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

기사입력 2023.07.05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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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사진 임우규

 

오늘 계묘년 따스한 봄날에 젊은 세대에게 지난 80여 년을 우리 민족은 어떻게 살아왔으며 또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 살아온 지난 세월의 아픔을 돌아보고 몇 자 삶의 기록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경상북도 자유총연맹(사단법인)에서는 올해 봄 칠곡전투 낙동강 방위선을 목숨 바쳐 사수한 백선엽 장군 동상 건립을 위해 모금한 사실이 있었고 본인도 작은 돈이라도 같이 참여하면서 작은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우리 민족은 부족국가 시절부터 전쟁에 600여회 시달리며 살아왔고 특히 우리 세대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부모 세대의 고생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우며,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좌우 진영 갈등과 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그리고 1950년 6.25 사변으로 남북한 300여만 명 사망과 1,000만 이산가족에 아직도 남북한은 서로 생사는 물론 서신도 전하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 우리 민족 5,000년 역사에 배고픔을 해결한 선각자 3분의 공적을 생각하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땅에 1910년 경남 의령에서 이병철씨가 태어나시고 5년 뒤 1915년 강원도 통천에서 정주영씨가 출생하셨습니다. 또 2년 뒤 구미 선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탄생하시었습니다. 

 

물론 3분 위인 뒤에 우리 국민들은 허리띠 졸라매고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와 귀에 익은 보릿고개 송구떡 보리껍질로 지은 밥, 그때 실상을 몸소 체험한 7080세대입니다. 

1960년대 한일회담반대 전국대학생 데모에 서울 을지로 내무부 청사 앞에서 고려대 학생들이 총에 맞아 사망한 현장도 목격하였습니다. 

 

당시 ‘소신껏 일하고 역사에 물어라’라는 한국일보 사설이 있었습니다. 얼마 후 장기영 한국일보 회장께서 국무총리로 입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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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7월부터 73년 3월(8년 8개월)까지 우리는 월남전에 참전하였고 총인원 325,994명 전사자 5,099명, 부상자는 11,200여 명이었습니다.

 

처음 월남전에 보낼 때 박정희 대통령이 하룻밤에 담배를 2갑씩 태웠다는 것은 익히 들은 이야기입니다. 

 

1968년 2월부터 70년 7월 7일 추풍령 고속도로 준공비에는 사망자가 77명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받은 병장 기준 1인당 7,800달러, 그중에서 병장 월급 54달러이고 피복, 군화, 담배 포함 100여달러, 남은 돈 6,600달러는 군병력 운영자금이며, 정부는 이를 담보로 차관 및 무상원조 등 대한민국 현대화 과정에 큰 기여를 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께서 우리나라 경제를 잘 아는 학자가 누구냐고 말씀하시니 독일에서 경제성장론 박사 학위를 받은 백영훈이라는 분이 지금 논산훈련소에서 훈련 중이라 해서 즉각 중앙정보부에서 지프차에 태워 상공부에 적을 두고 청와대 파견 근무를 시켰습니다. 

 

이 분이 독일 차관을 성사시켰고 독일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박정희 대통령과 같이 시승하였으며, 후일 한독협회회장, KID한국개발원(외교국방) 원장을 역임하셨습니다. 

 

지금 누리호가 달나라를 돌고 있고 KF21 음속전투기, K9자주포, 첨단미사일 등의 국방력은 결국 경제력이 뒷받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이병철 회장을 불러 반도체사업을 요청하시니 이병철 회장은 전 사장단을 불러 회의 결과 이 사업은 불가하다고 하였으나, 이건희 회장은 이 사업은 해야만 한다고 하여 오늘의 삼성 반도체가 되었고, 정주영 회장은 500환 지폐 한 장을 들고 그리스의 선박왕을 찾아가 우리 민족은 500여 년 전에 철갑선을 만든 나라니 믿어주시고 배를 26만톤(길이 330여 미터) 2척을 수주하는데 금액은 당시 시세보다 15% 싸게 해주면서 만약 공기 내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현금으로 모두 변제해 주겠다면서 주문받아 토크도 만들면서 배도 만들어 전 세계 선박 제작 능력 1위가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돈은 영국은행에서 차관을 받아 성공한 것입니다. 

해가 지지 않는다는 영국에 가전제품 30%가 삼성 제품이고, 전 세계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우리 공산품이 수출되는 나라 이런 나라에 우리가 오늘 어깨를 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독일 광부, 간호원, 열대 기후의 사우디 건설노동자 등 온 국민이 정말 땀 흘려 이룬 나라입니다. 

 

월남 참전 오늘 번영의 저 뒤편에 생사를 넘나들며 마지막 죽음 앞에서 엄마를 부르던 전우들, 그때 참전 병사들도 이제는 7080세대로 서서히 낙엽 지듯이 저물어 가고 우리 후손들은 앞으로 더 발전된 대한민국을 만들 것을 믿으며 그 시절 살아온 사람들의 화두가 성실에 에누리하지 말고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이 얼마나 가슴 뭉클한 어휘입니까?

미흡한 글이지만 당시를 생각하며 글 제목도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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