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토박이 축산인 황흥수씨 이야기

기사입력 2023.04.05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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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장의 ‘사정사‘


아직은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이른 새벽인데 자동차 엔진 소리와 소들의 울음소리들이 뒤섞여 매우 소란스럽다. 매화 우시장이다. 축산 농민들은 싣고 온 소들을 자동차에서 내리고, 지정된 말뚝에 매기까지 매우 분주하다. 소들은 낯선 환경에 금방 적응이 안 되는 듯 주인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가지 않고 앞발을 뻗어 버티기 일쑤다. 가끔 성질이 괴팍하여 날뛰는 소들 때문에 위험한 순간도 많다. 소들이 정해진 말뚝에 다 매어지면 사정위원들과 감정사가 와서 임신 여부를 확인하고, 소의 상태를 면밀히 살핀다. 이를테면 이모색이라든가, 다친 부위가 없는지, 기형은 아닌지, 병든 소는 아닌지를 관찰한다. 그뿐만 아니라 흑비나 버짐, 발톱의 이상 유무까지 세심히 살펴 흠결을 족집게처럼 집어낸다. 이렇게 소의 특징이 파악되면 하자에 대한 내용을 경매표에 명시하고 입찰 예정가를 산정한다. 만약 출하된 소의 흠결을 사전에 고지하지 않고 매매되었을 시 나중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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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우시장에서 예정가액을 산정하는 사정사들

 

황흥수 사장은 2주에 한번 열리는 매화 우시장에서 ‘사정사’로 일하고 있다.  

‘사정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소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륜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소의 외형이나 소의 성격. 육질 등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감별해 낼 수 있는 능력자라야 한다. 

또한 전국 우시장의 시세나 전망도 손바닥처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만큼 소에 대해서는 전문가라야 할 수 있는 일이 ‘사정사’이다. 

황흥수 씨는 울진에서 태어나 약관의 나이에 소 사업을 시작한 이후 70이 된 지금까지 오직 소와 함께 살아온 토박이 축산인이다. 그래서 남들이 ‘소 박사’라 부른다.


황흥수 씨의 가계와 유년기


황흥수씨는 평해 황씨로 선대들은 평해에서 살았다. 고조부 때에는 평해에서 상당한 부농소리를 들었다.  집에 일하는 일꾼이 30가구 정도였다니 가히 짐작할 만하다, 

 

그의 선조인 황한기(黃漢基) 씨가 살던 때는 시국이 매우 불안전하여 ‘난리가 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당시에는 평해군과 울진현이 분리되어 있던 때라 울진 쪽으로 이사를 가기로 하고, 울진군 북면 주인리의 ‘독골’ 이라는 골짜기로 이사를 했다.  

 

새로 이사 간 북면 주인리는 황흥수씨네가 생각했던 분위기가 아니었다. 어차피 농사를 주업으로 삼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물과 농토가 흔한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가까운 울진읍 정림리로 이사를 했다.

 

황흥수씨의 부친은 정림리에서 다시 농토를 장만하고 농사를 지었으나, 농산물을 판매하려면 읍내 시장과 가까워야 하는데 거리가 멀어 불편하였다. 부득이 읍내리와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으로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울진읍 명도리 ‘돈돗골’에 집을 장만 하고 이사를 하게 되었다.


황흥수 씨는 1954년 2월 9일 부친 황계영씨, 모친 문봉강씨 사이에 맏아들로 태어났다. 위로 누님 두 분과 아래로 여동생 3명, 남동생 2명을 두어 모두 8남매였다.

집은 읍내와 가까운 명도리로 이사를 왔지만, 식구는 많고 농토는 적어 아무리 부지런히 일해도 생계유지가 어려웠다.       

 

황흥수 씨는 ‘울진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였다. 같은 또래의 친구들이 검은 교복에 모자를 쓰고 학교에 다니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친구들은 학교에 갈 때 어린 황흥수는 지게를 지고 먼 산에 가서 나무를 해와야만 했다. 지금도 가끔 ‘울진초등학교 54회’ 동창생들이 모이는데, 황흥수 씨에겐 유일한 동창생 모임이다 보니 이 모임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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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도리 돈돗골 옛집


소 장사를 시작하다


황흥수씨는 차츰 나이가 들면서 가난을 벗어날 궁리를 하기 시작했고, 남들이 사는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

 

황흥수씨네가 살고 있는 돈돗골 마을은 불과 스무남은 집이 사는 작은 촌락이다. 그렇지만 다른 마을에 비하면 소를 많이 키웠다. 그리고 마을 어른들은 대부분 소 장사를 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농사를 지으려면 반드시 소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집집마다 한두 마리씩의 소를 키웠다. 황흥수 씨네도 두어 마리의 소가 늘 있었다. 

 

어느 날 소 장사를 하시는 이웃 어른이 와서 황흥수씨 부친과 몇 마디 흥정하더니 소를 몰고 나갔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시장에 가서 얼마를 받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일부러 짬을 내어 소를 팔러 가는 소 상인들의 뒤를 따라 우시장에 나가 보았다. 

 

생전 처음 따라가 본, 우시장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출하된 소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시장은 시끌벅적하였다. 

 

시장을 몇 바퀴 돌아다니며, 그들이 흥정하는 과정과 소의 흠결을 찾아내는 모습들을 유심히 보았다. 소 상인들은 오랜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라 소를 보면 한눈에 흠결이 보이는 듯했다. 소의 입을 벌리고 이빨을 보는가 하면 허리가 굽었다는 둥, 털이 윤기가 없다는 둥, 버짐이 있다는 둥 별별 흠결들을 찾아내어 소 값을 깎았다. 

 

평소에 안 보이던 소의 특징들이 상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새삼스럽게 보였다. 

 

황흥수씨의 관심 사항은 엊그제 자기 집에서 팔았던 소가, 우시장에서 얼마나 받고 팔리는가가 가장 궁금했다. 상인들은 소를 중간에 놓고 몇 차례 실랑이를 하더니 흥정이 됐는지 우시장 구석에 있는 국밥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모르는 척하고 뒤따라 들어가 보니, 서너 사람이 모여 국밥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주발씩을 마시면서 돈을 치르는게 보였다. 주의 깊게 살펴보던 황흥수 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엄청나게 비싸게 팔려 나가는 것을 본 것이다.  

 

황흥수 씨는 울진 시장과 매화시장을 번갈아 다니는 사이, 시장 체계가 이해가 되었고 장사하는 요령도 짐작이 갔다. 

 

당시 우시장이 활발히 거래되었던 곳은 울진 시장과 매화시장, 평해 시장이었다. 소 상인들은 각 농가를 돌아다니며 몇 마리씩 소를 구입하고, 울진 장, 매화장,  평해장을 거치면서 장사를 하는 것이다. 당시 울진 우시장은 현재 울진 바지게 시장의 뒤편 주차장 부근이다.  

 

황흥수씨는 소 시장의 흐름을 대충 파악한 뒤 소 장사를 하기를 마음을 먹었다. 그때가 19살 때였다. 

‘나도 소 장사를 해야지. 내가 살 길은 이 길뿐이야!’

 

어느 날 그는 아버지가 소를 팔아놓은 대금을 몰래 훔쳤다. 그러고는 곧장 울진 시장으로 가서 소를 한 마리 사서, 매화 시장으로 몰고 가 팔았다. 

 

처음으로 소를 팔아 본 황흥수씨는 이윤이 상당히 많다는 것에 놀랐다. 집에 돌아온 황흥수씨는 아버지에게 잘못을 빌고 앞으로 소 장사를 하겠노라고 선언했다. 

 

가난 때문에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한 것을 늘 미안하게 생각하던 아버지인지라 아들이 먼저 이런 제안을 하니 오히려 기특한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농사일은 내가 할 테니 남자가 기왕 마음먹었으면 열심히 해봐라”하시면서 야단은커녕 오히려 힘을 실어 주셨다.  

 

황흥수씨는 19살 때인 1974년경 소 장사로서는 가장 젊은 나이로 상인들의 대열에 끼였다. 소를 몰고 다니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나이 많은 어른들도 다녔기 때문에 별로 힘들지 않았다.

 

이때부터 황흥수씨는 우시장에 나가면 ‘울진 황 사장’으로 통했다. 

 

당시 명도 마을에는 최모씨 노모씨 등 소 장사를 하는 사람이 열명 정도 되었다. 황 사장은 그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다 보니 잔심부름도 하고 힘들어하는 어른들을 도와 주기도 해서 어른들에게 매우 귀여움을 받았다. 어른들은 그를 기특하게 보고, 시간이 나는 대로 소를 보는 방법, 장사하는 요령 등을 가르쳐 주었다.

 

당시에는 소상인들 두세 명이 연합하여 동업을 많이 했다. 투자도 같이 하고 이익도 똑같이 분배했다. 이른바 ‘가부장사’라 하는데 소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효과적인 방법이었지만  황사장은 한 번도 다른 사람과 함께 동업한 일이 없었다. 소의 매입에서부터 판매까지 늘 혼자 했다. 이렇게 시작된 소 장사 사업이 차차 익숙해지고 거래 구역도 점차 넓어져 곳곳마다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산업화 시대를 맞은 우시장


산업화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자동차 보급이 대중화되었다. 소 상인들의 장사 방법도  변하기 시작해서, 소를 직접 몰고 걸어 다니던 시대를 지나 트럭에 싣고 운반하는 방법으로 바뀌었다. 자동차로 운반하다 보니 자연히 먼 시장까지 사업 구역이 확대되어 우시장의 거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황 사장도 1988년경 처음으로 트럭을 구입했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자동차 면허를 딸 때 힘들게 공부하던 일이 새삼스럽다고 했다.

 

황 사장은 울진 군내는 물론 영주, 삼척, 양양 등 서북쪽과 경주, 안강, 언양 등 남쪽 시장까지 크게 거래 구역이 확대되었다.  

 

밤낮없이 타지역의 시장까지 다니다 보니 전국의 웬만한 상인들은 황 사장을 모르는 이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각 지역 마다 예전부터 우시장의 상권을 장악해 오던 이른바 ‘터줏대감’들의 횡포는 무시할수 없을 만큼 거셌다.


극복하기 힘든 터줏대감을 혼내다 


우시장의 전산 경매 시스템은 최근 들어 시작되었고 10년 전만 하더라도  모든 거래는  직거래로 이루어졌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울진에서 다닐 수 있는 우시장은 강원도 양양장, 삼척 북평장, 경북의 영주장, 경주 쪽의 안강장, 기계장, 경남 언양장이 주 무대였다.

 

그런데 가는 시장마다 터줏대감들이 있어 외지에서 들어가는 상인들을 괴롭혔다. 타지 상인들이 소를 판매하러 가면  터줏 대감격인 대상들이 ‘엇금’을 놓고 방해를 했다. 이를테면 ‘텃세’를 하는 셈인데 그 벽을 뚫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무조건 그들에게 굽신거리고 용돈을 집어 줘야 하는 구조였다. 

 

터줏대감들의 뒤에는 똘마니 건달들이 있기 때문에 외지 상인들은 터줏대감의 비위를 맞추지 않을 수 없다. 소 시장은  모두 현금 거래이고 액수가 크기 때문에 시골의 건달들은 아예 우시장 부근에서 거간꾼 노릇을 하면서 상인들을 뜯어먹고 사는 것이다. 터줏대감들은 타지 상인의 소가 도착하면 소를 이리저리 훑어 보고는 소를 사는 척 하면서 소의 흠결을 찾아낸다. 나이가 많느니. 말랐다느니, 이모색이라느니, 사납게 생겼다느니, 흑비라느니 하면서 별별 흠결을 찾아내서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우시장은 보통 새벽 1시면 소들을 말뚝에 매고 소 거래가 시작되는데, 새벽부터 귀에 그슬리는 소리를 들으면 아무리 마음 좋은 사람이라도 순간적으로 폭발하게 된다.

 

그러나 외지인이라는 약점 아닌 약점 때문에 웬만한 소리는 귓전으로 듣고 흘린다. 지방 터줏대감들은 대부분 소를 많이 거래하는 대상들이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외지 상인들을 방해하기위해 소를 사는 척하면서 소 값을 턱도 없이 낮게 제시한다. 이른바 ‘엇금’이다. 


“시가 500만원 짜리 소를 300만원에 사겠다고 나서는 거지요. 터줏대감이 그렇게 값을 매겨버리면, 다른 상인들은 그 이상을 주고 살 수 없어요. 왜냐하면 그 사람  비위를 그슬리면 그다음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보거든요” 

 

가는 곳마다 이런 터줏대감들이 있어 그들과 친해 놓지 않으면 소를 판매하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잘못 건드리면 뒤에 있는 불량배들에게 봉변을 당하기 일쑤다. 터줏대감들은 똘마니 건달들에게 늘 용돈을 집어주기 때문에 건달들은 터줏대감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다. 

우시장의 구조 자체가 이러니 타지 상인들은 아니꼽지만 그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이른바 뇌물까지 상납을 해야 한다. 우시장에서는 뇌물을 주는 행위를 ‘엇찌’라고 한다. 이른 새벽 소가 도착하면 오늘 거래를 잘 성사 시켜 달라는 뜻으로 봉투를 슬쩍 넣어 주면, “뭘 이런 것을....” 하면서 모른 척하고 받아 챙긴다. 그러면 그날은 거래도 원만하고 값도 잘 받는다. 

 

황 사장은 처음에는 이러한 관행을 잘 몰라 영문도 모른 채 수차례 당했다. 어떤 때는 소를 팔지 못하고 그 먼 거리를 도로 싣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언젠가 새벽부터 서둘러 몇백 리를 소를 싣고 갔다가 그들의 농간으로 소를 팔지 못하고 뒤 돌아오는 날이 있었는데 얼마나 속상한지 차 안에서 목 놓아 울기도 하였다. 황 사장은 터줏대감들의 횡포를 맨몸으로 견뎌오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당하고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인가. 소한을 지난 지 며칠밖에 안된 매우 추운 날이었다. 매서운 새벽바람을 가르며 소를 몇 마리 싣고 두 시간도 넘게 달려 새벽 1시경에 언양 우시장에 도착했다. 

 

시장에서 소를 막 내려서 말뚝에 매고 있는데, 예의 터줏대감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와 수작을 부리기 시작했다. 황 사장의 예민한 신경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황 사장이 추운 날씨에 소를 내리느라 애를 쓰는 것을 보고 평소 친하게 지내는 소 장수 이씨가 와서 “행님 그동안 어째 지냈소. 내가 좀 도와 드릴께요”하면서 소를 매는데 거들어 주었다. 그와는 장날마다 만나 소 시세도 알아보고 식사도 늘 함께하는 사이라 서로 잘 통하는 사이였다.

 

황 사장은 그를 살짝 불렀다. 

“ 같이 아침 먹으러 가자” 하면서

“오늘 내가 저 터줏대감 놈을 혼줄을 낼 테니 자네가 옆에서 박자를 잘 맞추게” 

이씨는 황 사장의 성미를 일찌감치 알고 있었던 터라  

“행님요! 설 건드려가지곤 안 되는데예, 하여간 알았심더”하면서 눈을 껌벅했다.

 

우시장은 새벽부터 소 장사들이 먼 길을 오기 때문에 식당 아지매들이 일찍 문을 연다. 큰 가마솥에는 소고기국밥 끓는 구수한 냄새가 요란하고 가마솥에서 뿜어대는 김으로 옆 사람 얼굴도 알아보기 힘들다. 소 장사들은 소를 매 놓고는 뜨끈뜨끈한 국밥 한 그릇씩 먹으면서 시장기를 면한다. 

 

황 사장는 예의 그 터줏대감에게 다가가 공손히 인사를 하면서, 추운데 국밥 한 그릇 함께 하자고 식당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터줏대감은 ‘엇찌’를 주려나 보다 하고 얼른 뒤 따라 들어왔다. 황 사장은 식당 아지매에게 국밥 두 그릇과 소주를 두병을 시켰다. 친구 이 씨는 몇 칸 떨어진 의자에 앉아 국밥 그릇을 앞에 놓고, 황 사장의 언동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자! 날씨도 추운데 한잔하시더”하면서 소주를 한 병씩 따서 큰 알미늄 양재기에 가뜩 한잔씩 부었다.

 

그리고는 황 사장은 대뜸 한 양재기를 원샷으로 마셨다. 터줏대감은 내심 크게 놀라며 술잔을 얼른 들지 않았다. ‘새벽부터 무슨 술이냐’ 하는 눈치였다. 머뭇거리는 자세가 마시지 않을 폼이었다.

“자 마셔” 

 

황 사장의 말투는 어느새 반말로 바뀌어 있었다. 황 사장은 본래 체구가 작았다. 그러나 항상 말과 행동이 다부졌다. 터줏대감은 황 사장보다 체구가 두 배나 컸고 나이도 10살 넘게 많았다.

 

황 사장의 심상찮은 행동에 당황한 터줏대감은 일어서려고 머뭇거렸다. 

“술 안 먹어” 

 

고함을 치면서 양재기를 들어 일어서려는 터줏대감 얼굴에 잽싸게 소주를 뿌렸다. 새벽 찬바람 속에 찬 소주가 눈에 들어갔는지 터줏대감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비틀거렸다. 황 사장은 그의 멱살을 잡고 삐끄덕거리는 나무 의자에 그대로 주저 앉혔다. “이 새끼! 오늘 너 제삿날이야. 그동안 얼마나 못된 짓 많이 했어? 너 같은 놈은 죽어도 싸”하면서 주먹으로 술상을 ‘쾅’하고 내려쳤다.

 

옆 사람들은 영문을 모르고 모두 놀라서 이쪽을 주시한다. 

터줏대감은 전혀 예상치 못한 황 사장의 행동에 몹시 당황하여 

“어. 어 이 사람 왜 이래”하면서 달아나려 한다. 황 사장은 급히 일어서는 터줏대감의 멱살을 꼬나쥐고 좁은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오늘 니 죽고 나 죽고 하자. 너 같은 인간쓰레기는 죽어야 돼!”하면서 인정사정없이 주먹으로 뺨을 후려쳤다. 워낙 순간적인 일이라 옆 사람들도 어안이 벙벙해 어쩔 줄 몰랐다. 옆에서 예의 주시하던 이 씨가 황급히 끼어들어 겨우 뜯어말리는 척하며 터줏대감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어쩔라고 황 사장을 건드렸소. 저 사람은 성질이 벨나서 동해안에서 상대할 사람 없니더. 빨리 도망가소. 아이고 큰일 났네” 

 

터줏대감은 황 사장의 악쓰는 소리를 등 뒤로 받으며 어둠 속으로 재빨리 사라졌다. 

황 사장이 터줏대감을 혼낸 이야기는 우시장 상인들의 입을 통해 금세 전국으로 퍼져 나갔고 힘없는 상인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이날 이후로 황 사장은 어느 우시장에 가도 그를 얕잡아 보고 장난을 치는 사람들이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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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감래라 했던가? 


소를 키우는 일 중에 가장 힘든 것이 새벽 일찍 일을 해야 하는 것일게다, 더구나 먼 거리의 시장에 나가는 날은 밤잠을 설쳐야 하고, 남들이 편히 쉬는 시각에 일을 해야 한다. 그것도 찬바람이 매서운 동절기에는 참으로 힘들다. 

 

황 사장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오직 소밖에 모른다. 남들이 곤하게 자는 시각에도 그는 소를 싣고 그 먼 길을 가야했다. 안강장, 기계장, 언양장 등은 길이 멀다. 새벽 2시쯤부터 일어나 농장에 나가 소여물을 주고 소를 싣고 길을 출발한다. 새벽 찬바람을 가르며 몇 시간을 운전해 가다 보면 졸리기 일쑤다, 소는 무게가 많이 나가고, 움직이는 동물이기 때문에 빨리 달리거나 급정거해서는 안 된다. 매우 조심스럽게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운행하다가 피곤하면 도로 가장자리에 정차해서 잠시 눈을 붙이고 가야 한다. 보통 영덕, 포항을 지나다 보면 졸음이 닥친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정신을 차려봐도 사방은 캄캄하다. 포항 시내의 고층 아파트에 어쩌다 불빛이 한 두집 켜진다.

“남들은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편히 잠자고 있는데 나는 이게 뭔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가?”

 

칠흑 같은 혼돈의 공간에 홀로 미아가 된 기분이다. 황 사장은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보면서 서글픔에 빠진 일이 한 두번이 아니다. 

 

잘사는 친구들의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당장이라도 편안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이지만 ‘언젠가 나도 잘 살 때가 있다.’라는 믿음으로 다시금 마음을 추스린다.     

 

 황 사장은 기왕 축산을 시작하였으니 인생의 승부를 걸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지금까지는 소를 경험으로 키워왔지만 이제부터는 학술적인 이론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는 살아 있는 생물체이기 때문에 정성을 쏟는데 따라 성장이 다르다. 송아지의 출산 과정부터 사양 방법이 다르며, 암송아지와 숫 송아지가 사양법이 다르고, 겨울에 낳은 소와, 여름에 태어난 송아지의 사양법이 다르다. 

 

어미 소도 마찬가지이다. 번식을 목표로 키우는 소와 비육을 목표로 키우는 소는 사양법이 다르다. 비육우는 살코기의 등급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월령에 따라 사료 급여량과 사료의 종류가 다르다. 이렇기 때문에 많은 기술이 필요한 농업이 축산업이다. 황 사장은 축산 기술 서적을 탐독하며, 지금도 축산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 지도를 받는다, 


「명도 농장」의 주인이 되다  


황 사장의 인생 자체가 ‘성실’과 ‘근면’이다.  IMF도 맞았고 소값 파동도 겪었지만 그의 성실은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다. 힘들고 서러운 고난의 세월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열심히 살다 보니 점점 소 마릿수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재래식 우사를 모두 정리하고 ‘명도 농장’이란 현대식 우사를 신축하게 되어 마침내 어엿한 사장이 되었다.

 

2009년도에 현대식 우사를 1동 건축하였으나 소 숫자가 130여두로 불어나니 공간이 부족하였다. 부득이 작년에 약 5억원을 투자하여 제2 우사를 건축했다. 

 

황 사장이 이렇게 성공하게 된 이면에는 모친의 힘이 컸다. 모친은 8남매를 키우시면서 가난을 벗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신 분이다. 이제 자식이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히고 살만해지니 효도 한번 못 받아 보시고 2022년에 돌아가셨다. 비록 96세란 적지 않은 연수를 누렸지만 황 사장은 그동안 제대로 효도하지 못한 일이 못내 한스러워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2000년도에 부친이 작고하였을 때도 이렇게 눈물을 흘리지 않았았고, 평생을 거친 우시장 바닥을 누비면서도 눈물 한번 흘리지 않았던 황 사장이었지만 모친을 보내면서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측은지심을 실천하는 황 사장


84년 이후 소값이 폭락하여 3년 정도 소값 파동이 지속된 적이 있었다. 임신한 암소를 사다가 1년 동안 키워서 송아지를 생산했는데, 그 송아지와 어미소를 합쳐 팔아도 1년 전에 구입한 소 값에 미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이니 규모가 큰 농가일수록 더욱 타격이 심했다. 정부에서는 자가 도축, 부채 상환기간 연기, 암소 출하시 보상금 지원 등 여러 가지 정책을 썼지만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TV에서는 연일 축산 농가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는 보도가 사람들을 우울하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면의 김 모 축산인도 100여두를 키우던 농가인데 계속 사룟값이 누적되니 소를 몇 두씩 팔아서 사룟값을 충당할 수밖에 없었다. 소값 파동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아 결국은 모든 소를 처분하게 되었다. 황 사장은 평소 가깝게 지내던 친구인지라 딱한 사정을 듣고 그를 돕기로 했다. 죽변의 가까운 친구 장 모씨와 두 명이 여유자금을 모두 긁어모아 당시 8,800만원을 김 모씨에게 주었다. ‘돈이 없으면 안갚아도 된다’는 전제하였다. 김 모 친구는 그 자금으로 다시 힘을 얻고 열심히 일한 결과 지금은 100두 이상을 사육하는 농가로 성장했다. 지금도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보면 모른 척하지 못하는 성미다. 축산 기자재에서부터 자금지원까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늘 발 벗고 나서서 도움을 주고 있다.

 

어릴 때 가난하게 살던 일을 생각하여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이다. 그래서 그의 주위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다.     


평생 신조는‘바른 정신’과「불성무득 不誠無得」


황 사장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불한당’이라 한다. 땀 흘리지 않고 돈 벌려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는 인생 경험에서 나름대로의 좌우명이 있다.  

‘성실히 일하지 않으면 결코 얻을 수 없다는 「불성무득 不誠無得」이라는 낱말을 두 아들에게 입버릇처럼 강조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황 사장의 8남매들은 모두 생활력이 강하고 성실하다. 지금은 모두 남을 도울 만큼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데 어릴 때부터 가난을 벗기 위해 성실하고 근면하게 살아온 댓가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황 사장은 어릴 때 가장 부러워했던 것이 검은 교복에 중학생 모자를 쓰고 다니는 친구들이었다고 한다. 친구들이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갈 때면 황 사장은 일부러 그들의 눈을 피해 다녔다.   

 

가난한 부모님을 원망도 많이 해 봤지만, 소용없는 일이라는 걸 깨달은 후로는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다고 한다.


“저는 이런 힘든 일을 하고 살지만 ‘평해 황가‘라는 명문 가문 출신이고, 우리 선대 조부님이 울진군지에 실릴 만큼 효자의 후손이시더” 

 

황 사장은 늘 선조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행여 선대들에게 욕되지 않도록 언행에 주의한다고 한다. 

그러나 경우에 어긋나는 일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답게 살아야지요. 대학 나와가지고도 인간짓 못하는 사람 많잖소? 비록 시골에 살아도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 하니더”

그의 아들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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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건축한 새 제2농장 앞에선 황흥수 사장


앞으로의 계획


황 사장은 평생동안 축산업을 해 왔다. 50년이 넘는 세월을 한결같이 한가지 일에 매진한 울진 토박이 축산인이다. 70이 된 지금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일한다. 

 

오래도록 축산업에 종사한 탓인지 전국적으로 대규모 축산 농가들과 네트워크가 형성되어있다. 전화 몇 통이면 전국 우시장의 시세를 알 수 있다. 이것이 그의 큰 밑천이다. 이러한 네트워크와 경험을 토대로 소규모 축산 농가들에게 기술과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는 이제 나이도 들었지만 사업이 혼자 감당하기 힘들 만큼으로 커져서, 직장 생활을 하던 아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작년 하반기부터 하락하기 시작한 소 시세가 지금은 완전 바닥을 치고 있다. 축산 농가들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어 정부의 특별 대책이 필요하지만 아무런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어 큰 걱정이라고 한다. 과거에도 몇 차례 소 파동이 있었지만 이번 파동이 장기화될까 가장 걱정이란다.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경기가 회복되겠지요. 주기가 있어서 낮을 때가 있고 올라갈 때가 있어요. 힘들지만 서로 도와 가며 참아야지요.”

  

플래시 불빛만이 허공을 가르는 캄캄한 새벽 시간, 축사를 한 바퀴 돌면서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사료와 짚을 모두 공급하고 나면 이제 먼동이 트 오른다. 황 사장은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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