 벼 농가들이 생산한 나락 찧기로 바쁘다. 나락을 찧는 10월, 11월, 약 2개월간은 밤낮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다. 야간작업 때문에 잠이 부족하단다. 그래도 올해도 대풍이 되어 감사한 날들이다.


겨울철에도 바쁘다.

벼 농사꾼 최씨 형제들이 조금 한가한 계절이지만 내년 농사를 위해 농기계 수리, 정미소 관리, 벼 논갈이, 볍씨 갈무리 등으로 바쁘단다.     

1년의 벼농사 과정의 핵심은 볍씨 싹 틔우기부터 시작해서 모판 나르기, 모내기, 피사리, 추수까지 결국 농사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앞으로 인공 지능 시대에 농사를 관리하는 로봇이 등장해도 결국은 사람이 그 로봇을 작동시켜야 한다. 영농 기계화가 되어도 결국 사람의 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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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열 형제가 운영하는 정미소(좌), 정미소 나락 찧기 작업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우)010.jpg

가을걷이를 한 매화 들판  

 

땅은 농민에게 보물이다.

최씨 형제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있기에 농민이 되었다. 그래서 최씨 형제는 농사짓는 땅이 보물이란다. 논농사를 왜 짓는가?라는 필자의 물음에 땅이 있어 농사를 짓고, 우리 주식인 쌀은 없어서는 안 될 먹을거리이다. 우리나라 주요 먹을거리인 쌀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데 큰 자부심과 보람으로 벼농사를 짓는단다. 벼 농가로서 정부 당국에 바라는 것은 생명 산업인 농업 중 쌀은 우리의 주식으로 식량안보 차원에서 더욱 지원과 육성을 바라란다고 했다. 그래서 생산비 증가에 따른 쌀값을 현실화해 벼 농가의 소득을 보장해 주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들은 땅을 보물로 여길 만큼 반만년 동안 우리 민족의 먹을거리를 책임져온 사람들이다. 


남수산에 햇살이 넘어가는 매화 들녘, 여기저기 볕 짚 덩이가 둥글게 무리 지어 있다. 들판에는 황혼이 내려 황량함을 덮어주고 있다. 내년에도 저 들판에 벼 이삭 황금 물결이 가득하리라. 저녁에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벼 찧는 기계를 살피는 최씨 형제의 거친 손을 보면서, 우리 먹을거리인 식량을 생산하는 그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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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좋은 농사꾼 형제 최부열·최웅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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