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화가, 홍경표의 색으로 떠나는 여행

50회 기념 작품전시회에 부쳐
기사입력 2022.06.23 16:20  |  조회수 136,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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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표 선생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죽변 등대 가기 전 오르막 그의 화실에는 겨울 햇살이 환했다. 화실에 들어서는 순간 대형화판에 불끈 솟아오르는 일출이 더욱 눈길을 끌었다. 일출의 빛이 화실 빛을 더욱 환하게 했다. 그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를 안 지는 30여 년이 다되어 가지만 그는 늘 환한 얼굴이다. 그의 해맑은 얼굴과 웃음은 그만이 가질 수 있는 특허이다. 자리를 권하기에 앉아서 화실을 죽 둘러보았다. 손수 내온 커피가 따뜻했다. 지난번 50회 전시회를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화력(畵力)이 대단하다고 했다. 글쟁이들에겐 문장력이라 하듯이, 화가에겐 화력이라고 농담으로 건넸다. 이 집은 부모님이 살던 옛집이자 자기가 자란 정든 집이다. 지금은 화실 겸 작품 보관실로 쓴다고 한다. 그가 안내하는 옆방으로 갔더니 작품이 마치 도서관에 책 꽂듯이 꽂혀 정리되어 있었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예전에 죽변의 해와 파도를 그린다고 동네 바닷가에 컨테이너로 화실을 만들어 작업하고 작품도 보관했는데 파도와 결로현상 등의 습기에 작품이 많이 망가져 버렸단다. 지금은 결로현상을 방지하고, 항온, 항습에 신경을 써서 작품보관에 철저히 유의하는 편이란다. 아이고 아까운 작품, 내가 더 아쉬워하자 그는 자기의 부주의라 하면서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홍경표! 울진 죽변이 고향이다. 그는 여느 학생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가정에 태어나 당시에 누구나 그러했듯이 시골에서 어렵게 진학을 꿈꾸는 학생이었다. 그는 미술 전공이 아닌 국문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필자가 처음 듣는 말이었다. 왠지 그의 그림 설명문장이 단아해서 의아해한 적이 있었다. 눈치채지 못한 아둔한 나의, 소치여. 비로소 홍 작가의 정체(?)를 알아서 쾌재라 할까. 그런데 그가 전공과는 다른 길을 걷다니 ㅎ, 오랜만에 그의 그림 이야기에 대해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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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보관실(일부)

 

■ 이번 50회 전시회 소감 한 말씀 하시길

『작가로 산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직업이에요. 특히 작가는 짜인 세상과는 또 다른 세상을 펼쳐 보이는 사람이잖아요. 대개 예술인들이 다 그렇듯이 짜여진 틀 안의 세상보다 고정되지 않은 틀 밖의 다른 세상을 바라보기에 사회와의 갈등과 마찰은 당연한 일이지요. 틀에 박힌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갈망하는 업이라 할까요? 그에 따르는 것은 외로움 즉 고독이겠죠. 그것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 작가지요. 그간 여기까지 오기에는 숱한 어려움이 있었죠. 그걸 견뎌내기까지 가족들과 한촌의 무명작가를 아끼는 지인들의 도움이 컸지요. 그래서 이번 50회 개인전은 그분들에게 제 고마움을 전하는 전시회였습니다.』그는 겸손하게 음양으로 도와준 분들께 감사를 표했다.


■그에게 던져진 원초의 다이나마이트. 화가 유영국! 작품

필자가 그의 유화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뭐 저런 그림이 있어 할 정도로 충격적?이고 독특했다. 그냥 화판에 물감을 더덕더덕 칠한 것 같은데 입체감이 나타났다. 저 강렬한 원색, 꿈틀거리는 생명력, 생동감, 저 원초의 힘. 신선했다. 묘했다. 뭔가 달라. 그래서 홍 작가에게 넌지시 어린 시절 그림에 대한 소질을 나타낸 적이 있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사준 크레용으로 미술 시간에 그림을 즐겨 그렸고, 남들은 6학년 때까지 크레용 한 통이면 되는데 홍 작가는 한 학년에 두통이나 소비했다고 하니 일찍부터 그림에 흥미가 있었다고 보겠다. 그래서 그림 잘 그리는 학교 대표로 선발되어 각종 미술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시골의 교육 여건상 그림 공부를 계속 이어가기에는 예술 전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그림에 대한 흥미와 희망을 이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아이들의 예술에 대한 소질을 발견하여 이어가고 계발시키지 못하는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가난과 예술에 대한 시골의 인식 환경은 미대 진학에 부정적이었고 국문학으로 진로를 변경하고 학사 논문으로 [문장지를 통해서 바라본 화가 근원 김용준과 시인 정지용에 대한 비교 연구]를 발표한 그가 전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우연이었다. 40여 년 전이다. 어느 미술 계간잡지에서 한국의 10대 화가에 유영국이라는 분이 나와 동향인 울진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아닌가? 울진에 이런 분이 있었다니! 울진사람인 나도 이분처럼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될 수 있겠구나. 뭔가 가슴에 꿈틀거린 것이 있었다. 강렬했다. 유영국! 그의 가슴에 던져진 이름 석 자. 다이나마이트 같은 기폭제였다. 그것은 지금도 작동 중이란다. 유영국이라는 이름 석 자는 그를 화가의 길로 이끈 동인이었다. 아, 올해 2022년이 유영국 선생이 타계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뭔가 당국과 울진 미술계에서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게 필자의 우문이다. 이에 대해 홍 작가는 당국에 할 말이 많다. 그는 이미 십수 년 전에 최초로 유영국 울진미술관 건립에 대해 발의한 사람이다. 그는『유영국 미술관 설립과 그에 대한 투자는 긴 안목으로 내다봐야 할 사안이다. 유영국 미술관 건립에 대한 가치는 경제적 가치를 넘어서 현재 울진군의 대외적인 신인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고 그의 작품은 이 지역에 환상을 불러일으켜 울진을 입체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라고 했다. 지금은 유야무야되었으나, 다행히 울진군에서 생가를 매입해 리모델링 중이다.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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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림 공부를 독한 마음으로 시작한 독학생이었다. 초창기 서울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어려움도 많았다. 사사(師事) 없이 자기 세계를 독창적으로 계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를 오늘에 있게 한 것은 소질과 뚝심 그리고 끈기였다.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내친김에 미술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갈구한 만학도로서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회화전공으로 석사까지 마쳤다. 그야말로 주화독야화독(晝畵讀夜畵讀)이었다. 그래서 그는 날마다 어제의 나와 결별하고,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되어서는 안 되고,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와 결별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한마디로 일신일일신우일신(日新日日新又日新)이라는 명언이렸다!

그는 날마다 다시 태어나고 있다. 그의 그림이 증명한다. 50회 전시회를 기점으로 또 하나의 변혁적 창작이 계속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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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렬한 원색의 화가, 그 꿈틀거림 생명력!

내가 홍 작가의 그림에서 모네의 인상파적 또는 고흐의 화풍을 느낀다고 하자 그는 인상파에 대한 해박한 해석을 내놓았다. 전통적인 그림의 개념을 뒤흔든 인상파는 이 세상에 고유한 색은 없으며, 순간순간마다 변하는 색채의 인상을 표현한다고 주장하는 일군의 미술 사조다. 인상파의 아버지는 모네가 아니라 쿠르베라는 사람이 효시이고, 인상파는 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산업혁명의 산물이라고도 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서구의 미술가들은 소위 궁정 화가들로서 왕실이나 귀족들이나 교회의 요구에 따라 인물화나 정물 요소가 많은 화풍으로서 고전적, 낭만적이었다는 것, 다시 말해 빛이 고정된 공간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것, 인상파는 그러한 굴레에서 벗어나 야외에서 빛에 따라 사물을 그리게 되었다. 빛을 중요한 회화적 요소로 간파한 것이다. 빛은 시간에 따라 바뀐다. 인상파 시대는 시간을 그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는 그 시대에 물감을 짜는 튜브가 개발되었다는 것. 그전에는 물감을 담을 용기가 변변치 않았지만, 튜브 개발로 칼라의 이동이 가능해져 밖에서도 작업이 편리해졌다는 것이다.

 

인상파 시대는 흐르는 시간을 담아내기 유용한 기법이라 할 수 있는 짧게 끊어치는 듯한 터치기법이 대두되었다. 홍 작가의 작품에서도 주요한 기법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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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작품에서 인상파적 + 야수파적인 성향이 강한 그만의 독특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는 나의 아둔함을 깨어버렸다. 그는 예술의 종말론을 말했다. 종말론? 그는 아서 단토의 종말론이 예술 자체의 종말이 아니라 지금까지 모든 방법의 예술 행위표현들은 다 나왔다는 것이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 헉! 그렇네. 사실 독일의 표현주의에서 가장 많이 영향을 받았지만, 마티스와 피카소, 근현대 작가까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홍 작가의 작품 경향과 21세기 회화기법은 무슨 종파적인 사조보다 어느 한 곳에 쏠린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아울러 제작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그림을 보는 나의 소갈머리 없는 화평이랄까를 약간 언급한다. 다시 말해서 나는 이래서 그의 그림을 좋아한다.


첫째 강렬한 원색을 쓰고 있다. 삼원색이 어울려 저 강렬한 그 무엇! 원초적 생명력이랄까

그 하나가 일출 장면이다. 해돋이는 독특한 작품이다. 지금까지 나는 울진 바다에서 울진 해돋이 장면을 이렇게 강렬한 원색으로 솟아오르는 생명력을 그린 작가가 드물다고 생각한다. 그의 그림 일출을 보면 가슴과 사타구니에서 뭔가 불컥한다. 어이쿠, 불순하고 야한 생각, 관능적 본능, ㅋ, 생명은 희망이다. 저 우주에서 오는 강렬한 꿈틀거림, 생명력, 작가는 그 너머의 그 무엇을 보고 있을까? 신새벽을 깨우고 불끈 솟는 바다의 붉은 혓바닥! 하나 거대한 용트림 일출!

울진 바다의 장엄함을 그의 예리한 눈이 놓치랴!


둘째 대담하다. 대담하다는 뜻에서는 거침이 없다는 것과 거칠다는 것이다. 야성이다. 투박하다. 순수하다. 그의 그림은 달콤하고 세련된 흰설탕이 아니라 걸쭉한 원색의 흑설탕이다. 달콤한 초콜릿이 아니라 걸쭉한 조청이다. 불투명의 투명, 뒤엉킴과 질서가 혼재한다. 조화와 부조화, 묘한 합일체다.

 

저 붉게 타오르는 금강소나무를 보라. 푸른색 바탕에 짙은 녹색, 무한하고 서늘한 우주 같다. 어디 그뿐인가. 금강송 줄기에 흐르는 붉은 원색, 붉게 타오르는 용광로 같은 불줄기가 뻗쳐 오른다. 혹은 녹아내리면서 푸른 기운을 뿜고 있다. 저 뿌리는 심연의 용암과 닿아 있을 것이다. 작가의 가슴에 꿈틀거리는 대지의 기운이다. 작가의 혼불일게다.  

 

셋째 그는 울진의 자연을 그렸다. 파도, 금강소나무, 일출 등이다. 나는 그중에서 파도를 좋아한다. 울진 바다는 늘 출렁거린다. 파도 때문이다. 포효한다. 희고 푸른 이빨을 드러낸 거대한 파도들이 일순간 한 송이 꽃으로 통쾌하게 피어난다. 원초적 바다의 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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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표의 파도는 울진 바다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울진의 자연(원초적 바다)을 이만큼 작품화한 작가도 드물다. 그는 왜 파도를 그릴까? 파도가 끌고 오는 저 거대함은 무엇일까? 파도 뒤에 끌려오는 저 팽팽한 수평선은 또 무엇일까? 수평선이 도대체 있는 걸까? 그가 보고자 하는 현상과 인식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인생도 하나의 거대한 파도 같은 거품일까? 저절로 일어나는 저 파도에도 생각이 있는 걸까? 나의 망경과 망식은 부질없는 걸까? 그의 파도를 보았을 때 쫄아빠진 어리석고 어리석은 망상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의 캔버스엔 파도가 솟구쳐 치고 있다. 그는『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고 하였다. 자기의 지역을 가장 잘 표현하고 그것을 주제로 삼아, 그 유일성을 보편적으로 나타내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작가이다. 가장 울진적인 것에서 비로소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된다. 라고. 그게 바로 자기의 본질을 찾는 아이덴티티, 뿌리, 원형질? 아닐까? 동감이다. 그가 존경하는 추상화의 세계적 거장 울진이 낳은 유영국!『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고향 울진의 산을 즐겨 그렸듯이 말이다. 울진의 바다와 산은 유영국의 작품에서 원형질이었다. 그가 남긴 명작 중 어떤 것은 지금 수십억 호가한다.


넷째 뱀에 다리가 있나, 그래도 사족을 하나 붙인다면, 홍경표 작품에 드물게 사람 살이 모습이 보인다는 거였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쓴 사람들, 의자에 빙 둘러앉아 대화하는 듯한 사람들이 담긴 작품 등이다. 나는 앞으로 울진의 화가들은 울진사람들의 일상의 모습을 좀 많이 그렸으면 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고흐, 이중섭, 박수근의 작품에는 당 시대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담긴 작품이 많이 있다. 일례로 고흐의『감자 먹는 사람들』이다. 흐릿한 등불 아래 가난한 사람들이 하루 일상을 마치고 감자를 먹고 있는 일상의 투박한 모습이다. 가슴 짠한 감동이다. 나의 가슴에도 짠한 감동이 이는 울진사람들의 일상 모습이 나타난 작품을 더욱 기대해보는 바이다.


■작가도 먹고 살아야지

몇 년 전 서울에서 시나리오 작가가 굶주림에 견디다 죽었다. 인간은 존엄하다. 예술인이 위대한 작품을 만든다고 해서 구름 위 신선처럼 불로초를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인간이다. 작가는 배가 고파야 명작이 나온다고? 이제는 말 같지 않은 이 말은 사라져야 한다. 궁핍은 사람을 망가뜨릴 뿐이다. 인간의 존엄을 해쳐가면서 나온 위대한 작품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가난 속에서 예술을 창조한다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아니다. 예술은 당근 길어야 하고, 작품 인생도 살짝 길어야 한다. 죽은 뒤에 불후의 명작도 좋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그림도 생전에 잘 팔리면 더욱 좋겠지. 

 

나의 썰은 이만하고, 홍 작가의 그림판매 수입이 진짜 궁금했다. 그는 겸연쩍게 말한다. 그림을 그리고 나서 이십수 년 만에 딸아이 대학등록금을 처음으로 애비의 이름으로 댔다고 하니 무명작가의 설움을 그 누가 알겠는가. 그간의 집안 경제는 아내가 꽃집을 운영하고, 꽃 아트 작가로서 활동하여 꾸려갔다. 그는 언제나 아내 김영숙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아내는 그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유화 물감값, 캔버스값, 각종 전시회 부대 비용 등을 말없이 챙겨주었다. 유화 물감값만 해도 일 년에 2천만 원, 화판인 캔버스값도 일천여 만원이란다. 재료비만 모두 삼천여만 원이다. 만만찮은 돈이다. 그만큼 벌어다 주어도 시원찮을 일인데, 나는 속으로 당신은 아내 김영숙을 수천 번 업어 주어도 모자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작품은 아내의 지극한 사랑과 뒷받침, 홍 작가의 땀과 노력과 열정의 열매다. 허허! 틀린 말은 아닐지어다.

 

이제 작품이 조금씩 팔리기 시작한 게 겨우 10여 년 정도인 2010년 초부터랄까. 그의 작품은 대형작의 경우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 서울의 유명 아트옥션에서 지금은 그의 그림을 구매하기 위해 여기 죽변까지 직접 방문한다고 한다. 시골 작가, 홍경표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여 인지도가 높아진 것이다. 최근에 대형작『일출』이 옥션에서 경매되고 컬렉터들에게 회자된다니 참 잘된 일이다. 평생을 예술가로서 인내하며 달려온 인생인데, 그에 비하면 작품값이 턱도 없겠지만. 홍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인상파 최고의 작가였던 모네는 20세기 초반까지 살았고 승용차도 끌고 다닐 정도로 부를 누렸다고 한다. 모네는 작품의 유명세와 장수까지 했다니 복을 누린 작가였음에 틀림이 없다고 하겠다. 홍 작가도 그리되시길 기원한다.


그가 지금까지 그린 그림의 수는 수천 점이란다. 작품이 많아질수록 작품관리 보관이 걱정이다. 이 세상 뜨기 전 정신이 온전할 때, 성에 차지 않는 작품은 후손들에게 짐을 지우는 일이고 쓰레기이니 불태워 없애겠다고 하는 그의 말에 예술가다운 결기가 보인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그 아까운 명작을. 어쨌든 잘 보관하는 것이 급선무 같다. 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하던 예술작품이 사후에 명작이 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이런 생각에 허점을 찌르는 한마디, 유영국 선생님도 생전에 자기 전시실이나 이런 걸 만들지 말랬다고 한다. 역시 뭔가 생각이 다르구나.


■행동하는 작가, 홍경표

홍경표 작가 하면 또 하나 떠오르는 이미지는 자타가 공인하는 지역사회 시민운동가다. 그는 지역 사회문제에 고민도 많고 실제 행동도 하는 사람이다. 내가 굳이 이름한다면 행동하는 작가? 홍경표, 왜 그는 자신이 울진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와 관련한 일화 한 토막이다. 지역 공기업에서 그의 대형 작품을 상당한 가격에 구매하기로 약속한 것. 그런데 갑자기 구매가 취소된 것이다. 그 연유는 원전반대에 앞장서는 인물이기 때문이란다. 상부의 지시라서 어쩔 수 없다는 간부의 말에 그가 일갈한 말이 인상적이다. 

『당신도 그 직업에 수십 년 종사했고 나도 화가로서 수십 년 살아왔는데, 돈 가지고 장난치지 맙시다.』 했더니, 그 간부는 멋쩍어하면서 가버렸단다. 벌써 십수 년 전의 일이라면서 씁쓰레했다. 


참고로 그는『대한민국미술대전』특선을 비롯하여 경북도전 최우수상, 신라미술대전 최우수상 등 여러 수상을 한 중견작가다. 그의 작품이 소장되거나 게시되어 있는 곳은 외교통상부, 한전프라자, 포항시립미술관, 경북도청, 삼성전자, 고려제약, 울진군청, 부산상호신용금고, 울진경찰서, 울진자활센터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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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으로 떠나는 여행 작가, 빛의 화가 홍경표!

대담하는 동안 벌써 오후 2시가 넘었다. 중년의 햇살이 처마 끝에 다가온다. 빛은 빛을 물고 어둠의 세계를 지나오는 동안 저 억겁의 어둠은 촌철 같은 광년이 되었다. 어둠은 희망이다.

 

우리는 자연에다 인위적인 것을 붙여 언술로 『희망』이다라고 했지만, 사실은 자연이 그러할 뿐이다. 하지만 홍경표는 자연의 그러한 자연을 원초적 빛을 찾아 떠나는 인위의 자연의 아닌  무위의 자연을 찾아 떠나는 작가 같다. 

 

처마 끝에 머무는 햇살 한 조각, 화실이 따뜻하다. 그의 배웅하는 인간미 넘치는 웃음이 화폭에 넘쳐난다. 그는 끊임없이 주야독화(晝夜獨畵)로 고독을 태양에 불태우고, 또다시, 심연의 바다에서 불덩이를 끌어올릴 것이다. 저 깊은 용암을 물감 삼아 바다에 풀어헤칠 것이다. 끊임없이 엎어졌다 일어서는 죽변 바다의 파도는 또다시 생명력으로 굽이칠 것이다. 오늘 밤에도 그는 울진의 해와 달과 바다와 자연을 벗 삼아 유영한다. 그래서 홍경표의 원초적 생명력! 그 꿈틀거림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색으로 떠나는 여행 작가, 『빛의 화가 홍경표!』나는 이 주제가 홍경표에게 딱 맞는 말이다, 라고 생각한다.

 

임인년 새해, 호랑이가 포효하듯이 울진에도 그의 작품세계가 우리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좋은 예술적 감성을 키우고, 한편 마음에 좋은 치유가 되고, 또한 그의 단단한 화력이 한국화단에 또 하나의 획을 그을 역사가 되기를 바란다. 

글쎄 이렇게 써 놓고 나니 내가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뭘 알았던가, 부끄러울 뿐이다. 다만 그가 성공하기를 두 손 모은다.

 

홍경표(洪景杓 Hong kyeng-pyo)

 

 

 

·1960년 울진 죽변 출생

·홍익대학교미술대학원(석사, 회화전공) 졸업

·개인전 50회, 초대전 및 단체전 500회

·키아프, BAMA, Kart부산국제아트페어, 경주아트페어 등 30회 아트페어 참여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경북미술대전 최우수상과 특선 3회, 신라미술대전 최우수상과 특선, 경북미술대전 초대작가상 수상

·작품소장처 : 호주시드니총영사관, 포항시립미술관, 경북도청, 삼성전자, 고려제약, 한전프라자, 상호신용금고, 울진군청, 울진경찰서, 울진자활센타 

·현재: 한국미협, 신작전, 신미술회, 구작회, 울진미협 회원 

·대한민국미술대전초대작가, 경북미술대전초대작가, 신라미술대전초대작가

·심사위원 역임: 나혜석미술대전, 울산미술대전, 대전시미술대전, 신라미술대전, 경북미술대전 

·주소-경북 울진군 죽변면 죽변 등대길38   

·연락처 010-3538-1843, badada-arthong@hanmail.net

 

[홍경표 작가 노트]


그날 그날 짝막한 단상들을 모았습니다. 

시가 시인을 짓고

그림이 화가를 그린다.


내가 사는 곳은 바다를 끼고 있는 항구다. 어부들의 삶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일상적으로 보아온 나에게 평화롭고 고즈넉한 정적인 분위기의 그림은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따라서 삶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격렬한 붓 터치와 나이프 자국은 결코 우연의 소산이 아니다. 일상적인 삶에서 보고 느끼는 바다에 대한 인상은 물론이려니와 나도 모르게 바다로부터 받아들이는 생의 에너지가 육화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힘차고 거칠게 움직이며 삼킬 듯한 파도와 떠오르는 태양과 어부들의 강인한 삶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을 것이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일렁거리는 태양과 거친 바다 환경이 강인한 어부를 만들고, 그들과 일상적으로 접하는 나 또한 그들로부터의 영향을 부정할 수 없다. 어쩌면 나의 강렬한 붓 터치는 태양과 바다와 어부들을 향한 동류의식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거칠고 과감한 붓 터치로 생명의 에너지를 극대화한다.


바다와 태양을 표현하는 일은 생의 에너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나의 작품은 마치 숨 가쁘게 돌아가는 격정적인 춤사위를 연상케 하는 속도감과 리듬감이 살아 꿈틀거리는 것이다. 원색적인 색채와 거칠고 빠른 터치가 어우러지면서 지어내는 동적인 이미지는 시각적인 쾌감을 불러일으키고 인간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있는 원시적인 야성을 자극하여 생의 원초적인 감정을 일깨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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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실린 일부 작품 사진 등은 홍경표 작가가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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